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대표 MZ' 빈 살만 "나의 사우디가 궁금해?" [중동 머니 추적기]

오민지 2023. 3. 3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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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TV 오민지 기자]

재력이 만수르에 10배, 무려 2700조원의 소유자 빈 살만. 흔히들 '빈 살만'이 그의 이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살만의 아들'이라는 의미다. 1985년생, 우리 나이로 39살에 불과한 그가 세계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단순히 '영앤리치'라고만 평가하기엔 부족하다. 세계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하는 글로벌 키맨(Key Man), 빈 살만을 추적해 본다.

● 영화 같은 왕위 계승 과정…사촌형을 숙청하다

지금이야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빈 살만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왕위 계승 목록에서 후순위일 뿐이었다. 빈 살만의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는 무려 7형제 중 막내였다. 심지어 할아버지는 자식들 7형제가 모두 왕위를 거치기 전까지는 손자들이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는 유언까지 남겼다. 야속한 할아버지 탓에 왕위 후계의 꿈은 멀기만 했던 상황. 그러던 중 큰 아버지들이 건강 악화로 연이어 사망하게 된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7형제 중 가장 막내였던 아버지가 극적으로 왕위에 오르며 빈 살만은 인생 반전을 맞게 된다.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는 왕세제를 거쳐 2015년 왕위에 오른다. 빈 살만은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 당시 왕세자로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의 조카이자 빈 살만의 사촌형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가 임명된다. 아버지가 왕위에 오른 마당에 빈 살만이 국방장관 자리가 성에 찰 리가 없다. 물론 그의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도 자신의 아들인 빈 살만을 왕세자로 임명하고 싶었다. 다만 정치적으로 왕조의 갈등 상황을 대대적으로 보이기에는 부담이었을 터. 때를 기다리던 빈 살만 부자는 이후 2017년 나예프 왕세자를 폐하고 빈 살만을 왕세자로 올리는 칙령을 발표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왕세자의 자리까지 오른 빈 살만은 이후 정적을 숙청하며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세운다. 피의 왕위 싸움을 마치고 빈 살만은 사우디 왕세자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 "누가 뭐래도 최고 권위는 사우디 왕조"

사우디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종주국이다. '와하비즘'이라고 불리는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이념이기도 하다. 코란을 받들어 엄격하고 청렴한 생활을 중시해 술과 담배, 게임 마저도 금기시하는 금욕 생활을 강조했다. '와하비즘'은 사우디의 근간이 되기도 했지만 아주 엄격하게 무슬림 복고주의적 사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사우디의 혁신과 발전에 저해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형상화를 금기시 하는 이슬람적 교리에 반한다는 이유로 텔레비전 방송국까지 공격을 받았다. 인간의 형상이 텔레비전에 나온다는 이유에서다.

여성 정책에서도 와하비즘은 사우디의 발목을 잡았다. 여성을 교육하는 것에도 불만이었던 와하비즘은 여성의 운전도 철저히 금지시켰다. 다른 무슬림 국가들은 여성의 운전을 허용했음에도 사우디에서는 여성이 운전할 시 금지령 위반으로 체포하기도 했다. 그 이유가 가관이다. 여성이 운전을 하면 성폭력에 노출된다는 것.

MZ세대인 빈 살만의 눈에는 사우디의 근대화와 개혁을 저해하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빈 살만은 사우디의 최고 권위는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비 사상'이 아닌 사우디 왕조임을 내보이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온건적 이슬람 확립을 위해 정책을 이어갔다.

빈 살만은 기존에 금기시 되었던 오락거리를 마련하면서 국민들의 즐길거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했던 이슬람 근본주의에 제대로 반하는 정책이었다. 빈 살만은 영화관, 콘서트 등을 만들면서 국민들의 환호를 한몸에 받았다. 그리고 빈 살만의 가장 급진적인 개혁 중 하나로 꼽히는 여성 정책으로 와하비즘에 대한 권위 확인과 동시에 경제 개발의 발판을 마련하며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다.

● "여자들 하고 싶은 거 다해"…사우디에 부는 '여성 시대'

사우디의 여성권은 타 무슬림 국가들에 비해서도 상당히 낮았다. 워낙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고수하다보니 남성 후견인이 없으면 여성 혼자 외출도 힘든 정도였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인 2012년만해도 사우디의 여성 취업률은 15%에 불과했다. 가장 기본적인 시민권이라고 여겨지는 참정권도 2015년이 되어서야 83년만에 여성에게 주어졌다. 여성 인권으로는 21세기 글로벌 스탠다드에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

빈 살만은 사우디 개혁을 위한 '비전 2030'에 여성 정책을 포함시키며 변화를 꾀했다. 외국인들이 대체하고 있는 부족 노동력을 여성이 채울 수 있도록 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방침에서다. 그 일환으로 2018년 6월 여성들의 운전이 허용됐다. 1980년대부터 제한됐던 여성들의 영화, 콘서트 관람도 다시 열리게 된다. 또 사회 풍속을 단속한다는 명분으로 여성들의 외부 활동을 감시, 감독했던 종교 경찰의 권한도 대폭 줄였다.

여성들의 권리가 신장되면서 사우디 내 여성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지난 2~3년 사이 사우디 내 여성 취업률도 33%(CNBC 2021년 기준)까지 올라왔다. 다만 국제인권단체 등 일각에서는 빈 살만의 이번 여성 정책들이 여전히 '보여주식'에 그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 "석유 말고도 신성장 찾자"…네옴시티로 꾀하는 성장

빈 살만은 석유 의존적인 경제 구조를 탈피하고 사우디의 신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비전2030'을 추진했다. 친환경적이면서도 첨단 기술의 집합도시인 '네옴시티'를 만들어 사우디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자원 기반 경제 구조의 취약점을 개선하면서도 빈 살만의 정치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더 없이 좋은 명분이 됐다.

최첨단 친환경 미래 도시인 네옴시티는 전문가 추산 약 1조 달러, 한화로 약 1300조원이 투자되는 빈 살만의 초대형 프로젝트다. 서울의 44배 규모이자 쿠웨이트, 이스라엘 등 하나의 국가보다도 넓게 만드는 설계다. 산업단지가 바다 위에 자리하고 스키장은 사막 위에 위치해 있는 꿈에나 있을 법한 도시 계획이다. 빈 살만은 총 900만명의 인구 유입을 목표로 하나의 작은 세계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거창한 네옴시티 계획에 세계는 '판타지에나 있을 이야기'라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빈 살만이 누구인가. 오일 머니의 중심이자 '미스터 에브리씽(Mr. Everything)'이라고 불릴 만큼 갑부인 빈 살만이었다. 세계 경제는 네옴시티에 주목했고 지난해 11월 그가 방한했을 당시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당시 빈 살만은 윤 대통령을 비롯해 재계 총수를 만나는 자리에 참석했다. 한국 기업들은 사우디와 23건의 신사업 MOU를 체결했고 그 범위는 화학, 게임, 제약, 수소 개발, 스타트업 지원 등 다방면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네옴시티의 화려한 전망 이면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업의 상당 부분에 오일 머니가 초기 투자금으로만 지급되고 이후에는 해외 투자금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되레 돈을 다시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사우디 입장에서도 네옴시티 건설에만 천문학적인 투자가 들어갈 경우 국가 경제 전망에 악영향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하기도 했다.

(▲ 마이클 클라인)

● CS에 뒷통수 맞은 빈 살만…날아간 투자금 2조원

최근 뉴스에 빈 살만의 이름이 오르내린 이유는 글로벌 유동성 위기 속에 파산 위기를 맞았던 크레디드스위스 때문이다. 빈 살만이 유럽 은행에 투자하게 된 발단은 그가 굴뚝 같이 믿었던 씨티그룹 출신의 마이클 클라인 때문이었다.

빈 살만은 마이클 클라인과 2019년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를 상장시킬 때부터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마이클 클라인은 자문을 맡아 아람코 상장을 도왔고 이후 CS 퍼스트 보스턴의 CEO 지명자로 마이클 클라인이 합류하면서 빈 살만이 투자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당시 사우디는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외 은행들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PIF는 사우디의 국부로 운영되는 투자 기금으로 6,200억 달러, 우리돈 800조원 규모의 자금을 운영하는 곳이다. 사우디 국립은행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그런 PIF가 사우디 국립은행을 CS에 연결해줬고 이 투자를 통해 사우디 국립은행은 CS의 10% 미만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최대 주주가 됐다. 당시 투자한 금액은 15억 달러, 우리돈으로 2조원이 조금 안 되는 수준이었다.

CS가 파산 위기에 처하고 빈 살만의 2조원 손실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5천만원 투자하다 만원 잃은 격'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PIF 간부들은 CS의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해 투자를 반대했고 빈 살만이 큰 소리치며 진행시킨 투자건이었다는 점에서 뼈아픈 손실이라 할 수 있다. 빈 살만은 앞서 살펴본 탈 '석유 의존 경제'를 외치며 해외 금융 투자에도 눈을 돌렸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큰 손실이라는 점이 상징적이라는 것이다.

"사우디 국민의 70%는 서른 살도 되지 않는다" -무함마드 빈 살만

국가 경제에 활력을 더해줄 젊은 국민들이 탄탄하고 오일 머니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사우디는 지난해 4분기에만 GDP 5.5%가 증가하는 등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비석유 부문의 성장세가 매서워 빈 살만이 주력하는 석유 의존 경제의 탈피에 점차 더 가까워 지고 있는 추세다. 중동 최고 오일 머니를 지닌 빈 살만의 앞으로의 행보에 국제적 관심이 주목되는 이유다.

[중동 머니 추적기] 글로벌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오일 머니들을 찾아 나섭니다.
오민지기자 omg@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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