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1 딸 맡길 곳이 없어요”...돌봄 공백에 우는 워킹맘들 [오늘도 출근, K직딩 이야기]
88% “아이 맡길 곳 없어...비용 막대”
문제는 자녀가 공립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발생했다. 오후 1시에 수업이 끝나면 학교는 아이들을 집으로 보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어린 자녀만 덩그러니 놓이는 상황이 일어났다. 방과 후 돌봄교실을 신청했지만 떨어졌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 추첨을 돌렸고 A씨는 추첨에서 떨어졌다. 주변 가족에게 맡기기도 어려웠다. 배우자와 본인이 둘 다 지방 출신인 A씨 가족은 서울에서 아이를 맡길 친척이 없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으니 학원을 보내거나, 부모 중 한쪽이 일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막대한 학원비를 감내할 수 없던 A씨는 결국 퇴사했다. 오랫동안 쌓아온 경력을 포기하고 말았다. A씨는 “아이를 무사하게 키우려면 부모가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거나, 아이를 사교육의 늪에 밀어넣어야 한다. 현실이 이런데 누가 아이를 낳겠는가. 출산률 높인다고 이상한 데 돈을 쓰지 말고 현실적인 정책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돌봄 공백’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업주부 비중이 줄고, 맞벌이 부부 비율이 증가했는데도, 여전히 과거에 멈춰 있는 교육 제도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직장인들이 가장 심각하다고 꼬집는 시기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영·유아 때나, 유치원을 보낼 때만 해도 버티던 직장인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를 버티지 못한다는 하소연이 쏟아진다. 현실에 맞지 않는 교육 정책이 사교육 시장의 성장을 부추기고, 무자녀 가구를 늘리는 데 일조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매경이코노미가 HR 플랫폼 ‘진학사 캐치’에 의뢰, 직장인 육아 현실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응답자 350명)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돌봄 비용이 막대하게 든다’고 답한 비율이 88%나 됐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12%에 그쳤다.
돌봄 비용이 많다 보니 직장인들은 아낄 수 있는 곳에서 돈을 최대한 아낀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영·유아 자녀를 둔 직장인 62%가 자녀 양육을 본인 또는 배우자가 맡는다고 답했다. 전문 돌보미를 쓴다는 답변은 8%에 그쳤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해인 씨는 “영·유아 때 전문 돌보미를 한국인으로 고용하면 막대한 돈이 든다. 이 시기는 아이를 키울 때 분유값을 포함해 많은 돈이 나간다. 돌보미까지 고용하면 일반 직장인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아이가 성장한 뒤 유치원·어린이집에 다니면 부담은 더 줄어든다는 직장인이 다수였다. 43%의 직장인이 한 달 동안 유치원·어린이집에 쓰는 비용이 30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아무리 많이 쓰더라도 70만원은 거의 넘기지 않았다.
유치원·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순간 문제가 다시 불거진다. 초등학교 1학년인 경우 수업이 오후 1시에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는 맞벌이 가정을 위해 초등돌봄교실을 운영하지만, 경쟁이 치열하다. 일부 학교는 추첨제로 돌봄교실에 들어올 학생을 뽑는다. 추첨에 떨어지면 아이는 바로 집으로 와야한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보니, 갈 만한 곳은 학원밖에 없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직장인 응답자의 51%가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고 답했다. 방과 후 학교에서 아이를 맡는다고 답한 비율은 24%에 머물렀다. 공교육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설령 아이가 돌봄교실에 들어가도 걱정이 태산이다. 돌봄전담사에 대한 낮은 처우 때문에 파업이 빈번하게 일어나서다. 3월 31일부터 돌봄전담사들이 속해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했다. 기껏 추첨에 뽑혀서 애를 맡기는 데 성공해도, 부모들은 ‘돌봄 공백’에 대한 우려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유연근무 도입이 출산률을 높인 사례가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에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봉쇄 조치가 시작된 2020년 이후 대략 9개월~1년 동안 ‘코로나 베이비 붐’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재택이 가능하고 근무 형태가 유연한 사무직에 고용된 계층일수록 출산율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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