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진심이었던 모라비안 공동체… 눈보라에도 따스함이

2023. 3. 30.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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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온 소울 하비스트 운동] 복음전도 솔루션을 찾아서 <3>
독일 헤른후트 공동체 전경으로 오른쪽 건물은 박해 받던 체코 모라비안들을 자신의 공간에 숨겨 두고 지켜준 진젠도르프 백작의 성채. 황성주 회장 제공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를 생각하면 인간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한도 끝도 없이 무한하게 펼쳐진 우주를 바라보면서 은하수를 세어보지만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금방 고백할 수밖에 없다. 수없이 많은 은하와 그 안에 있는 별들이 얼마나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우리는 그저 감격에 빠져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정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 존재와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부정하거나 부인할 수 없다.

지난 1월 4박 5일의 일정 중 일곱 번째 방문한 곳은 독일의 헤른후트 모라비안 공동체였다. 얼마나 와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날따라 한겨울 눈 폭풍이 몰려왔다. 하지만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따스하고 포근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삭막한 땅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여기가 바로 종교 권력의 무차별한 핍박을 피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왔던 체코의 모라비안들을 자신의 성채에 숨겨 주고 지켜준 진젠도르프 백작의 관용과 헌신이 빛났던 곳이다. 이토록 작은 공동체에서 200년간 3000여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 오지에 파송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다 죽으라 그리고 잊혀져라’는 모토를 가진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당시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발트해 그린란드 러시아 서인도제도 등 복음의 척박한 땅으로 흩어졌다. 심지어 그들 선교사는 자원해서 신대륙의 노예로 팔려가 목화밭에서 일하던 수만 명의 동료 노예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전문 직업을 가진 자비량 비즈니스 선교사였다. 사실상 비즈니스의 탁월성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비즈니스 자체를 하나님 나라의 연장으로 간주했던 ‘비즈니스 애즈 미션’(Business As Mission)의 모델이기도 했다. 더욱이 당시 세계 선교를 위해 하루 24시간 7일간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진행했던 릴레이 기도(24/7) 운동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여덟째로 방문한 곳은 라이프치히대학이었다. 라이프치히는 독일 통일의 도화선이 된 촛불집회로 유명한 성 니콜라이교회가 있는 도시이다. 라이프치히대는 니체와 괴테, 바그너와 슈만을 배출한 유명 대학이지만, 현대 물리학의 새로운 얼굴인 양자역학의 아버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탄생시킨 대학이기도 하다.

하이젠베르크는 고전물리학을 정립한 뉴턴에 맞먹는 양자물리학의 거장이다. 그는 ‘뉴턴의 사과’에 버금가는 ‘헬골란트의 빛’이라는 발견을 통해 거시 세계를 관장하는 논리적 고전역학의 한계를 미시 세계를 관장하는 초월적 양자역학으로 극복하며 완벽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증명해냈다.

그는 또 과학적 논리라는 공식을 깨고 자연 속에서 초 논리의 세계, 즉 영적 세계의 질서를 발견하며 모든 성경적 진리를 설명 가능케 한 놀라운 과학자였다. 양자역학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관계성, 인격성을 과학으로 증명한다.

그는 양자역학을 통해 로마서 1장 20절의 진리를 입증했으며 ‘자연과학이라는 첫 잔은 사람을 무신론자로 만들지만 그 잔 밑바닥에는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실 하이젠베르크는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출신이다. 그리고 키르케고르도 코펜하겐대 출신이다. 두 사람은 과학과 신학의 영역에서 무신론과의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공로자들이다.

황성주 회장이 최초의 대학 선교 공동체라는 역사적 발자취가 남아 있는 할레대학 캠퍼스를 방문한 모습. 황성주 회장 제공


아홉 번째로 방문한 곳은 할레대학이었다. 지금은 종교개혁의 본산인 비텐베르크 대학과 합병해 할레대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지만 최초의 대학 선교 공동체라는 그 역사의 발자취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 대학은 진젠도르프와 조지 뮬러를 배출한 학교이기도 하다. 대학 설립자는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대부인 필립 야콥 스페너와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이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은 30년 전쟁 등 엄청난 후유증으로 많은 지성인이 하나님을 떠나고 성도들은 무기력해지고 무미건조한 삶에 찌들어 있었다. 이때 스페너라는 인물이 혜성같이 나타나 중생과 영적 체험을 강조하며 경건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소그룹 중심의 예배와 토론, 도덕성과 경건, 성경공부와 만인사역자론을 강조하며 사실상 가정교회 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이후 할레대 교수로 30년 동안 봉직한 프랑케가 이 흐름을 발전시켜 할레대를 경건주의 운동 및 전도와 선교의 중심지로 변모시켰다. 그는 중생에 의한 급진적 변화를 강조했고 동양 언어와 성경 번역을 주도하며 세계 선교를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윌리엄 케리보다 100여년 앞선 1705년 자신의 제자를 인도에 파송했다.

이후 할레대에서 6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대학 선교의 효시가 됐다. 그는 또 고아원과 대안학교를 설립해 오직 기도로 재정을 해결하는 믿음 선교(faith mission) 원리를 실천했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는 학창 시절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

황성주 이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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