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병진 기자]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9.11 테러로 검은 연기로 뒤덮인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
ⓒ 넷플릭스 |
이 다큐멘터리는 9.11 테러 이후 이성적 논의나 제동 장치 없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테러와의 전쟁'을 일임하다시피 한 당시 미국의 반헌법적인 조치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9.11 테러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알카에다의 소행임이 뚜렷해지자, 부시 대통령은 알카에다 완전 소탕을 명분으로 아프간 전쟁을 시작했다. 전쟁 초반,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은 축출당했다. 미군의 절대 우세인 무력을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탈레반 정권은 집권 5년 만에 쫓겨났다. 아프간 국민들은 미군 덕분에 오랜만에 '자유'를 맛보는 듯했다. 미국인들도 미군이 아프간 전쟁 초반에 큰 희생을 치르지 않고서 이슬람 테러조직의 온상인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몰아내 승리를 얻은 줄 알았다. 하지만 전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이슬람 극단주의 무당단체 알카에다 조직원들 |
ⓒ 넷플릭스 |
새로 들어선 아프간 정부 관료들의 부패는 너무 심각했다. 정부의 부패와 수탈에 견디다 못한 아프간 국민들은 미군이 자신들을 도우러 온 게 아님을 깨닫는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지자, 아프간 국민들은 무력을 앞세워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끝내 쫓겨난 소련과 미국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많은 젊은이가 탈레반에 자진해 들어가 미군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미국이 탈레반을 축출한 뒤 아프간 주민들의 삶을 눈에 띄게 향상했다면 사태가 이처럼 나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어리석게도 미국은 천문학적 전쟁 비용(2조 달러 이상)을 투입하면서도 아프간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 지난 베트남전 패전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아프간전은 여실히 보여줬다.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죽은 민간인들. |
ⓒ 넷플릭스 |
아프간 전쟁으로 무려 15만 명 이상의 아프간인이 사망했고, 이라크에서는 약 27만~30만 명의 이라크인이 사망했다. 문제는 사망자 대부분이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이라는 사실이다. 미군은 아프간 전쟁에서 2448명, 이라크 전쟁에서 4550명 사망했고, 두 전쟁에서 5만1989명이 부상했다. 미군은 2006년 알카에데 세포 조직 '유일신과 성전' 수장인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를 사살했고, 사담 후세인을 처형했다. 또 2011년 파키스탄에 은신해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오사마 빈 라덴이 죽은 뒤 이슬람 테러 조직은 그 이전에 비해 네 배나 많아졌다고 한다. 이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동해복수법에 따른 보복은 당한 것 이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라 차라리 낫다. 미국은 자신들이 당한 테러의 보다 훨씬 약 수백 배 이상의 보복을 가했다. 어느 나라도 말릴 수 없었다. 이런 미국의 '복수'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이슬람권 전체를 적으로 만들다시피 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 영향이 큰 미국이 정작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마 26:52)는 예수의 경고를 허투루 여긴 나머지 스스로 지옥문을 열어젖힌 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키운 건 미국이었다. 냉전시대 미국은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을 몰아내고자 알카에다를 훈련시키고 무기를 제공했다. 오사마 빈 라덴도 그 수혜자로 알려졌다. 미국은 자기 품에 호랑이를 키운 셈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 빈 라덴 그룹의 재벌가 일원이다. 그런 자가 알카에다를 후원하며 그 테러 조직의 실세로 부상했다.
그는 2004년에 9.11 테러를 일으킨 이유에 대해 영상으로 말한다. 물론 그가 말한 내용을 액면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그래도 참고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건은 1982년 미국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묵인하고, 미군 제6함대가 지원했던 때부터 기인한다. 이 폭격으로 많은 이가 살해당하고 부상당했고 다른 이들은 공포에 질렸으며 살 곳을 잃었다. 나는 레바논에서 부서져버린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행위를 저지른 압제자들은 동일한 방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말해 미국 건물들을 파괴함으로써 '미국'에 우리가 받은 고통의 일부를 돌려줘야만 그들 또한 우리에 부녀자나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단념하리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쿠바 미 해군의 관타나모 만 수용소로 이송 중인 9.11 테러 용의자들 |
ⓒ 넷플릭스 |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한 비난이 거세자 부시, 오바마 정부는 억류자 대부분인 741명을 석방하고 그곳을 폐쇄했다. 하지만 안와르 알아올라키 같은 9.11 테러에 직접 책임 있는 39명은 남겨 놓았고 그중 몇 명은 종신형을 받아 여전히 구금생활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미국이 얼마나 위선적인 깡패 국가인지 잘 보여준다. 겉으로는 인권을 옹호하는 민주주의 국가라 내세우면서도 자국의 헌법과 법률, 제네바 협약 같은 국제법까지 무시하면서 사람들을 함부로 체포, 구금해 고문까지 일삼은 거다.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미군의 무분별한 드론 공격을 비난하는 북부 와지리스탄(Waziristan) 부족장과 그 아들. 오른쪽 청년은 "드론 폭격 때문 사람들이 절단 수술을 많이 받는다"며 "100년 지나도 이 고통 잊지 못할 거다. 반드시 복수할 거다"라 말했다. |
ⓒ 넷플릭스 |
비록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군했을지라도 '9.11 테러'는 끝난 거 같진 않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수십 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그들이 남긴 자녀들 중에 분노의 칼을 갈며 '보복'을 다짐하는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를 막은 전쟁이 아니라 오히려 '테러 확산 전쟁'이 아니었나 싶다.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군사적으로 연대하는 모든 나라는 9.11 테러가 왜 발생했는지 그 근본 원인을 깊이 헤아려 보고 합리적 해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서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통령이 '블랙핑크 만찬 공연'에 꽂혀 있다면
- 놀랍다, 한국전쟁 중 만든 근로기준법 '근로시간'
- 한상혁 구속영장 기각... "앞으로 무고함 소명, 직원들 억울함 풀 것"
- 유기농 하려면 '좋은 이웃'을 만나야 한다?
- 바퀴벌레만큼이나 질긴 그 이름, '윤중로'
- [단독] '정순신 아들' 전학 만장일치 이유는 "반성 전혀 없어서"
- 저녁 8시까지 돌봄, 공약이지만 이건 아닙니다
- 검찰, 박영수 전 특검 '압색'... '신의 한수' 어디까지 규명할까
- "진심 반성"한다는 김재원... 국힘, 징계 없이 봐주기?
- 윤 대통령 "부패는 민주주의 위협하고 자유 억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