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석 사태가 야구계에 남긴 숙제
[이준목 기자]
▲ 장정석 전 KIA 단장 |
ⓒ 연합뉴스 |
악재의 연속이다. 2023시즌 개막을 앞둔 프로야구가 이번엔 장정석 전 KIA 타이거즈 단장의 '뒷돈 요구 논란'으로 또다시 파문에 휩싸였다.
장정석은 결국 불명예스럽게 해임되었지만 후폭풍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프로야구의 계약 관행, 프런트의 투명성, 야구인들의 도덕적 해이 등 지금의 한국야구에 여러 가지 숙제를 남겼다는 평가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는 지난 29일 품위손상 행위로 물의를 일으킨 장정석 단장에 대해 징계위원회를 개최하고 해임을 결의했다고 발표했다. KIA 구단은 지난해 FA 박동원(LG)과의 협상 과정에서 장정석이 금품 요구를 했다는 제보를 접수한 후 사실 관계 등을 파악했다. 장정석 측은 "농담으로 얘기한 것"이라면서 해명했지만 증거가 된 녹취 파일에 따르면 뒷돈 요구가 2~3차례나 반복됐고, 요구 사항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박동원은 지난해 시즌 후 KIA의 연장계약 제의를 거절하고 LG와 4년 65억 원의 FA 계약을 체결했다. KIA와의 계약 가능성이 높아보였던 박동원의 갑작스러운 LG행에는 이 사건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비록 구단을 떠났지만 박동원과 선수협 측은 '선을 넘은 잘못한 관행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실을 공론화했다. 또한 KIA 구단은 '사실 관계를 떠나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소속 선수와의 협상 과정에서 금품 요구라는 그릇된 처신은 용납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장정석을 최종 해임 조치했다'는 입장이다.
장정석의 몰락은 '야구인 출신 프런트'의 성공신화에 먹칠을 했다는 점에서도 안타까운 장면이다. 장정석은 이른바 '대한민국에서 야구와 관련된 거의 모든 역할을 경험해본' 몇 안 되는 인물이다. 프로야구 선수를 비롯하여 은퇴 후에는 프런트에서 기록원-매니저-운영팀장-단장까지 두루 거쳤다. 2016년엔 히어로즈 감독으로 깜짝 선임돼 야구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당시 선수 경력은 있지만 지도자 경험은 전무한 프런트 출신에게 지휘봉을 맡긴 것은 전례가 없는 파격이었다.
선수로서는 평범했던 장정석이지만 감독으로서는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경험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키움과 재계약에 실패하여 지휘봉을 내려놓은 후에는 방송 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겨 경험을 쌓았다.
장정석은 그동안 현장과 프런트에 걸쳐 야구계 다방면을 넘나들며 활약하면서도 능력과 인망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 2021년 11월에 조계현 단장의 후임으로 KIA 단장에 선임된 이후로는, FA로 나성범을 영입하고 트레이드로 박동원을 영입하는 등 전력 보강을 진두지휘하며 4년 만의 가을야구 복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프로야구에서는 선수 출신들이 프런트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 특히 장정석처럼 현장 최고위직인 1군 감독, 프런트의 수장인 단장을 모두 경험한 야구인은 박종훈(전 LG 감독-한화 단장) 염경엽(현 LG 감독, 전 SK 단장), 양상문(전 LG 단장-롯데 감독) 손혁(히어로즈 감독-현 한화 단장)까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장정석은 현장과 프런트 양쪽에서 모두 역량을 인정받은 몇 안 되는 야구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비위 행위가 드러나며 장정석이 그동안 쌓은 커리어와 이미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동안 KBO리그에 야구인들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프런트의 최고 책임자인 단장의 일탈, 그것도 사적인 문제도 아닌 구단 실무(선수와 계약 협상)와 관련된 문제에서 비위가 적발되었다는 것은 초유의 사태다.
장정석과 박동원은 단순히 계약 문제로 얽힌 단장-선수를 떠나 같은 야구인 출신 선후배다. 특히 히어로즈에서는 감독과 선수로 사제의 인연을 맺었으며, 트레이드로 KIA에 박동원을 데려오는 것을 주도한 인물도 장정석이었다.
그런데 후배이자 제자인 선수를 상대로 뒷돈을 요구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상식적으로 요즘같은 시대에 단장이 선수에게 대놓고 이런 요구를 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시장이 좁고 선후배 관계로 타이트하게 얽혀있는 야구계에서 막상 선수가 매일 마주쳐야하는 대선배이자 직장 상사에게 이런 제안을 받았다면, 단칼에 거절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애초에 프로야구단에서 야구인 출신들을 프런트로 영입하는 사례가 최근 급증한 이유는, 바로 현장을 잘 이해하는 야구인 출신들간의 '전문성'과 '소통'이라는 강점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통하여 장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오히려 언제든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역효과도 확인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장정석의 단장 해임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장정석은 프런트와 현장을 넘나들며 30년 가까이 프로야구계에 몸 담았던 인물이다. 만일 선수에게 뒷돈을 요구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또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아가 장정석 개인과 KIA 구단을 넘어서 야구계에 만연한 '잘못된 관행'의 잔재는 아닌지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그래야 혹시라도 억울한 피해자가 또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을수 있다.
KIA 구단은 이번 사태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됐다. 지난해 박동원을 석연치않게 놓친 데 이어 장정석의 비위 의혹이 드러나며 전력보강도 차질을 빚고 프런트의 이미지에도 먹칠을 하게 됐다. 당장 2023시즌을 맞이하게 된 시점에서 프런트 실무 공백으로 인하여 구단 지원 업무에도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된다.
또한 KBO로서는 거듭되는 구성원들의 '도덕적 일탈'로 인한 이미지 하락을 어떻게 만회할지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야구는 최근 WBC 한일전 참패와 1라운드 탈락, 롯데 투수 서준원의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 기소 등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연이어 뉴스의 중심에 서야했다. 여기에 장정석 사태까지 터지면서, 새 시즌 개막의 축제 분위기를 등에 업고 프로야구 흥행으로 여론을 반전시키려던 KBO의 구상은 시작부터 먹구름이 드리우게 됐다.
이번 사건들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나 별개의 사안으로만 치부할 성격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그동안 성적과 결과지상주의, 국내 프로야구의 높은 인기와 연봉 거품에 가려져왔던 한국 야구계의 구조적 한계와 어두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껴야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난 그냥 평범한 할아버지" 관심 쏟아지자 '어른 김장하'가 한 말
- 폰지사기? 국민연금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 "후쿠시마산 반대" 국회서 '삭발식'..."윤 대통령, 진상 밝혀야"
- 고 노옥희 남편 천창수 "울산 교육, 공교육 표준으로 만들 것"
- 설거지 전담 두어 달, 은퇴한 60대 살림남입니다
- 서울에서만 10%p 빠졌다... 윤 대통령 지지율 33%
- 일본영사관 찾아가 '역사왜곡 교과서' 찢어버린 부산시민들
- 조태용 신임 안보실장 "중차대한 시기, 막중한 책임감 느껴"
- "일 역사왜곡, 한국정부 무능 때문 아닌가" 전교조의 일갈
- 민주노총, 국정원장 '피의사실 공표-민간인 사찰' 혐의 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