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평점에도 695만 '스타파워', 김수현이라 가능했다
[양형석 기자]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7년 패션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전지현은 1998년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 후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과 드라마 <해피 투게더>에 차례로 출연했다. 당시만 해도 전지현은 잡지모델로 시작해 배우로 활동범위를 넓힌 많은 10대 유망주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지현은 1999년 한 편의 프린터 CF를 통해 '밀레니엄 CF요정'으로 떠오르며 연예계에서의 입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2000년 영화 <시월애>에서 이정재와 호흡을 맞춘 전지현은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서울에서만 17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형홈런'을 날렸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물론 <엽기적인 그녀>는 1990년대 후반 PC통신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설을 원작으로 코미디와 멜로가 적절히 섞인 잘 만든 상업영화였다. 하지만 전지현의 '스타파워'가 없었다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긴 힘들었을 것이다.
▲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김수현의 티켓파워로 전국 7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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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15년, 대한민국은 김수현의 세상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기학원에 다니며 배우의 꿈을 키운 김수현은 연극영화과 진학을 꿈꿨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하지만 김수현은 계속된 입시실패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4수 끝에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물론 김수현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과 청소년 드라마 <정글피쉬> 등에 출연하면서 조금씩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서 고수의 아역을 연기한 김수현은 2010년 <자이언트>에서 박상민의 아역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이는 2011년 <드림 하이>의 주인공 송삼동 역의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드림 하이>를 통해 대중들이 주목하는 젊은 배우로 급부상한 김수현은 2012년 시청률 40%를 넘긴 퓨전사극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통해 대세스타로 떠올랐다.
그해 여름 12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도둑들>에서 와이어 컨트롤을 담당하는 잠파노를 연기한 김수현은 2013년 첫 단독주연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출연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영화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김수현이 가진 스타성을 앞세워 개봉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관객몰이를 하며 전국 695만 관객을 동원했고 2013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 흥행 5위를 기록하며 크게 선전했다.
2013년 겨울 전지현과 함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출연하며 대세행보를 이어간 김수현은 2015년 드라마 <프로듀사>를 통해 KBS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상파 3사를 합쳐서 20대 남자배우의 대상 수상은 2002년 <야인시대>의 안재모 이후 13년 만이었다. 하지만 김수현은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후 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자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이었던 <리얼>이 크게 실패하면서 명성에 흠집이 생겼다.
1사단 수색대대에서 군복무를 마친 김수현은 2020년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로 컴백해 건재를 과시했고 2021년에는 차승원과 함께 쿠팡플레이의 첫 오리지널 드라마 <어느날>에 출연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작품활동이 없었던 김수현은 올해 하반기 tvN을 통해 방송될 예정인 <눈물의 여왕>에서 <나의 해방일지>의 김지원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김수현은 <별에서 온 그대>와 <프로듀사>에 이어 또 한 번 박지은 작가의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
▲ 김수현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도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동구 캐릭터로 특별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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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대하게>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됐던 HUN작가의 동명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평범한 마을에 특수훈련을 받은 남파간첩이 동네바보로 위장해 살고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웹툰으로 영화 버전 역시 웹툰의 설정과 내용을 상당 부분 따라가고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2016년 뮤지컬로도 제작돼 올해까지 5번에 걸쳐 공연되고 있는데 이규형과 오종혁, 지일주 등이 주인공 원류환을 연기한 바 있다.
몇 가지의 삭제 장면을 제외하면 원작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영화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설정이 변한 캐릭터도 있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배우 김성균이 연기한 서수혁이다. 원작에서 서수혁은 김태원(손현주 분)에게 아버지를 잃고 북한에 위장진입해 백두조 조장이 된 후 다시 남한으로 내려오는 '이중간첩'으로 나온다. 하지만 영화판에서 서수혁은 5446부대 출신으로 북한 탈출 도중 동생을 잃고 남한에 투항한 인물로 나온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해를 품은 달>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김수현이 주인공 원류환 역에 캐스팅되면서 개봉 전부터 엄청난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실제로 김수현이 가진 기대 이상의 티켓파워 덕분에 700만에 육박하는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물론 <설국열차>나 <관상> 같은 여름 시즌의 기대작들보다 한 박자 빠른 6월에 개봉한 덕을 보기도 했지만 김수현이라는 '대세스타'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이런 흥행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4.88점의 낮은 기자와 평론가 평점이 말해주듯 사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높은 흥행성적만큼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는 아니었다. 특히 주요인물들이 만나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코믹한 전반부에 비해 남파부대 교관 김태원이 남한으로 내려오고 원류환 일행과 싸우는 후반부를 지나치게 길고 비장하게 연출했다. 실제로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즐기다가 늘어지는 후반부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원작자인 HUN 작가는 영화가 개봉할 때 "500만 관객을 돌파하면 2탄을 연재하겠다"는 공약을 걸었고 영화가 600만 관객을 넘기자 2013년 10월 프리퀄에 해당하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유일하게>를 연재했다. 하지만 <은밀하게 위대하게 유일하게>는 전편만큼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영화 역시 개봉 10년이 될 때까지 속편 제작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 박은빈(오른쪽)과 최우식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남매사이로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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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휴대전화 CF에서 '맷돌춤'으로 얼굴을 알린 후 2012년 드라마 <각시탈>에서 이강토(주원 분)의 라이벌 기무라 슌지를 연기했던 박기웅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원류환의 동료이자 라이벌 리해랑을 연기했다. 리해랑은 영화에서도 원작웹툰과 마찬가지로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후반부 김태원이 수류탄을 터트리려 할 때 김태원을 붙잡고 옥상에서 투신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2022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 리우를 연기했던 이현우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원류환에 대한 존경심이 지나쳐 일부 독자와 관객들로부터 성소수자로 의심 받았던 리해진 역을 맡았다. 리해진은 마냥 어려 보이는 미소년이지만 10대의 나이에 5446부대 오성조장에 선발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고 마지막까지 원류환을 위해 희생하며 독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캐릭터다.
영화에서는 그저 김태원의 오른팔 정도로 나왔지만 엄태구가 연기한 황재오는 원작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원류환과 리해랑에게 열등감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리해랑이 감추고 살았던 출생의 비밀을 폭로했다가 원류환에게 제압 당하고 그 후 리해랑을 칼로 공격하지만 오히려 리해랑에 의해 목에 칼이 찔리며 사망한다. 황재오는 서수혁과 함께 영화판에서 개인의 이야기가 가장 많이 삭제된 비운(?)의 캐릭터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는 개봉 10년이 지난 오늘날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스타 배우가 둘이나 출연한다. 바로 원류환이 사는 마을의 남매로 출연한 박은빈과 최우식이다. 박은빈은 <청춘시대> <스토브리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에서와 달리 조용하고 얌전한 회사원 윤유란를 연기했고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실질적인 첫 상업영화였던 최우식은 원류환이 위장한 동네바보 동구를 괴롭히는 고등학생 윤유준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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