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게임 세상

문대찬 2023. 3. 3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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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칼럼-이유원]

“넌 모르잖아, 알록달록한 세상.”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이 메인 빌런 전재준의 컴플렉스를 자극하기 위해 꺼낸 통쾌한 명대사다. 선천적인 적록색약을 가진 전재준은 색깔을 잘 구분하지 못 한다는 것이 한이었는지, 문동은의 이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중간에 나오는 회상 씬에서는 학창 시절 자신의 적록색약 사실을 놀린 친구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는 등 심한 피해 의식을 느끼는 것처럼 나온다. 드라마 내용상 이 적록색약 사실은 특정한 비밀의 실마리를 푸는 소재로 사용되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금 과도한 부분이 없진 않다. 

친구와 더 글로리의 해당 부분을 함께 보고 있었는데, 친구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게 무척 웃겼다. “야, 저게 저 정도로 불편해?.” 나도 적록색약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성인 남성의 약 6%가 선천적인 색약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외가와 친가의 영향 탓인지 적록색약을 가지고 있다. 동은이의 말처럼 알록달록한 세상을 본 적 없는 이들에게 사실 무엇이 불편한지 바르게 인지하기는 힘들다. 대부분의 색약자들이 그렇듯, 그들이 불편함을 느끼거나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오히려 초등학교 신체검사 때다. 다른 아이들은 술술 넘기는 이상한 구슬 아이스크림 같은 퍼즐을 왜 나는 못 풀겠는지. 색약자들은 그 때에 어린 마음과 신기한 마음에 놀림감이 되곤 하는데, 아마 더 글로리의 장면도 그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검은색과 빨간색을 구분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이 있다. 학창 시절에 공부할 때는 빨간색 볼펜으로 쓴 글은 검은색 글과 전혀 구분하지 못 했다. 각종 참고서에서 하이라이트한 빨간 글씨도 인지하지 못 했는데, 더 글로리에서 전재준이 빨간 머리 여자의 머리색을 구분하지 못한 것도 꽤 공감이 되었다. 엄청 밝은 빛이 비춰지거나, 색칠된 부분의 면적이 넓어서 충분히 빛을 다른 방향으로 받아가며 움직일 수 있을 때는 간신히 구분해낼 수 있다.

사실 색약자들이 일상 생활에서 불편을 느낄 일은 크게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 회사에 유행하게 된 이 게임을 접하기 전까진 말이다.

컬러 타일즈. 간단하지만 중독성 있는 무료 퍼즐 게임이다.

Gamesaien에서 제공하는 ‘컬러 타일즈’는 한때 국내 커뮤니티를 뒤흔들었던 간단하지만 중독성 있는 무료 퍼즐 게임이다. 웹에서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고, 모바일로도 출시되어 있다.

젤리 같이 생긴 이 네모난 타일들을 규칙에 맞게 같은 색끼리 찾아내는 것이 이 게임의 플레이 방법인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유도 모르고 이 게임을 계속 틀렸는데…

적록색약이라 타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나는 이 각 두 개씩의 타일들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고 있었다. 화면 밝기를 최대한으로 높인 뒤에야 이들이 다른 타일이란 것을 깨달았고, 절망했다. 짧은 시간 내에 빠르게 타일들을 파악해야 하는 이 게임 속에서 이 희미한 차이는 색약인 나로선 도저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미 다른 회사 직원들은 곤경에 빠진 나를 넘어서서 최고 점수를 향해 빠르게 치고 나가고 있었다. 
색약 모드를 사용하면 타일들 위에 도형이 나타나 이를 통해 색깔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고 간단한 게임에서도 색맹 모드를 지원하고 있었다.

색약 모드를 활성화하면 이렇게 색으로만 구분되던 타일들 위에 각기 다르게 생긴 도형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 모드의 도움을 받아 다행히 나도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점수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 도형이 아니라 나도 색으로만 구분했다면 더 고득점을 거뒀을 것이란 변명도 할 수 있어 좋았다.

동은이가 말한 것처럼 어떤 이들은 알록달록한 세상을 모르고, 어떤 이들은 알록달록하지 않은 세상이 있다는 것도 모른다. 게임과 같이 우리가 일상하게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는 모든 것들에서도 세심한 배려와 똑똑한 기획이 세상을 진짜로 알록달록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원 반지하게임즈 대표

이유원
1995년생. 초등학생 때부터 독학으로 인디게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는 어느새 3년차 게임회사 대표가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글로벌리더학부를 졸업하고, '아류로 성공하느니 오리지널로 망하자'는 회사의 모토를 받들어 올해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자퇴했다. 게임 기획자로서 '허언증 소개팅!' '중고로운 평화나라'  '서울 2033' 등 기존에 없던 소재와 규칙의 게임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NDC, G-STAR, 한국콘텐츠진흥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지역 고등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인디게임 기획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장르에 대해 강연해왔다.

yuwon@banjihaga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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