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실리콘밸리은행과 나파밸리

위문희 2023. 3. 3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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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문희 정치부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분교인 UC 데이비스(UC Davis)는 세계적인 와인 산지인 나파밸리 근처에 있다. 이 대학교는 1880년대부터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캘리포니아주 포도 재배지역을 세분화해 어떤 기후에는 어떤 포도 품종이 적합한지 등을 분류표로 만들었다. 미국 등으로 대표되는 신대륙 와인은 과학적인 접근이 특징이다.

와이너리 투어와 블라인드 테이스팅도 미국 와인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요소다. 로버트 몬다비는 ‘나파밸리 와인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대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을 캘리포니아 스타일로 재해석한 와인으로 미국 와인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와이너리 투어를 여행상품화한 것도 몬다비가 처음이다.

미국 와인의 위상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이라는 사건이다. 1976년 와인 수입업을 하던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가 파리에서 어떤 와인인지 모르고 맛보는 대회를 열었다. 심사위원 11명 중 9명이 프랑스인이었다. 레드와 화이트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이 1등을 차지했다. 좋은 와인은 반드시 구대륙에서 탄생한다는 신화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세계 와인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은 미국 와인업계가 이달 초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SVB는 1994년 와인사업부를 설립하고 나파밸리의 와이너리 400여 곳을 대출 고객으로 유치했다. SVB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과 IT 업계에 특화된 은행이다. 외부 투자를 많이 받은 스타트업들은 SVB에 예금은 유치했지만 대출을 받아가진 않았다. SVB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나파밸리로 눈을 돌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27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소재 중소은행 퍼스트시티즌스가 SVB 인수를 확정 지었다고 한다. 새 인수자가 와이너리 대출 부문 비용을 어떻게 평가할지 관심사다. 대출부담이 커진 와이너리들이 와인값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나비효과 이론은 나비의 미세한 날갯짓 한번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SVB 파산 사태가 태평양 건너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 지갑도 열고 닫게 할 수 있는 시대다.

위문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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