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라이프톡]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오병상 2023. 3. 31.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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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경질설이 나온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거짓말 하지 않는다고 해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팩트 자체가 틀린 말은 하지 않지만, 사건의 일부만 얘기함으로써 전체 맥락이나 진실을 감추는 경우가 그렇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진실을 얘기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모순 같지만 동시에 성립가능하다.
이런 상황은 정보의 불균형 상태에서 가능하다.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을 속일 수 있다.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단편적 정보만 던져줌으로써 잘 모르는 사람의 이해와 판단을 왜곡시킬 수 있다. ‘거짓말’이란 양심가책과 법적 책임을 피할 수도 있다.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가 전형적이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 기자에게 모두를 털어놓지 않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결국 사실의 일부만 얘기하게 된다. 자신의 권력장악에 유리한 것만 말해준다.
대통령실 안보실장 사퇴도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다. 관계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전체 맥락이 연결되지 않는다. 과거보다 대통령실 브리핑이 부실해진 경향도 있다. 대통령실이 기존의 레거시미디어(출입기자)를 우회해 지지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수단(SNS)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 정보망은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노자 도덕경의 비유와 같다. 방대한 사이버 공간에 구멍이 숭숭 난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언젠가 그물망에 포착된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의 거짓말은 더 무섭다.

오병상 칼럼니스트 oh.byung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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