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가득했던 백마 카페촌, 왜 지켜내지 못했을까 [우리 도시 에세이]
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 냉천공원 백마 카페촌의 한 부분을 이루던 옛 냉천마을이 흔적으로 남은 냉천공원과 마을 회관. |
ⓒ 이영천 |
시작은 작은 우연이었다. '화사랑'이라는 술집도 카페도 아닌 곳이었다. 화사랑이 입소문 타고 알려지자, 비슷비슷한 술집과 카페들이 마을 빈 곳을 채워가며 카페촌이 만들어졌다.
▲ 옛 백마역 백마 카페촌의 추억이 물씬 풍기는 옛 백마역의 아련한 모습. |
ⓒ 고양시 네이버블로그(letsgoyang) |
내밀한 풍경도 있었다. 이른 저녁 열차가 끊어진다는 걸 이용하려는 음흉한 늑대들 공작에, 철길 따라 40분 남짓이면 버스 터미널이 있다는 걸 아는 여우들이 배시시 웃음 짓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요즘 홍대에 버금가는 핫플이었다.
백마 카페촌
가수 김광석이 한때 활동했던 '동물원'이 1993년 5-1집 음반에 '백마에서'라는 노래를 싣는다. 소박하면서도 감수성 풍부한 그들 음악처럼, 노래는 애잔하게 지나간 사랑을 추억한다.
▲ 백마역 2006년 옛 자리에서 옮겨와 새로 지은 경의중앙선 백마역. |
ⓒ 이영천 |
홍대 인근에서 화실을 꾸리고 있던 서양화가가 있었다. 그가 경의선 타고 지나다 내린 곳이 백마역이다. 알 수 없는 뭔가에 이끌려 맹숭맹숭한 벌판만 보이는 곳으로, 1976년 자신의 화실을 옮겨온다. 화사랑 탄생 배경이다.
화사랑 주인장 김원갑씨를 중심으로 홍대와 중앙대 미대 출신들이 먼저 판을 펼친다. 이후 그의 화실에선 미술 세미나가 무시로 열리고 음악회와 전시회 장소로 변모해 간다.
1979년 '그림이 있는 사랑채'라는 화사랑으로 간판을 내걸어 카페로 변신한다. 객이 많아지자 주인장 누이가 같이 화사랑을 운영한다. 카페촌은 이처럼 우연의 연속으로 탄생하였다. 신촌에 김현식이 있었다면, 강산에와 김C 등 무명의 실력파들이 한 시절을 화사랑에서 보내기도 했다.
▲ 변모하는 애니골 백마 카페촌 시즌2를 상기시키는 벽화와, 맞은 편 짓고 있는 빌라가 대조를 이룬다. |
ⓒ 이영천 |
카페촌이 사라진 건 일순간이다. 1980년대 말 불어닥친 주택난으로 맹숭맹숭하던 벌판에 일순 신도시가 들어서면서다. 개발 등살에 떠밀려 백마 카페촌이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린다. 많은 주점과 카페가 홍대 부근으로 옮겨가고, 부득이 카페 몇이 둥지를 옮겨간 곳이 풍동 '애니골'이다.
풍동 애니골
▲ 애니골 입구 풍동 애니골 입구에 선 조형물. |
ⓒ 이영천 |
▲ 새로 난 도로 애니골을 반으로 가르며 새로 난 도로. 잘린 YMCA가 좌측에 보인다. |
ⓒ 이영천 |
주변에 들어선 아파트 숲에 애니골은 섬처럼 갇히고 만다. 새로 난 도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한 땅값은, 애니골을 감성 충만한 공간으로 남겨둘 이유가 별로 없었다. 곳곳에 대형 음식점이 자리한다. 개울 건너편은 빌라촌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 화사랑 2020년 고양시가 인수해 리모델링한 모습. 옛 추억과 낭만을 되살리려는 취지이나 힘에 부치는 것도 현실임. |
ⓒ 이영천 |
문 닫은 화사랑을 2020년 고양시가 인수해 복원한다. 도시 재생사업의 하나로, 이를 통해 1980~1990년대 감성 그득한 경의선의 추억과 낭만을 되살리려는 의도였다. 다행이랄까. 이런 노력으로 그나마 화사랑이 애니골을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낯선 공간
▲ 애니골 그나마 옛 정취를 갖고 있는 애니골 입구. 화사랑과 쉘브르 간판이 보임. |
ⓒ 이영천 |
옛사랑과 낭만을 추억할 어느 무엇도 없는 곳에, 기억을 더듬어 맛집을 찾는 7080이 거리를 채울 뿐이다. 맛있는 음식이 혀를 잘 다스려 주는진 모르겠으되, 가슴 시린 낭만과 멋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더불어 신세대 발길도 뜸하다. MZ세대가 추구하는 이상과 갈증을 풀어 내줄 그 무엇도 공간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 경의선 길 옛 논길이었을 곳이 철길과 도로 사이 산책로로 바뀌었다. |
ⓒ 이영천 |
공간도 철저히 수요와 공급에 따른다. 따라서 공간을 갈라친 도로를 통해 그저 그런 상업시설 침투는 계속될 것이다. 자본주의 원리가 매개하는 바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어딘지 모를 허전함마저 지워낼 수 없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한 공간을 매력 넘치는 곳으로 지키고 가꿔가는 건 이처럼 지난(至難)한 일이다. 공간이 창출해내는 수요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요를 매개하는 요소는 그게 추억과 낭만일 수도, 문화와 예술일 수도, 혹은 사랑과 열정일 수도 있다.
백마 카페촌에 쌓였던 사랑과 낭만이, 풍동 애니골에선 작은 흔적만 남기고 왜 지워져 버렸을까. 당시의 젊은이들이 열정으로 만들어낸 공간을 우린 왜 지켜내지 못했을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학교서 '슬램덩크'의 인기, 지금은 이정도입니다
- 학폭에 맞섰던 '영웅'..."착한 아이, 왜 먼저 떠났을까요"
- 윤 대통령, 또 대구 서문시장으로... 벌써 네 번째
- 길 잘못 들었다가 이사까지... 아파트 떠나고 찾아온 큰 변화
- 파리의 '15분 도시', 서울에도 만들 수 있을까
- "일방적인 껍데기 분향소에 조문... 국가폭력입니다"
- "마스크 벗고 나들이~" 벚꽃 여의도, 토 낮에만 39만
- [영상] 홍성 서부면 야산 산불 발생... 민가로 번지는 중
- 1분기 '어닝쇼크' 크게 온다… 삼성전자 영업익 -95% 전망
- 손흥민과 SNS 끊었던 김민재 "제 오해로… 잘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