밀가루 받으려다 압사…최악 경제난 파키스탄서 잇단 참변

김서원 2023. 4. 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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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의 산업지구의 한 공장에서 구호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파키스탄에서 밀가루 등 식량 구호품을 받으려다 몰려든 인파가 압사하는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파키스탄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최고치를 찍는 등 전례없는 경제난에 빠진 상태다.

1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의 산업지구에서 한 기업이 주관한 라마단 구호품 배급 행사에 인파가 몰리면서 40~80세 여성 9명과 10~15세 미성년자 3명 등 최소 12명이 압사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배급소는 공장 내부의 비좁은 장소에 설치됐다. 이곳으로 순식간에 600~700명이 몰렸으나 당시 현장엔 줄을 세우는 등 질서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는 덮개가 없는 배수구에 빠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피즈 부티 파키스탄 경찰서장은 "공장 경영진이 배급소의 입구와 출구를 별도로 마련하지 않았고, 몰려든 인파에 출입문이 막히면서 내부에서 사람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해 배급소의 밀집도가 일순간 엄청나게 높아졌다"면서 "그 결과, 좁은 통로에서 줄 맨 끝에 서 있던 여성들과 아이들이 밀려 넘어지면서 희생됐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현장엔 신발 등 개인 유실물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어 참혹했던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경찰은 라마단 구호품 기부 계획을 당국에 미리 알리지 않은 공장 관리자 등 사건 관련자 8명을 관리 소홀을 이유로 체포했다. 경찰은 향후 구호품을 배급하려는 개인이나 단체는 반드시 당국에 사전 통보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고 공표했다.

최근 파키스탄 정부와 기업 등은 이슬람 금식 성월인 라마단 기간을 맞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식량이나 자선금 등을 배급하는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같은 배급소로 수천 명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배급소 관련 압사 사고에 따른 누적 사망자가 최소 23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앞서 지난달 말 북서부 지역에서 8명, 동부 펀자브 지역에서 3명 등 11명이 압사한 바 있다.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 1일, 사고 현장에 신발 등 유실물들이 남겨져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인명 사고가 이어지자 경찰은 1일 북서부 페샤와르 무료 밀가루 보급소에 몰려든 군중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 통제에 나서고 있다. 구호품을 둘러싸고 사회적 혼란이 지속되며 트럭과 일부 지역 배급소에서는 밀가루 수천 포대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파키스탄 인권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성명에서 배급소의 부실한 관리 행태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정부에 안전 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같은 사고의 배경엔 파키스탄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자리하고 있다. 1일 파키스탄 통계청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35.37% 올랐다. 특히 식품(47.2%)과 운송(54.9%) 가격이 치솟은 영향이다. 통계청 대변인은 "1970년대 월간 인플레이션을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은 지난해 6월 이후 9개월 연속 20%가 넘는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치솟는 물가에 백기를 든 파키스탄 시민들이 해외로 이주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키스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민자 수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파키스탄 경제는 과도한 인프라 투자로 1300억 달러(약 170조3000억 원)에 달하는 대외 부채에 시달리다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겹치면서 악화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이 늦어지는 것도 경제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파키스탄은 2019년 IMF와 구제금융 지원에 합의했으나, 구조조정 등 정책 이견으로 인해 전체 지원금 약 65억 달러(약 8조5000억 원) 가운데 절반가량만 받았고, 나머지 지원금은 보류된 상태다.

이 와중에 파키스탄 정부와 임란 칸 전 총리의 대립이 장기화하면서 정치적 혼란마저 가중되고 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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