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캠도 없이 역주행…걸그룹 하이키 '건사피장' 이유있는 기적

어환희 2023. 3. 3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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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하이키((H1-KEY)'가 데뷔 1년 2개월 만에 곡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로 국내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진 GLG


정상 방향이 아닌 반대로 주행하는 행위, ‘역주행’의 의미가 긍정적이고 설레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은 가요계가 유일하다.
대형 기획사 아이돌이 음원차트를 장악하고, 발매 초반 노래가 주목받지 못하면 순식간에 순위권에서 밀려나는 음악판이지만, 잊혀져 가던 노래가 어떤 계기로 재조명되며 인기를 얻게 되는 '기적'이 종종 생겨나곤 한다.
2021년 '롤린'의 브레이브걸스, 지난해 '시간의 지평선'의 윤하가 그런 사례였다. 올해는 지난해 데뷔한 4인조 걸그룹 '하이키(H1-KEY)'가 역주행의 첫 주인공이 됐다.

이들에게 역주행의 기쁨을 안겨준 곡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줄여서 '건사피장'이라 불리는 노래다. 지난 1월 5일 데뷔 1주년을 맞아 발매한 첫 미니 앨범 '로즈 블라썸'의 타이틀 곡이다. 곡 발표 후 한 달 넘게 음악방송 출연 등 활동을 했지만,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잊혀져 가는 듯 했던 이 노래가 음원 차트 순위권에 모습을 보인 것은 두 달 가량 지난 뒤다.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달 24일 처음으로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멜론의 ‘톱100’ 차트에 들어섰다. 이달 초중순 멜론, 지니, 플로 등 주요 차트 10~20위권까지 치고 올라오더니, 지난 10일엔 벅스 실시간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같은 역주행에 감격한 하이키는 소속사 GLG를 통해 "기대보다 높은 순위를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까 많은 분께서 저희 노래를 들어주신다는 것이 체감되면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며 "앞으로도 저희 노래가 많은 분께 위로와 희망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이키(H1-KEY)'의 음악방송 활동 모습. 사진 GLG(각 방송사 화면 캡처)


이 곡의 역주행 요인으로는 노래 자체가 가진 힘이 꼽힌다. 박준우 대중음악평론가는 “기존 K팝은 훅(hook, 후렴구), 벌스(verse, 도입부) 등이 각각 달라 화려하면서도 구성이 복잡한데, 이 노래는 듣기 편안한 팝에 가까워 일차적으로 대중의 마음을 얻었을 것”이라며 “공감과 위로를 주는 스토리 위주의 가사 역시 역주행에 큰 몫을 했다”고 분석했다. 걸그룹 러블리즈 출신 (이)미주가 자신의 SNS 등에 이 노래를 극찬하는 감상평을 올린 것도 역주행의 한 계기가 됐다.

실제로 이 노래에 대한 호평 중에는 '무엇보다 노래 가사가 주는 메시지에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는 반응이 많다. 밴드 데이식스의 영케이(Young K)가 작사를 맡은 가사는 차갑고 어려운 세상에서 꿈과 희망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담았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도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처럼 악착같이 피어나 '꺾이거나 시들지 않고 견뎌내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는 가사는 이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한 격려다.

하이키 멤버들이 처한 상황과 노래 가사가 맞물려 공감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하이키 멤버 4명은 모두 타 기획사 연습생 출신인데, 데뷔 일정이 틀어지는 등 각자 고충을 겪다가 작은 기획사에서 팀으로 데뷔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해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노래 가사가 우여곡절 끝에 중소 기획사로 옮겨 데뷔한 멤버들의 처지와 잘 맞아 떨어진다”며 “기존 걸그룹들의 'I love myself(난 나 자신을 사랑한다)'와 같은 메시지와는 차별화된 좋은 노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이키는 앞서 역주행 신화를 쓴 선배 걸그룹 이엑스아이디(EXID), 브레이브걸스처럼 중소 기획사 소속이지만, 팬들의 '직캠'(이엑스아이디)이나 진정성 있는 군대 위문공연(브레이브걸스) 등 노래 외적인 계기가 아닌, 노래 자체의 힘으로 역주행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힘든 세상살이에 지친 많은 사람들을 공감 가는 따뜻한 가사로 위로해준다는 점에서 '시간의 지평선'(윤하)의 역주행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노래 가사처럼 '어렵게 피어난 장미'인 하이키가 대형 기획사 소속 아이돌 그룹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삭막한 이 도시'에서 '아름답게 물들고, 고갤 들고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가요계와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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