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리움도 아모레도 쓰레기 줄인 전시를 하는데
지난해 가본 독일의 전위적인 현대미술제 카셀도큐멘타는 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했다. 전시는 꼭 쓰레기를 양산해야 하는가, 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크게 두 가지다. 총감독을 맡은 인도네시아 작가그룹 루앙루파는 칸막이도 액자도 없이 후줄근해 보이는 전시 방식을 용감하게 택했다. 또 놀랍게도 전시장 한가운데 놀이터와 스케이트보드장을 차렸다. 공급자인 작가뿐 아니라 수용자인 관람객도 전시의 공동 주인임을 명시한 것이다. 전시장 한가운데 의자를 배치해 관람객이 쉬면서 감상하도록 배려한 것도 눈에 띄었다. 딱 1년 전 이 코너에 ‘기후위기 시대 미술관 전시 쓰레기’란 제목의 칼럼을 쓴 것은 카셀에서 받은 그런 문화적 충격의 결과였다.
한국 미술계도 변화가 인다. 리움미술관의 ‘조선백자의 군자지향’전은 그런 변화된 흐름의 최전선에서 구현됐다. 전시는 천장이 너무 높아 가벽을 쳐도 안에 기둥을 짜 넣어야 하는 등 ‘마의 전시장’으로 통하는 블랙박스에서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가벽을 완전히 없앰으로써 탁 트인 모래사장에 작품을 전시한 듯한 효과를 냈다. 사방에서 볼 수 있는 특수 제작 유리진열장에 명품 도자기를 넣었고 차례차례 도열하듯 진열했다. 덕분에 명품 도자기들이 하나하나 별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 전시장 전체를 밤처럼 검은색을 주조색으로 한 데다 천장의 잔별 같은 조명이 그런 효과를 배가시켰다. 이번 전시에는 국보 ‘백자청화 매죽문 호’와 보물 ‘백자 달항아리’ 등 우리나라 국가지정문화재 전체 59점 중 절반이 넘게 나왔다. 해외에서 대여한 명품도 즐비했다. 소중하지 않은 게 없어 분류보다는 융합을 택한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전시 쓰레기를 확실히 줄였다는 점이다. 그곳은 리움이 2021년 10월 재개관하면서 가진 첫 전시 ‘인간, 일곱 개의 질문’전에서 무려 27t의 쓰레기를 배출했던 공간이다. 이번에는 전시 연출 덕분에 쓰레기 예상 배출량이 8.4t으로 3분의 1로 줄었다. 전에 없이 전시장 한켠에 계단도 조성했다. 다른 높이에서 작품을 내려다보며 감상하라는 의도와 함께 쉬면서 보라는 배려가 느껴졌다.
비슷한 시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개막한 기획전 ‘조선, 병풍의 나라2’는 전시 쓰레기 줄이기 측면에서 더 획기적이다. 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병풍을 벽에 부착하는 철제 프레임을 새로 개발했다. 조립식이라 재활용이 가능하다. 이 프레임 덕분에 병풍과 유리가 밀착돼 물리적 거리 없이 작품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니 더 좋았다. 이번 전시에는 가벽도 없을 뿐더러 전시장 중간에 시각적 효과와 진열의 편리를 위해 두는 진열장도 없앴다. 2018년 개최된 ‘조선, 병풍의 나라1’에 비견해 전시 쓰레기는 확 줄었다. 무려 10분의 1 수준으로 말이다. 편지혜 학예사는 “그룹 차원에서 ESG 경영에 관심이 아주 많다. 재활용이 가능한 화장품 패키지 디자인을 개발하는 등 친환경 정책을 진작부터 시행하고 있다”면서 “미술관도 그룹 기조에 맞춰 전시를 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됐고, 그 첫 결과물이 이번 전시”라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도 리움과 약속이나 한 듯 전시장 한가운데 소파를 놓았다. 그 소파에 앉아 쉬는 관람객을 보며 문화의 진화를 보는 듯 흐뭇했다. 그동안은 작품만 주인공이었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고 쓰레기가 양산됐다. 관람객을 위한 의자는 전시장 안에는 없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런 움직임을 선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그곳 전시장에서 한가운데 놓인 소파를 본 적이 없다. 지난번 칼럼에서 예산이 풍족한 국립현대미술관이 역설적으로 전시 쓰레기 양산에 앞장선다고 지적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대책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가동한다고 했지만 지금껏 어떤 결과물도 나오지 않았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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