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만 퇴진, 한 시대가 끝났다 [하재근의 이슈분석]

데스크 2023. 4. 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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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최근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주주총회 직전에 이수만 전 에스엠 총괄 프로듀서가 기자들에게 글을 보냈다. 거기에서 그는 “케이팝이 전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대한민국 기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열정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라며 “제 이름을 따서 창립했던 에스엠이 오늘로써 한 시대를 마감하게 됩니다”라고 썼다.


글의 첫 머리에 케이팝을 언급한 것에서, 한 회사의 창업자를 넘어 케이팝 전체의 틀을 탄생시킨 업계 어른으로서의 자의식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에스엠을 일컬어 “제 이름을 따서 창립”했다고 한 부분에선 한류를 개척한 에스엠을 이끌었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의 퇴진을 ‘한 시대의 마감’이라고 표현했다. 다른 사람이 퇴임하면서, 그것도 우여곡절 끝에 잡음 속에 퇴진하면서 한 시대의 마감 운운했으면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하지만 이수만이니까 이해가 간다. 그의 퇴진은 정말 한 시대의 끝이라고 할 수 있다.


한류 케이팝은 직접적으로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한국에서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잘 나가던 80년대에 그는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MTV와 마이클잭슨 등이 보는 음악 혁명을 일으키는 걸 직접 접할 수 있었다. 이수만의 유학 시점이 70년대 말만 됐어도 그의 선택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절묘하게 80년대 비디오 댄스 음악 혁명 시기에 미국에 체류했고, 그것이 곧 한국 음악의 미래라고 통찰했다.


실행력도 놀라웠다. 생각만 하고 만 것이 아니라 한국으로 돌아와 즉시 에스엠을 설립하고 비디오형 댄스 가수를 찾기 시작했다. 현진영을 발굴했지만 마약 파문으로 무너졌다. 그때 타격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이후 에스엠은 자유로운 흑인음악 감성보단 관리 체제를 강화하는 길을 택한다.


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의 거대한 성공은 10대 시장의 폭발성을 알렸다. 이수만은 미국의 5인도 댄스그룹 뉴에디션, 일본의 아이돌 제작사 쟈니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참고해 HOT를 제작했다.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청소년의 마음까지 분석할 정도로 치밀하게 기획했다.


마침내 세상에 나온 HOT는 10대의 요구를 정확히 꿰뚫은 기획이었다. 즉시 10대의 괴성이 터졌고 대한민국 가요계는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HOT의 활동으로 한류라는 단어가 생기고, 댄스 아이돌이 가요계를 독식하게 됐다. 이수만은 연이어 SES로 걸그룹 시장도 개척하는가 하면, 보아와 동방신기 등으로 본격적인 국제 한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이수만은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을 전 세계에서 가장 고도화했다. 그 시스템이 우리 가요계 전반에 퍼져나가 한국은 세계 최고 아이돌 생산국이 되었다. 에스엠은 에스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했는데 그 스타일이 모두 이수만의 지휘에 의한 것이었다. 이수만 퇴진으로 이제 에스엠에선 새로운 프로듀서들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에스엠 한 시대의 종언이다.


우리 가요계 전체로 봐도 한 시대의 종언이라 할 만하다. 이수만의 입지가 좁아진 데엔 기이한 경영 행태도 영향을 미쳤다. 외부 회사를 만들어 에스엠의 이익을 뽑아갔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수만 한 명이 모든 결정을 하다 보니 병목 현상이 생겨 경영 효율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 명의 제왕적인 지배 시스템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로 보인다. 이런 건 어느 한 회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한국 가요계가 국제적으로 도약하는 만큼, 불투명한 1인 지배 체제는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들다는 인식이 이번 에스엠 분란을 계기로 확산됐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경영이 업계에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에스엠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경영이야 더 투명하게 할 수 있겠지만, 예술적 창조성은 합리성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수만이라는 절대적 지휘자가 지금까지 에스엠 성공신화를 만들었는데, 과연 그 자리를 제대로 대체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경영 합리성으로 해결할 수 없다. 에스엠을 주도하게 될 새로운 프로듀서들이 과연 어느 정도의 예술적 역량을 보여줄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이수만은 이번에 발표한 글에서 자신은 늘 꿈을 꾼다고 했다. 케이팝이 글로벌 뮤직으로 진화해야 하며, 지신은 미래를 향해 간다고도 했다. 그리고 현재 해외에서 글로벌 뮤직의 세상에 골몰 중이라고 했다. 이런 말들을 보면 이수만이 음악계에서 완전히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식으로든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에스엠 지분 매각으로 막대한 자본을 확보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어느 사업이든지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다. 과연 에스엠의 한 시대를 끝낸 이수만이 또 다른 시대를 열게 될까? 이수만이 향한다는 미래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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