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병진 2023. 3. 3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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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 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정병진 기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9.11 테러로 검은 연기로 뒤덮인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 넷플릭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은 2001년 9.11 테러와 그 뒤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을 다룬다. 날씨도 청명한 가을 아침 8시 46분경, 미국 뉴욕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 세계무역센터에 돌연 비행기 한 대가 날아와 충돌했다. 이어 9시 3분경 또다시 다른 빌딩 중앙에 한 대의 민간항공기가 정면 충돌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진주만 공습(1941. 12) 이후 단 한 번도 적국의 공격을 받은 적 없다. 그런데 미국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뉴욕, 그것도 뉴욕시를 대표하는 건물인 세계무역센터가 차례로 비행기와 충돌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 장면을 보며 미국인들은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9.11 테러 이후 이성적 논의나 제동 장치 없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테러와의 전쟁'을 일임하다시피 한 당시 미국의 반헌법적인 조치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9.11 테러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알카에다의 소행임이 뚜렷해지자, 부시 대통령은 알카에다 완전 소탕을 명분으로 아프간 전쟁을 시작했다. 전쟁 초반,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은 축출당했다. 미군의 절대 우세인 무력을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탈레반 정권은 집권 5년 만에 쫓겨났다. 아프간 국민들은 미군 덕분에 오랜만에 '자유'를 맛보는 듯했다. 미국인들도 미군이 아프간 전쟁 초반에 큰 희생을 치르지 않고서 이슬람 테러조직의 온상인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몰아내 승리를 얻은 줄 알았다. 하지만 전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부시 정권은 2003년에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탄저균을 비롯한 '대량살상 무기'를 제조, 보유하고 있으며 테러조직들과 연결돼 있다"며 또다시 '이라크 전쟁'에 돌입했다. 아프간 전쟁도 완전히 끝난 상태가 아닌데, 전선을 중동으로 넓혀 새로운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미군이 이라크 전쟁에 집중하는 동안 아프간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그 사이 탈레반은 그 영향력을 차츰 회복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당시 미국이 아프간 전쟁 이후, 아프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전후 복구나 새로운 정부 수립 등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단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군사력을 동원한 것이라 뚜렷한 대책이 없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이슬람 극단주의 무당단체 알카에다 조직원들
ⓒ 넷플릭스
 
새로 들어선 아프간 정부 관료들의 부패는 너무 심각했다. 정부의 부패와 수탈에 견디다 못한 아프간 국민들은 미군이 자신들을 도우러 온 게 아님을 깨닫는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지자, 아프간 국민들은 무력을 앞세워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끝내 쫓겨난 소련과 미국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많은 젊은이가 탈레반에 자진해 들어가 미군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미국이 탈레반을 축출한 뒤 아프간 주민들의 삶을 눈에 띄게 향상했다면 사태가 이처럼 나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어리석게도 미국은 천문학적 전쟁 비용(2조 달러 이상)을 투입하면서도 아프간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 지난 베트남전 패전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아프간전은 여실히 보여줬다. 
아무리 초강대국 미국이지만 아프간과 이라크 두 나라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전쟁 비용을 감당하긴 힘들었다. 당초 부시 정권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다며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확실히 있다"고 자신하던 '대량살상 무기'는 이라크에서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과 알카에다의 직접적 연계 증거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라크 전쟁은 미국 정부가 거짓 선동으로 일으킨 추악한 전쟁이었음이 드러났다.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의 피해는 엄청났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죽은 민간인들.
ⓒ 넷플릭스
 
아프간 전쟁으로 무려 15만 명 이상의 아프간인이 사망했고, 이라크에서는 약 27만~30만 명의 이라크인이 사망했다. 문제는 사망자 대부분이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이라는 사실이다. 미군은 아프간 전쟁에서 2448명, 이라크 전쟁에서 4550명 사망했고, 두 전쟁에서 5만1989명이 부상했다. 미군은 2006년 알카에데 세포 조직 '유일신과 성전' 수장인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를 사살했고, 사담 후세인을 처형했다. 또 2011년 파키스탄에 은신해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오사마 빈 라덴이 죽은 뒤 이슬람 테러 조직은 그 이전에 비해 네 배나 많아졌다고 한다. 이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동해복수법에 따른 보복은 당한 것 이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라 차라리 낫다. 미국은 자신들이 당한 테러의 보다 훨씬 약 수백 배 이상의 보복을 가했다. 어느 나라도 말릴 수 없었다. 이런 미국의 '복수'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이슬람권 전체를 적으로 만들다시피 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 영향이 큰 미국이 정작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마 26:52)는 예수의 경고를 허투루 여긴 나머지 스스로 지옥문을 열어젖힌 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키운 건 미국이었다. 냉전시대 미국은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을 몰아내고자 알카에다를 훈련시키고 무기를 제공했다. 오사마 빈 라덴도 그 수혜자로 알려졌다. 미국은 자기 품에 호랑이를 키운 셈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 빈 라덴 그룹의 재벌가 일원이다. 그런 자가 알카에다를 후원하며 그 테러 조직의 실세로 부상했다. 

그는 2004년에 9.11 테러를 일으킨 이유에 대해 영상으로 말한다. 물론 그가 말한 내용을 액면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그래도 참고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건은 1982년 미국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묵인하고, 미군 제6함대가 지원했던 때부터 기인한다. 이 폭격으로 많은 이가 살해당하고 부상당했고 다른 이들은 공포에 질렸으며 살 곳을 잃었다. 나는 레바논에서 부서져버린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행위를 저지른 압제자들은 동일한 방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말해 미국 건물들을 파괴함으로써 '미국'에 우리가 받은 고통의 일부를 돌려줘야만 그들 또한 우리에 부녀자나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단념하리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오사마 빈 라덴의 주장에 따르면 9.11 테러는 테러 조직이 어느 날 갑작스레 일으킨 사건이 아니다. 적어도 1982년부터 오사마 빈 라덴 속에서 악마의 검은 연기가 뭉개뭉개 피어올랐다고 볼 수 있다. 놀랍게도 9.11 테러에 가담해 민간 항공기를 네 대나 납치해 범행을 저지른 19명 중에 15명은 "'메카와 메디나' 두 성지 수호자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재벌 집안의 청년들이라고 한다. 그들 중에는 법대 재학 중인 자도 있다고 알려졌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극단주의자들의 선동에 현혹되어 이 같은 테러에 가담했음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쿠바 미 해군의 관타나모 만 수용소로 이송 중인 9.11 테러 용의자들
ⓒ 넷플릭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만 벌인 게 아니다. 소위 '애국자법'을 만들어 국가안보국(NSA)이 '스텔라 윈드 프로그램'을 사용해 합법적으로 전 국민을 도청, 감시할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아프간에서 알카에다 활동을 했거나 9.11 테러에 관계했다고 신고당한 사람들을 쿠바의 미 해군기지 관타나모 수용소에 무기한 구금했다. 당국에서는 "그들을 미국까지 데려오면 법률에 따라 재판을 받아야하고 재판장을 선동의 장으로 활용하거나 재판정이 테러 목표물이 될 수 있어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댄다. 하지만 미국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구금한 사람들을 상대로 벌인 무분별한 고문과 성적 학대는 세계를 경악시켰다. 구금당한 아프간인들은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한 비난이 거세자 부시, 오바마 정부는 억류자 대부분인 741명을 석방하고 그곳을 폐쇄했다. 하지만 안와르 알아올라키 같은 9.11 테러에 직접 책임 있는 39명은 남겨 놓았고 그중 몇 명은 종신형을 받아 여전히 구금생활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미국이 얼마나 위선적인 깡패 국가인지 잘 보여준다. 겉으로는 인권을 옹호하는 민주주의 국가라 내세우면서도 자국의 헌법과 법률, 제네바 협약 같은 국제법까지 무시하면서 사람들을 함부로 체포, 구금해 고문까지 일삼은 거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과 함께 9.11 테러를 모의한 칼리 드 셰이크 무함마드를 2003년 3월 파키스탄에서 체포한 뒤 수면고문 180시간(족쇄 채운 뒤 7일 동안 세워 둠), 물고문 183회를 가했다고 알려졌다. 아무리 사형수라 할지라도 고문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미국은 어리석게도 테러 용의자들을 무분별하게 구금한 것만도 모자라 냉전시대의 광기 어린 고문까지 동원해 그들의 증오심을 더욱 키워 놓았다. 미군의 무분별한 드론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아프간 한 마을의 청년은 다큐 인터뷰에서 "100년 지나도 이 고통을 잊지 못할 거다. 반드시 복수할 거다"라 말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미군의 무분별한 드론 공격을 비난하는 북부 와지리스탄(Waziristan) 부족장과 그 아들. 오른쪽 청년은 "드론 폭격 때문 사람들이 절단 수술을 많이 받는다"며 "100년 지나도 이 고통 잊지 못할 거다. 반드시 복수할 거다"라 말했다.
ⓒ 넷플릭스
 
비록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군했을지라도 '9.11 테러'는 끝난 거 같진 않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수십 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그들이 남긴 자녀들 중에 분노의 칼을 갈며 '보복'을 다짐하는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를 막은 전쟁이 아니라 오히려 '테러 확산 전쟁'이 아니었나 싶다.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군사적으로 연대하는 모든 나라는 9.11 테러가 왜 발생했는지 그 근본 원인을 깊이 헤아려 보고 합리적 해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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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서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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