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성격 좋은 사람’도 가스라이팅 아닐까?
‘이니셰린의 밴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관한 우화라고들 한다. 나는 이 영화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배경은 1923년 내전이 한창인 아일랜드의 작은 섬마을. 음악가 콜름이 둘도 없는 친구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파우릭이 “내가 말실수 한 게 있느냐”고 묻자 콜름이 답한다. “아니, 그냥 자네가 싫어졌을 뿐이야.”
파우릭이 속없이 굴며 계속 치근대자 콜름은 “남은 인생을 자네와 무의미하게 보내긴 싫다”며 최후통첩을 한다. “지금부터 귀찮게 할 때마다 내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겠네.” 파우릭은 자신이 살갑지만 지루한 사람이었음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난 내가 ‘성격 좋은 사람’이란 말이 좋은 얘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파우릭의 자각처럼, 성격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은 아니다. 성격 좋은 가장을 둔 가족은 과연 행복할까? 성격 좋은 사람이 팀장이라면? 옆 부서 일까지 떠맡게 되지 않을까? 스스로를 성격 좋다고 믿는 경우는 더 심각하다. 상황에 질질 끌려 다니다 일을 악화시키기 일쑤다. ‘난 언제나 좋은 사람’이란 자화상도 어쩌면 셀프 가스라이팅인지 모른다.
역설적인 것은 파우릭이 미움을 배우며 변화해간다는 사실이다. 그 변화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곧 ‘입장을 가진다’는 뜻이고, 입장을 가진다는 것은 ‘외롭지만 홀로 서본다’는 의미다. 때로는 미워할 것은 미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파우릭의 달라진 내면은 바다 건너 본토의 내전에 대한 태도에서 감지된다. 영화 초반 그는 경박한 반응에 그친다. “행운을 빈다. 뭣 때문에 싸우든 간에.” 막바지엔 다르다. “(내전은) 다시 시작될 거예요. 그냥 못 넘어가는 일도 있을 테니까.”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음을 긍정하게 될 때 인간에 대한 통찰이 생긴다. 그것을 우린 성숙,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부른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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