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그래서 2부속실을 되살려야 한다

고정애 2023. 3. 3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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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여사 제안 누락 참모 교체
김 여사 정상 조력 있었더라면…
국민 양해 하에 정상화 고민해야
고정애 Chief에디터

대통령 부인의 단독 인도 방문이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들에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를 다음 달 중순 백악관으로 공식 초청했다는 게 낯설 것이다. 얼마 전 홀로 순방에 나섰던 바이든 여사는 이번엔 엄청 보수적인 나라 퍼스트레이디의 단독 순방도 만들어냈다. 대단하다.

오랫동안 퍼스트레이디를 ‘숨은 권력자’라고 했다. 대통령 부인(바버러 부시)의 날카로운 시선을 의식하지 못했던 대통령 군사고문이 순방 중 쫓겨난 일이 있을 정도로 막강했지만, 밖으론 그리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곤 했다. 그러다 힐러리 클린턴, 미셸 오바마를 거쳐 바이든 여사에 이르러선 ‘드러내놓고 권력자’가 된 듯하다. 특히 바이든 여사는 백악관의 소수 참모 회의에도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보다 더 많이 선거운동가를 만나고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에서 정치 현안에 대해 답한다.

일종의 ‘뉴노멀’이다. 그렇더라도 백악관 내부는 미묘할 것이다. 선출직 대통령을 보좌하는 웨스트윙(대통령 참모들)과 대통령 부인, 그리고 부인을 위해 일하는 이스트윙(대통령 부인 참모들) 사이의 관계에선 말이다. 미셸 오바마의 경험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나는 다른 퍼스트레이디들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웨스트윙의 정무에 직접 혹은 노골적으로 끼어들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대신 내 직원들이 버락(남편 이름)의 직원들과 매일 소통하도록 해 웨스트윙과 의견을 나누고 일정을 맞추고 계획을 점검했다. 내 견해이긴 하지만 대통령의 고문들은 겉모습에 지나치게 조바심칠 때가 있었다.”(『비커밍』)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2022년 11월 1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응우라 라이 국제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미셸의 완곡어법을 걷어내면, 개입했고 대통령 참모들이 방어적이었다는 의미겠다. 한 사례가 백악관에서의 핼러윈 파티였다. 미셸의 참모들은 미셸의 아이디어 실현을 위해 버락의 참모들과 설전을 벌였다. 백악관 수석고문이었던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대변인인 로버트 기브스는 대통령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크게 우려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기간 중 블랙핑크와 레이디가가의 합동 공연을 갖자는 바이든 여사의 제안이 여러 차례 용산 대통령실 참모들에 의해 누락됐다는 얘기를 들으며 처음엔 의아했다. 그러다 문득 이번에 교체된 국가안보실장·의전비서관·외교비서관 모두 대통령의 참모란 데 생각이 미쳤다. 정통 외교통인 이들에겐 정상회담의 제대로 된 성과물은 ‘나토식 핵 공유’이거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반도체법에서 미국의 양보였을 것이다. 이걸 위해 총력전을 벌였을 테고 말이다.

문화행사? 이들에게 우선순위가 맨 앞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바이든 여사의 카운터파트인 김건희 여사에겐? 달랐을 것이다. 김 여사가 도중에라도 알았다면? 진즉 바로잡혔을 것이다.

우린 종종 시스템 잘못이 큰데 사람 탓을 하거나, 사람 잘못이 큰데 시스템을 탓하곤 한다. 이번 파문은 시스템 탓이 크다고 본다. 김 여사가 퍼스트레이디로서 정상적 조력을 받지 못하는 시스템 말이다. 바이든 여사의 제안을 김 여사가 제때 알고 반응할 수 있었어야 했다. 이번에 드러났듯, 지금처럼 알음알음 몇 명이 비공식적으로 돕는 건 효율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 대통령실 인사가 “한두 명 드러난 비서관 외에도 사방에 돕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하던데, 정상이 아니다. 권력의 ‘음지’는 루머를, 루머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미지는 대체로 진실처럼 소비된다. 건강하지 않다. 대통령을 돕는 사람은 대통령을, 부인을 돕는 사람은 부인을 도와야 그 안에서 제대로 된 협력과 긴장이 있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과거 “대통령 부인은 그냥 대통령의 가족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그냥 대통령의 가족’이 아닌 건 대통령 본인이 가장 느낄 것이다. 이제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이스트윙', 제2 부속실을 되살려야 한다.

고정애 Chief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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