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식 기자의 신앙적 생각] 한국교회, 사이비 퇴치 적극 나서야
‘진령군’. 의외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 이름은 조선 후기 국가의 존망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던 한 무녀의 군호다. 1882년 조선에서는 임오군란이 발생했다. 당시 왕이었던 고종과 민비는 이를 피해 경기도 이천에 있는 장호원으로 도망갔다. 그곳에서 민비는 무당인 박창렬을 만났는데, 그는 침체돼 있던 민비에게 환궁을 예언하며 힘을 북돋워 줬다. 결국 박창렬의 말대로 환궁이 이뤄졌을 때 민비는 그와 동행했고 ‘진실로 영험하다’라는 의미의 진령군이라는 군호를 내렸다. 군호는 아무나 받을 수 없었다. 신하의 경우 당파를 이끄는 수장으로 활동하며 군주의 신임까지 확고히 얻어야 군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일개 천민의 신분인 무당이, 그것도 여성으로서 군호를 받은 인물은 조선 역사상 진령군이 유일하다.
민비는 진령군을 ‘언니’라 부르며 궁궐에서 함께 살았다. 이후 조정의 모든 권력은 진령군에게 집중됐다. 그의 감언이설에 완전히 속아 넘어간 민비와 고종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을 진령군에게 의존했다. 사실상 꼭두각시였던 셈이다. 이를 기반으로 진령군은 틈만 나면 궁궐에서 굿판을 벌였고 각종 전횡을 일삼았다. 사치도 대단했다. 이에 흥선대원군이 어렵게 확보했던 조선의 국고는 단기간에 탕진됐다. 진령군은 1894년 갑오경장 때 붙잡혀 사형에 처해졌지만 이미 조선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져있었다. 그 결과는 ‘망국’이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러시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제정 러시아 말기, 로마노프 왕조에는 ‘라스푸틴’이라는 요승이 있었다. 이 사람은 진령군처럼 온갖 감언이설을 통해 황제와 황후의 환심을 샀다. 이후 라스푸틴은 국가의 주요 정책 결정에 관여했고, 과도한 전횡과 사치를 일삼으며 제정 러시아를 병들게 했다. 결국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해 볼셰비키 혁명이 발생했고, 로마노프 왕조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진령군과 라스푸틴은 명백한 ‘사이비’들이었다. 감언이설로 핵심적인 사람이나 다른 수많은 사람을 현혹했고, 일종의 ‘가스라이팅’(정신적 지배)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충족해 나갔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대상들은 공통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다. 그런데 이 같은 사이비들은 비단 과거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현대에 와서 더욱 극성스럽게 준동하고 있다.
최근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JMS(기독교복음선교회)는 사이비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 단체의 교주인 정명석은 감언이설로 수많은 여성 신도들을 세뇌했고, 누구 말마따나 짐승도 하지 않는 엽기적인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다.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해도 눈곱만큼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영향을 받은 여신도들은 성적 타락, 가정 파괴 등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보았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사이비 논란이 강하게 일고 있다. 과거 재판부로부터 ‘사이비종교 교주’라는 판결을 받은 한 무속인이 국가의 주요 정책 결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권력자가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으로 보인다. 과거 국내 정치권에서 이 같은 논란이 노골적으로, 그리고 빈번하게 발생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녹록지 않은 상황 가운데 한국교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대체로 신앙적으로 접근하는 사이비들을 물리치는 것은 교계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역사적인 사례들을 비춰봤을 때 사이비의 준동이 교계는 물론 국가와 사회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가야 한다. 신명기(18:10~12)에 나오는 말씀처럼 사이비들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교계 스스로 사이비들과 명확히 구별되는 온전한 위치에 서 있을 때, 사이비 퇴치가 더 효과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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