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혼자 사는 중년은 혼자 살지 않는다'는 역설
비혼 청년 늘며 향후 증가폭 커져
결혼과 가족이 '사치재'가 된 세상
관계망 형성해 돌봄 주고 받는 솔로
가장 시급한 건 돌봄의 폭 넓히기
친구·이웃도 돌봄휴가 주면 어떨까
'솔로=결핍·고독·고통'은 고정관념
에이징 솔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결혼이 인생의 통과의례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사는 삶이 평범한 인생으로 여겨졌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혹시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흠을 찾지 못한 경우에는 ‘아니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었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1인 가구를 찾아보는 게 흔한 일이 됐다.
다만 ‘에이징 솔로’의 저자는 아직 1인 가구에 관한 사회적 이해가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중년 1인 가구의 가장 큰 원인이 이혼이란 원인 분석도 지나치게 단선적인 해석이라고 지적한다. 그간 솔로 담론에서 중년은 청년과 노년에 밀려 소외됐다는 게 그의 주장. 20년째 솔로로 살아온 저자는 40·50대 비혼 여성 19명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젊을 때는 몰라도 늙어서 혼자면 외롭다’처럼 마치 ‘진리’인양 여겨지는 통념에 균열을 가한다. 중년의 ‘에이징 솔로’(혼자 나이 들어가는 상태)에 관해 김희경(56) 전 여성가족부 차관에게 질문했다.
-6년 전 출간한 ‘이상한 정상 가족’이 큰 관심을 받았고, 그에 따른 변화도 적지 않은 듯하다.
▲민법에서 아동에 대한 부모의 징계권이 폐지되는 과정에 미약하게나마 일조했다는 점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2019년 범부처 정책인 ‘포용국가 아동정책’에 최초로 징계권 재검토 계획이 포함됐을 당시 주무 부처 담당 과장에게서 ‘이상한 정상가족’이 적절히 문제를 지적해준 덕분이라는 인사를 받고 무척 기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2014년 아동인권단체에 몸담을 때는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후 자살하는 것을 ‘동반 자살’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문제 제기를 하고 해당 내용을 ‘이상한 정상가족’에도 담았는데 그 후 사회적으로 문제의식이 확산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1인 가구가 크게 늘고, 그에 관한 사회적 시선도 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 일환으로 그간 청년과 노년의 솔로 생활이 조명된 바 있는데, 상대적으로 중년의 솔로 생활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한 면이 있다.
▲1인 가구 이슈가 매체나 정책에서 다뤄지는 양상을 보면 주로 청년을 중심에 둔 ‘당당한 싱글’이거나 노인을 중심에 둔 ‘돌봐야 하는 싱글’ 위주다. 중년이 등장할 때는 대개 이혼하고 실직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 또는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 취약계층으로 묘사된다. 아마 1인 가구 중 이미지가 가장 부정적인 세대는 중년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중년 세대는 1인 가구 중에서도 37.6%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비혼 청년들이 나이 들면서 점점 더 느는 추세다. 혼자 사는 게 과도기적 상태가 아니라 삶의 기본값인 사람들이 나이 듦이라는 과제를 함께 직면하고 있다.
-결혼, 임신, 출산 등과 관련해 사회적 인식 변화가 엿보인다. 과거 결혼과 출산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간주됐다면, 이제는 ‘선택’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예전보다 강해진 듯하다.
▲기혼, 비혼을 불문하고 저희 세대는 물론 요즘 젊은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은 이미 당위가 아니라 선택 사항이 됐다고 본다. 언제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생애 시간표에서 본인에게 맞는 시기에 할지 말지를 선택하는 대상이 된 거다. 이건 진일보라고 평가한다. 반면 요즘엔 남녀 모두에게 결혼을 통한 가족 구성이 자유로운 선택 대상이 아니라 거의 ‘사치재’처럼 돼버린 듯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자유롭게 추구하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 커서 일정한 여건이 갖춰진 사람에게만 접근 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치재’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가족 구성이 ‘리스크’처럼 돼버린 현상은 안타깝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많은 부분에서 더 나은 변화가 필요할 텐데, 이와 관련해 책에서 ‘솔로는 외롭다’를 잘못된 통념으로 지적했다.
▲‘혼자 살면 젊어서나 좋지, 나이 들면 외롭다’라는 말은 중년의 솔로를 바라보는 가장 강력한 고정관념일 거다. 그러나 집필을 위한 인터뷰를 하면서 정반대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사 결과를 보면 ‘혼삶’(혼자사는 삶)의 걱정거리로 외로움을 꼽은 사람들은 대체로 젊었다. 혼자 사는 삶의 ‘구력’이 붙은 중년의 솔로들에겐 외로움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외로움을 누구나 겪는 존재의 기본 조건이라고 바라보거나 외로움이 고립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직접 느낀, 혹은 집필 과정에서 만나 인터뷰이들을 통해 알게 된 오해에는 무엇이 있나.
▲역설적이지만 ‘솔로는 혼자 살지 않는다’라는 것이 인터뷰 과정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다. 에이징 솔로는 혼자 살지만, 오롯이 혼자서만 사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둘러싼 관계망을 만들고 돌봄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었고. 자기 돌봄과 서로 돌봄의 가치를 중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년 1인 가구 증가의 원인을 이혼으로 단정하는 건 너무 단선적이라고 지적했다. 에이징 솔로가 늘어가는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나.
▲중년은 1인 가구 중에서도 획일적 묘사가 가장 들어맞지 않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결혼하지 않은 청년이나 사별로 혼자가 된 노인과 다르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중년이 되는 1인 가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이혼 별거 사별 등 결혼을 둘러싼 경험이 다양하다. 게다가 요즘 청년 세대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비혼을 선호하기 때문에 중년 1인 가구의 규모는 계속 늘어날 거라고 본다. 여성가족부가 2020년에 실시한 가족실태조사에서도 20대의 52.9%, 30대의 42.7%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홀로 나이 들어갈 에이징 솔로가 계속 늘어나리라 예측할 수 있다.
-소득 수준과의 상관관계도 확인되는지.
▲비혼의 증가에는 전반적으로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가하고 경제력이 상승하는 것이 끼친 영향이 크다. 그런데 과거에는 여성의 경우 고학력 고소득층에 비혼이 많고 남성의 경우 저학력 저소득층에 비혼이 많다는 게 통설이었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결혼을 통한 가족 구성이 ‘사치재’처럼 쉽게 엄두를 내기 어렵고 어떤 여건을 갖춰야만 가능한 일이 돼가고, 여전히 여성이 돌봄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가정 내 성별 구조에 큰 변화가 없다 보니 거의 모든 소득계층에서 비혼이 늘어나고 있지 않나 싶다.
-변화에 발맞춤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가장 시급한 건 돌봄의 폭 넓히기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우리 사회는 가족돌봄 휴가의 대상을 법적 가족으로만 제한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해외 주요국에는 돌봄 관련 사안에서 가족의 범주를 확장해 적용하는 사례들이 많다. 스웨덴에서는 중한 질병을 앓는 매우 가까운 사람을 돌보면 수당을 받을 수 있는데, 이때 ‘매우 가까운 사람’은 혈연이나 인척 관계가 아닌 친구와 이웃도 포함된다고 한다. 국내에서 가족이 아니라 친구나 애인과 함께 사는 비친족 가구도 벌써 100만명이 넘었다. 가족이 아니지만 친밀한 사람들끼리 서로 돌볼 수 있도록 돌봄의 폭을 넓히는 게 국가로서도 이득이고, 협소하고 경직된 가족의 개념을 유연하게 넓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솔로 남성 사례는 크게 다루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달리 남성은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뭔가 문제가 있거나 부족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가 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렇더라도 더 많이 만나서 남녀를 모두 포함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있다. 책에 짧게 인용했지만 혼자 살아가는 중년 남성도 사회적, 경제적 요인을 통제하고 나면 1인 가구로 살아가는 것이 주관적 행복감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변인으로 나타났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이번 책을 통해 기대하는 변화상이 있다면.
▲전통적 모습의 가족에서 이탈한 에이징 솔로가 결핍의 인생이고, 외롭고 힘들 거라고만 짐작하는 기존 고정관념에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그저 다양한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에이징 솔로가 유별나 보이지 않고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쓰면서 지녔던 바람이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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