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만 보는 '주맹증'의 실체… 시각 심리학자가 본 영화 '올빼미'
주인공 경수(류준열 분)는 맹인 침술사로 그 능력을 인정받아 궁궐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경수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었는데, 낮에는 전혀 보지 못하지만 밤에는 주변을 볼 수 있는 ‘주맹증’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타인에게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소경이 앞을 보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 그 이유. 봐도 보지 않은 것이고, 들어도 듣지 않는 것이 진리인 궁궐에서 경수가 일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맞춤형 인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경수가 한밤중에 발생한 소현세자의 독살 장면을 목격하면서 생기는 일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나 역사적 사실을 논하기에는 전문성이 높지 않으니 각설하고, 이 영화에서 시각 심리학자인 필자를 사로잡은 것은 ‘주맹증’이라는 현상이었다. 낮에는 보지 못하고 밤에 볼 수 있는 이 증상(더 정확하게는 밤의 시력이 낮의 시력보다 더 좋은 현상). 일반적으로 우리는 낮의 시력이 밤의 시력보다 더 좋다. 굳이 말하자면 낮에는 고해상도의 컬러 영상을, 밤에는 저해상도의 흑백 영상을 본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의 망막에 존재하는 두 세포를 이야기해야 한다.
보는 활동의 시작점을 망막(retina)으로 보는데, 이는 망막에서 눈에 들어온 빛이 신경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기화학적 신호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이 변환을 담당하는 세포를 ‘광수용기(photoreceptor)’라고 한다. 광수용기는 원뿔세포(추상체, cone)와 막대세포(간상체, rod) 두 종류가 있는데, 각각 낮과 밤을 책임지고 있다. 낮의 시야를 담당하는 원뿔세포는 세상을 생생하고 세세하게 볼 수 있게 한다. 이에 반해 밤의 시야를 담당하는 막대세포는 해상도가 높지 않아 흐릿한 영상만을 볼 수 있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두 종류의 광수용기가 망막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망막의 영역은 크게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 보고 있는 사물의 상(이미지)이 맺히는 영역인 ‘중심와’와 그 외의 부분을 일컫는 ‘주변시야’로 구분할 수 있다. 중심와에는 낮의 시야를 담당하는 원뿔세포만 촘촘하게 분포되어 있는 반면, 주변시야에는 원뿔세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수가 매우 적고, 대신 많은 수의 막대세포가 분포되어 있다. 단순화시켜 종합하자면, 낮에는 중심와에 있는 원뿔세포의 활약으로 형형색색 고해상도 세상을 지각할 수 있다면, 밤에는 주변시야에 있는 막대세포의 활약으로 흐릿한 저해상도의 흑백 세상을 지각한다.
주맹증은 다양한 이유로 낮 동안 중심와 영역에 제대로 된 상이 맺히지 않을 때 발생한다. 흔히 주맹증을 백내장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는데, 백내장이 수정체 중앙 부분을 탁하게 만들면 중심와에 상이 제대로 맺히지 못하고 그 결과 낮에 시력 저하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막대세포 ‘단색시(Rod Monochromacy)’를 가진 사람들도 주맹증 현상을 보인다. 이들은 유전적인 이유로 망막에 원뿔세포가 전혀 없고 막대세포만 가지고 있다. 막대세포 만으로 세상을 지각하다 보니 색채지각을 전혀 할 수 없고, 낮에도 0.1 이하의 시력을 보이며, 햇빛에 약해 언제나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야 한다.
그러나 주맹증 환자들이 모두 경수처럼 낮과 밤의 시력이 맹인과 정상인의 수준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실은 시각 심리학을 전공하는 필자조차도 낮에 맹인 수준으로 시력을 상실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필자의 배움이 짧아 모를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필자는 주맹증에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으로 이해하며 영화를 즐겼다.
어둠 속에만 볼 수 있는 경수가 유일한 목격자라는 사실은 참으로 모순적으로 들린다. 밤의 세포인 막대세포는 역설적으로 빛에 더 민감하다. 빛에 너무 민감하기 때문에, 즉 작은 빛에도 반응할 수 있기 때문에 밤에만 작동한다. 낮이 되면 빛이 너무 강렬해서 작용하지 않는다. 일종의 번아웃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그 강렬한 빛이 없을 때, 민감한 밤의 세포는 어둠 속에 있어 보이지 않아야 했던 것들을 비로소 보게 해 준다. ‘올빼미’ 영화의 감독은 볼 것 많고 복잡한 우리네 사회의 강렬함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시각 심리학자로서 슬며시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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