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 멘델이 콩나무 키우다 발견한 놀라운 사실

김응빈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유튜브 '김응빈의 응생물학' 운영 2023. 3. 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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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빈의 생생바이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1800년대 중반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 모라비아(지금은 체코 영토)에 있는 수도원에서 한 사제가 완두콩을 키우고 있었다. 양곡 수확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여의치 않은 가정환경으로 성직자의 길을 택했지만, 여전히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사정을 하늘도 알았는지 그에게 빈 대학 유학 기회가 찾아왔다. 거기서 물리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을 배우며 이 사제는 자연현상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데, 체계적으로 분석을 하면 그 원리를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공부를 마치고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는 완두콩의 유전 현상을 한꺼번에 관찰하지 않고 꽃 색깔과 콩 모양처럼 특성을 한 가지씩 따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 사제가 바로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1884)이다.

농부들은 멘델보다 훨씬 앞서 이미 수백 년 동안 작물과 가축을 선별적으로 육종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손의 특성은 부모에게서 물려받는다는 원칙에 근거하여 원하는 특성을 가진 개체들을 교배시켰다. 하지만 유전 현상의 기본 원리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멘델은 꽃의 색 또는 콩의 모양이 서로 다른 완두콩을 선택해서 교배시켰다. 그런 다음 세대에 각 특징을 보이는 완두콩 나무의 수를 세어보았다. 교배된 식물의 바로 다음 세대에서는 하나의 특징만 나타났다. 예컨대, 보라 꽃과 흰 꽃 완두콩 나무를 교배하면 모두 보라색 꽃을 피웠다. 당시로써는 뜻밖의 놀라운 결과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Like father like son)’ 같은 속담이 있는 걸 보면 인류는 오래전부터 부모에서 자식으로 무언가가 전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다만 옛사람들은 빨간색 물감과 하얀색 물감이 섞이면 분홍색 물감이 되듯이 부모에서 온 물질, 곧 ‘유전물질’이 자손에서 섞인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보라색과 흰색 꽃이 피는 콩나무 교배로 생긴 자손 나무는 연한 보라색 꽃을 피워야 한다. 멘델은 과학적 실험을 통해 이런 오해를 바로잡았다.

흔히 멘델 하면 우열을 떠올린다. 멘델은 보라색 꽃처럼 1세대 자손, ‘F1’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우성’, 반면 흰색 꽃처럼 가려진 것을 ‘열성’이라고 지칭했다. F는 자손을 뜻하는 영어 단어(filiation)의 첫 글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열은 우월과 열등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해당 특징이 드러나거나 가려짐을 뜻한다. 멘델은 개체의 특성을 결정하는 유전 단위를 ‘인자’라고 칭했다. 인자는 부모에서 자손으로 전달되므로 모든 자손은 두 개의 인자를 가진다. 생명체의 모든 특성에는 각각에 해당하는 인자가 있는데, 다른 버전으로 존재한다. 보라색과 흰색 완두콩 꽃처럼 말이다.

멘델이 말한 인자를 지금은 ‘유전자’라고 부르며, 쌍을 이루는 각각을 ‘대립유전자’라고 한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특정 유전 현상을 ‘표현형’이라 하고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하는 유전자의 조성을 ‘유전자형’이라 한다. 대립유전자를 기호로 표시하면 멘델 유전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라색과 흰색 유전자를 각각 P와 W로 표시하자. 처음 식물은 꽃 색깔(표현형)의 유전형은 PP와 WW이다. 이 둘의 교배로 생겨난 F1 식물은 P와 W를 각각 하나씩 물려받아 PW가 된다. P는 우성이어서 F1은 모두 보라색 꽃을 피운다. F1 식물의 P와 W는 완전히 무작위로 F2에게 전달된다. 따라서 F2 식물에서는 PP, PW, WP 또는 WW가 나타날 수 있는데, 그 확률은 똑같다. 이 가운데 오직 WW 유전형만이 흰 꽃을 피운다. 다른 세 개의 꽃은 보라색이다. 표본의 크기가 충분히 커지면 보라 꽃과 흰 꽃의 비율은 3:1이 될 것이다.

완두콩은 멘델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식물은 번식도 빠르고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전학이 항상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사실 유전학은 멘델 유전 원리를 따르지 않는 유전 현상을 규명하면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멘델 법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다양한 생명체의 유전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멘델이 설명하지 못했던 복잡한 유전 양상을 설명함으로써 멘델의 유전학설을 확대 발전시켰다는 뜻이다. 우리 혈액형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람 혈액형의 대립유전자 A, B, O의 우열관계를 살펴보면 A와 B는 서로 공동우성이지만, O에 대해서는 완전 우성이다. 그래서 A형과 B형에는 각각 두 가지 유전형(AA, AO; BB, BO)이 존재하지만, AB형과 O형의 유전형은 하나씩(AB; OO)이다. 그리고 보통은 유전자 하나보다는 여러 유전자가 하나의 표현형 결정에 관여한다. 예컨대, 머리카락(직모, 곱슬머리)과 쌍꺼풀 유무, 귓불(부착형, 분리형) 등은 하나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단일인자유전’이다. 반면, 키와 몸무게, 피부색 등은 여러 개의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다인자유전’이라고 한다. 다인자유전에 의한 표현형은 해당 집단 내에서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1865년 멘델은 7년여에 걸친 완두콩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근대 유전학의 토대를 놓는 연수 성과였지만, 그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멘델의 업적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강산이 한 번 하고도 반이 넘게 바뀐 1900년에 와서야 밝은 빛을 보게 되었다. 네덜란드 출신 식물학자 드 브리스(Hugo de Vries)가 멘델과 비슷한 주제로 연구를 하면서 발표한 논문에 앞선 멘델 연구 성과를 인용했다. 오늘날 멘델은 ‘유전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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