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디그라운드(140)] ‘연어장인’ 이정권, 싱어송라이터로 다시 시작

박정선 2023. 3. 3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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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되면 계속 들으러 돌아오는 걸 보니 연어는 나인 듯” “(영상을) 너무 많이 봐서 저분이랑 내적 친밀감 생긴 듯”


유튜브에 올라온 한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다. 영상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부르는 한 참가자의 무대를 담고 있다. 그 주인공은 가수 이정권이다. 이 곡 덕분에 이정권은 ‘연어장인’ ‘연어형’으로 불리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KBS1

데뷔 전부터 대중들에게 회자되는 이 영상은 당연히 가수 이정권에게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타이틀이지만 하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각종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도 ‘연어형’으로 대중을 만족시켰다. 이제 그는 단순히 ‘연어 노래를 부르는 전국노래자랑 출신’에서 벗어나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의 음악을 보여줘야 할 때다. 지난 29일, 새 앨범 ‘봄의 낮과 밤’은 그 첫 걸음이다.


-데뷔 프로그램이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아주 유니크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죠?


저도 사실 얼마 전까진 ‘전국노래자랑’ 출신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서 유니크한 줄 몰랐는데요. 얼마 전 출연했던 유튜브 ‘근황올림픽’ 채널에서 말씀해주시길 데뷔 이후 ‘전국노래자랑’ 출연했던 영상이 회자되는 가수들은 많아도 데뷔 전부터 전국노래자랑 영상으로 이름을 알린 가수는 없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전에야 유니크한 타이틀이구나 생각했습니다(웃음).


-이후 ‘연어장인’ ‘연어형’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어요.


누가 남겨주신 댓글인지 ‘연어장인’이란 댓글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렇게 불리고 있네요. 하하. ‘연어형’이라는 별명은 ‘싱어게인’ 출연 당시 슈퍼주니어의 규현 선배님이 지어주신 별명인데 그 별명으로 불러주시는 분들도 꽤 계시더라고요! 보통 별명이 바뀌면 확 바뀌던데, 저는 몇 년에 걸쳐 바뀌어서 연어장인에서 연어형으로 바뀌었어요.. 미비한 변화같기도 하지만 사실 엄청난 변화기도 해요! 평생 연어장인일 줄 알았거든요!


-원래 꿈이 가수였나요? 이전엔 IP 컨설턴트로 일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원래 꿈은 가수는 아니었어요.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 노래를 잘하는 정도였지 제가 가수가 될 정도라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물론 가요제에 나가고, 입상도 했지만 그저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자연스레 전공을 살려 취업도 했던 거죠. 평범한 일상 중 어느 날 갑자기 대학 시절 출연했던 ‘전국노래자랑’ 영상이 회자가 되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아! 내가 부르는 노래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가수라는 꿈과 그 꿈을 꿀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것 같아요


-아주 다른 분야의 본업과 버스킹, 단독공연 등을 병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당시에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절대 못했을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운이 좋게도 제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생겼고 그 덕분에 본업을 하면서도 버스킹, 단독 공연 등 제 나름대로의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본업보다 거기에 기대며 살아갔던 것 같기도 해요.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그때도 제 노래에 귀 기울여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게 너무 행복했거든요!


-데뷔 전, 그러니까 버스킹을 하던 시절 기억에 나는 일화도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비방용이긴 한데 당시엔 버스킹을 신청해서 하는 게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버스커들이 주로 버스킹하는 곳에 가서 줄 서 있다가 버스킹을 하곤 했어요. 버스킹 하다 말고 쫓겨나는 일도 많았고, ‘이것만 부르고 갈게요’하고 한 곡 더 불렀다가 혼나기도 했던 기억이 있어요. 비참한 일화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일들도 마냥 행복했던 것 같아요.


ⓒJK Music

-정식 데뷔는 2019년이었죠. 꿈에 그리던 데뷔를 했을 당시의 기분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솔직히 당시에는 데뷔를 했다는 것에 큰 감정 변화나 책임감의 변화 등이 생겼던 것 같진 않아요. 그때까지는 그저 노래를 낸 일반인이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고, 그 이후에 방송 프로그램을 나오고 많은 분들에게 제가 가수라고 인사를 드리게 되고부터 참 많은 감정 변화와 책임감이 생겼어요. 여러 감정과 무거운 책임감들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의 기분만 떠올려본다면 뭔가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전에 직장 생활과 음악 생활을 병행하며 음악 하는 친구들이 자연스레 생겨났었는데 그들이 본인 스스로를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게 너무 멋있어 보였거든요. 제가 가수라고 생각하고 난 이후에는 저 또한 저 스스로를 자연스레 ‘음악 하는 사람’이라 칭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 부분이 참 뿌듯하고 저 스스로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데뷔 이후 스스로에게 있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당연히 음악을 생각하는 마음과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가장 크게 달라졌더요. 데뷔 전까진 저도 그저 청취자의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음악을 들으며 이 음악을 만들었을 과정과 그 안에 뜻까지 모두 헤아리려 노력하게 됐죠. 그러면서 음악이라는 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잘하고 싶은 마음도 계속해서 커져가는 것 같고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아무래도 제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 그런지 ‘그것 봐라 내가 너 노래 잘한다고 그러지 않았냐’ 하는 반응들이 좀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예전엔 노래방 점수로만 판단하고 그렇게 잘한다고 하지 않았던 것 같긴 한데, 하하.


-데뷔 이후의 활동도 인상적인데요. 거의 ‘서바이벌 장인’으로 보일 만큼 ‘팬텀싱어3’ ‘싱어게인’에 ‘복면가왕’까지 출연했어요.


이렇게 보니 진짜 서바이벌 중독자네요(웃음). 이제와서 밝히지만 사실 제가 흥미를 느꼈던 프로그램은 ‘팬텀싱어3’가 유일했던 것 같아요. 여러 장르가 합쳐져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게 참 매력적이라 생각해서 출연을 결심했던 건데 뭣도 모르고 출연해서 그런지 탈락하고 나서 꽤 큰 공허함이 몰려오더라고요. 그래서 한번만 딱 더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나간 게 ‘싱어게인’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운이 좋게 좋은 성적을 거둬 바로 이어서 ‘복면가왕’까지 출연하게 됐어요. 앞으로는 서바이벌 말고 제 생각과 제 색깔을 담은 저의 음악을 열심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누군가와 경쟁을 하는 프로그램들에 연이어 참여하면서 오는 힘듦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그저 제 무대 후회 없이 잘하기에 급급해서 스스로 힘든 점 외에는 별다를 게 없었는데 운이 좋게 계속 올라가면서 점점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탈락해가는 것 같아서 그때부턴 참 여러 날들이 멘탈적으로 힘들었어요. 이제 와서 밝히지만 녹화 날에는 녹화 끝나고 정든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거의 매일 울다시피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 멀리 떠나보내는 것도 아닌데 그땐 그 세계관에 한껏 몰입했었나봐요. 하하.


-지난 29일, 새 앨범 ‘봄의 낮과 밤’을 발매했어요.


이번 EP 앨범은 제가 소속사로부터 나와 처음 만드는 앨범으로 저는 저의 홀로서기 EP 앨범이라 칭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소속사에 있으면서 많은 부분들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보니 노래를 쌓아 올리는 법을 잊었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그렇게 잊고 지내던 저의 노래 성을 다시 쌓아 올려보고자 시작하게 된 앨범이에요.


사실 한동안 나의 음악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모습으로 쓰일 수 있는 음악이 맞을까 하는 의문에 빠져 멈춰 지내기도 했어요. 그렇게 한동안을 멈춰 지내다가 오랜만에 제가 남겨 놓은 자취들을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저의 음악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한편으론 참 죄송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용기와 열정이 샘솟기도 했어요. 그렇게 이 앨범을 시작하게 됐죠. 저에게 이번 앨범은 겨울에 멈춰있던 저에게 내린 봄 같은 앨범이에요.


-타이틀곡 ‘나는 무엇이든 되어’는 어떤 곡인가요?


‘나는 무엇이든 되어’는 말 그대로 무엇이든 되어 사랑하는 이의 곁에 있겠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노래인데요, 문득 사랑이라는 마음은 어찌 보면 무엇이든 되어 곁에 있고자 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이 노래는 그 생각으로부터 시작해 만들게 된 노래에요! 저에게 보내주시는 응원도 저에게 닿을 땐 참 여러 가지 모습과 모양이 되어 힘이 되곤 하는데 저 또한 이 곡을 통해 저의 음악을 여전히도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무엇이든 되어 힘을 드리고 싶네요!


-보내주신 앨범 설명을 보니, 고민이 정말 많았던 것 같더라고요.


곡을 쓰기만 하고 내지는 못하는 일들이 꽤 많았어요.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좋은 곡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걸까 하는 생각으로 번져가더라고요. 그러면서 점차 곡을 쓰는 것에 흥미를 잃고 무의미하다고 느끼게만 됐던 것 같아요. 나는 좋다고 쓴 곡들이 다른 이들에겐 결코 좋은 곡들이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에 깊게 빠지게 됐죠.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 무렵엔 곡을 쓰는 것에 대해 참 많은 두려움과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를 ‘의심하게 됐던 시간’이 언제인지 궁금해요.


1집 앨범을 낸 후였던 것 같아요. 그 무렵 싱어송라이터라는 사람이 곡을 쓰길 멈춰버렸으니 슬럼프보다 더 큰 위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가장 해야 할 일을 내려놓았던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이 시기를 잘 버티고 일어설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는지, 어떤 것들이 정권 씨를 일어서게 하는 원동력이 됐나요?


사실 그 시기에도 남들에게 들려주진 않았지만 혼자 데모 버전의 노래를 만들어 놓긴 했는데 꽤 오랜 후에 그 노래들을 ‘아 별건 아니고 그냥 대충 만든 건데 들어보려면 들어봐’ 하는 식으로 다른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들려준 적이 있어요. 이번 앨범에 수록된 ‘기다렸어요’란 곡도 그 노래들 사이에 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칭찬들을 해주더라고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칭찬은 ‘나는 네가 쓴 곡들이 참 좋더라’ 였어요. 그 친구는 무심코 던진 칭찬이었겠지만 그런 작은 칭찬들에 너무나도 큰 힘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사소한 것들에서 차츰 곡을 쓰는 것에 대한 용기를 찾아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은 공연 등의 활동을 하면 만나게 되는 여전히 많은 분들의 기다림인 것 같아요. 여전히 저의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가사, 곡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면?


저는 최대한 저의 구어들이 문어가 되어 잘 담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사를 쓰는 것 같아요. 같은 이야기여도 전하는 이에 따라 그 차이가 크잖아요? 저는 제 노래이니 만큼 최대한 제 식으로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사를 쓰는 것도 크고요.


ⓒJK Music

-이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가 되길 바라시나요?


이 이야기가 대중분들에게 닿을 땐 저라는 사람이 한편에서 전한 소박한 위로와 행복이 되어있길 바라요. 봄이라는 계절이 위로와도 같은 계절이잖아요. 저는 봄이 마냥 행복하기만 해도 된다고 허락해 준 계절 같다고도 생각하거든요. 그런 봄에 나온 곡들이니 만큼 이 곡들을 통해 소박할지언정 위로와 행복을 받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동시에 부침을 겪던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가사가 스스로에게도 위로가 됐을 것 같아요.


사실 ‘나는 무엇이든 되어’라는 곡은 작업을 끝내고 완성본을 들으면서 울컥하기도 했어요. 제가 쓴 가사를 보며 울컥한다는 것도 참 청승맞긴 하지만 그렇게 무조건 적으로 곁에 있겠다는 말이 저에게 돌아와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저도 어린 나이가 아니다 보니 삶 속에 무조건적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만연해졌었나 봐요. 그래서 그랬는지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 이야기를 들으니 울컥하더라고요. 하하.


-이 곡을 통해 얻고자 하는 새로운 수식어, 혹은 성적 등의 목표가 있다면?


물론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는 마음은 늘 있죠. 그런데 그 마음이야말로 가장 멀리해야 하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다음 음악도 눈먼 용기로 임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이번 곡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제가 생존해있다는 것을 알리는 정도로만 하고 싶네요(웃음).

-정권 씨의 이후 활동도 궁금한데요.


한결같이 ‘어떤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왔어요. 바로 옆자리에 있진 않아도 멀지 않은 곁에서 보폭을 맞추고 있는 그런 가수가 되고 싶어요. 노래라는 게 때가 있잖아요. 노래 자체를 안 듣게 되는 때도 있고, 어떤 노래에만 푹 빠져 지내는 때도 있고요. 그렇게 여러 때를 지나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찾아가고 싶어지는, 그렇게 찾아가고자 할 때 여전히 한편에 있어주는 그런 가수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의 저의 활동도 그런 가수가 되기 위한 활동들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같은 자리에서 꾸준히 곡 쓰고 꾸준히 노래하며 있겠습니다. 어느 날이고 저라는 사람이 생각나거든 편하게 놀러 오세요(웃음).


-정권씨의 최근 가장 큰 고민거리가 있다면?


곡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니 이전에 하던 고민들이 다시금 살아난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곡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요! 한동안은 그 고민에 빠져 지낸 것 같은데 곡을 쓰는 것에 대해 두려웠던 시기가 있어서 그런지 그 고민들이 주는 행복함도 새삼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행복한 고민들에 빠져 앞으로 세상에 낼 곡들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정권 씨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최종 목표라…뭔가 큰 포부들을 말해야 할 것 같네요. 사실 제가 큰 포부 같은 게 있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최종 목표라고 할 게 딱히 있진 않아요. 굳이 한 가지 꼽자면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멀지 않은 곁에 꾸준히 보폭을 맞추는 그런 가수로서 오래 살아있는 게 저의 최종 목표입니다! 이것 역시 조금 거창한 것 같긴 한데, 줄여 말하자면 ‘장수’ 정도라 할 수 있겠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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