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내 꿈이 누군가의 꿈이 돼 가는 게 보람”

정대균 2023. 4. 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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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 잘하고 있다”…200승 이상 합작
‘불안정’LIV골프, 타 투어에 혼란 줘 반대
비거리 제한, 골프 특성상 불필요한 규제
박세리 바즈인터내셔널 대표가 24일 서울 강남구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그녀를 처음 본 것은 1992년이다. 중3의 앳띤 여학생이 초청 선수로 출전했던 KLPGA투어 라일앤스콧 여자오픈에서 연장 접전 끝에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원재숙(54)을 꺾고 우승한 뒤 기자실에 당당하게 들어선 게 첫 대면이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봄꽃이 만개한 3월 어느 날, 그녀가 대표이사로 있는 바즈인터내셔널에서 꿈 많았던 ‘소녀’에서 꿈을 이뤄낸 ‘여왕’이 돼 나타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그녀를 보자 만감이 교차됐다. 한국 여자 골프의 살아있는 역사인 ‘골프여왕’ 박세리(46) 얘기다.

골프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박세리는 1996년에 프로로 전향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98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에서 LPGA투어 역대 두 번째로 신인으로 우승하면서 걸출한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맨발 샷’으로 US여자오픈마저 손에 넣었다.

당시 우승으로 박세리는 IMF 구제 금융으로 시름에 빠져 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위기와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를 거머쥔 박세리의 쾌거에 국민들이 큰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박세리는 프랑스를 구한 잔다르크에 빗댄 ‘박다르크’가 됐다.

박세리는 LPGA투어서 통산 25승을 거둔 뒤 2016년에 공식 은퇴했다. 한국인 역대 최다승이다. 그런 활약에 힙임어 역대 최연소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은퇴 이후에는 올림픽 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 해설위원, 방송활동, 기업 CEO 등으로 현역 시절보다 바쁜 삶을 살아 가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리치언니’로 불리는 그녀를 만나 골프, 인생, 향후 계획, 후배들, 그리고 한국 골프 등 다양한 주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어 보았다. 다음은 박세리 대표와 가진 일문일답이다.

박세리 바즈인터내셔널 대표가 24일 서울 강남구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US여자오픈 연장전이다. 20홀 연장전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연장전에서 불가능한 샷을 했다. 그런 이유로 박세리하면 희망이 떠오르는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

-반대로 가장 아쉬운 대회는.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셰브론 챔피언십)서 우승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게 아쉽다. 그래서 커리어 그랜드슬램(한 선수가 시즌에 상관없이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것)을 달성하지 못했다. 대신 가장 큰 목표였던 명예의 전당 입회를 이뤘다(박세리는 세계 명예의 전당과 LPGA 명예의 전당 동시 입성).”

-선수 생활을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은퇴한 계기는.
“은퇴 때가 내 나이 40이었다(웃음). 골프는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목표도 달성했고 하고 싶은 만큼 했다고 판단했다.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제2의 인생을 살아 보자고 마음 먹고 은퇴했다. 37살 때부터 하나하나 계획하고 있었다.”

-경쟁 상대였던 안니카 소렌스탐, 카리 웹과 자주 연락하는가.
“작년 월드매치 초대해서 소렌스탐을 만났다. 웹과도 메일로 소식 주고받는다. 선수생활 때는 왜 그렇게 바빴을까라는 아쉬움이 너무 많다. 그들과 편안하게 밥 한 번 먹어 보지도 못하고 은퇴했다. 그만큼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골프 선수 박세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은.
“1세대로 끝나지 않고 후배들이 감사하게도 내 뒤를 쭉 이어주고 있고 또 그 후배들이 다른 후배들에게 꿈을 꾸게 한다는 게 가장 보람된 일로 생각한다. 항상 (후배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느 순간 내 꿈이 누군가의 꿈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은퇴하고 나서도 후배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 나한테도 또 다른 도전이 생기고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들에 항상 감사한다.”

-골프가 예능과 접목되면서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골프의 예능화는 그와는 별개 문제로 생각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스크린골프로 젊은층이 대거 골프에 유입되면서 골프가 활성화됐다. 그 과정에서 골프 에티켓을 건너 뛰고 코스로 나가다 보니까 진행은 말할 것도 없고 골프에 대한 매너와 복장 등이 약간 변질됐다. 그런 점이 아쉽다. 에티켓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LIV골프에 대한 생각은.
“모든 골프 투어는 오랜 역사를 거쳐 정착됐다.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LIV는 그렇지 않다. 다시말해 LIV는 갑작스럽게 선수를 영입해서 만들어졌다. 어떤 투어가 돈을 앞세운 블랙홀이 되어서는 안된다. 선수들은 투어가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안정적이지 않은 투어는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수들의 선택적 다양성 면에서는 나쁘지 않지만 기존 다른 투어에 혼란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R&A와 USGA가 골프볼의 비거리 제한 규정을 마련한다고 발표했다. 그에 대한 생각은.
“솔직이 실현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억지로 비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건 어렵다. 많이 나가는 선수가 있고 많이 보내려고 해도 안나가는 선수가 있는데 그걸 어떤 기준을 정해 제한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자연 속에서 하는 골프라는 스포츠 특성을 감안했을 때 필요없이 규제하는 건 좋지 않다고 본다. 골프는 실내 스포츠가 아니다. 선수 입장이라면 나도 반대다.”

-MBTI 성격 테스트는 해보았는가. 유형은.
“ISFJ 유형으로 나왔는데 맞는 지 모르겠다. 참고로 ISFJ 유형은 조용하고 차분하며 따뜻하고 친근하고 책임감과 인내력이 매우 강한 성격이다. 또 친구나 가족에게 애정이 가득하고 언제나 진솔하려 노력하고 가볍지 않기 때문에 관계를 맺기에 가장 어려우나 가장 믿음직스러운 유형의 성격 소유자다.”

-LPGA투어 한국 선수들이 최근 부진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전혀 아니다. 후배들이 정말 잘하고 있다. ‘잘해야 하거나 잘 할 수 밖에 없다’는 팬들의 높은 기대치가 문제라 생각한다. 제 경우 ‘톱5’에 입상해도 우승을 못하면 국내 언론이 ‘박세리 부진’이라고 썼다. 그걸 보면서 ‘어떻게 해야 부진하단 소릴 안들을까’라는 고민을 할 때가 많았다.
우리나라는 LPGA투어에 진출한 국가 중에서 역사가 짧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내가 알기론 지난 25년간 200승 이상을 합작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승수다. 그런데 우승이 없으니 부진이라고 한다.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후배들은 부진한 게 아니라 꾸준히 잘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로 인해 세계여자골프가 발전했다. 특히 아시아여자골프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쳐줘야 한다.”

-그런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열심히 하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충분히 열심히들 하고 있다. 선수라면 누구보다도 더 잘하려고 하는 마음인 건 마찬가지다. 단 스스로한테 여유를 가져라. 스스로에게 인색하지 마라. 그렇지 못해 나는 번아웃이 됐다. 더 할 수 있었던 것도 못하게 됐다. 지금처럼 꾸준히 하되 자기 스스로를 돌봤으면 좋겠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골프를 잘치고 싶어하는 주말 골퍼들을 위한 팁은.
“골프는 잘 치려고 하는 순간부터 어렵다. 말 그대로 주말골퍼 아닌가. 연습도 없고 체력 훈련도 하지 않는데 잘 치기 바라는 건 무리다. 그러니 그냥 나가서 좋은 공기 멋진 뷰 보면서 좋은 사람들과 막걸리 한 잔 하시고 즐겁게 보내고 오시라. 정 잘치고 싶다면 가끔씩 레슨을 한 두 번 받길 권한다. 그리고 카트 타지 말고 운동 삼아 걸어라. 걸으면 골프처럼 좋은 운동은 없는 것 같다.”

-희망의 아이콘으로서 국민들에게 덕담 한 마디 한다면.
“마음먹기 나름이다. 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오늘은 나쁘지만 내일은 새롭고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자신있게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끔 계속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 내게도 고민이 있다. 무게가 다를 뿐이다. 그걸 이겨내는 방식이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 때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냥 웃었다. 그래서 집에 오면 TV를 트는 습관이 생겼다. 아무 생각없이 웃기 위해서였다.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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