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현해탄 높은 파도 어떻게 넘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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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타니 열풍은 실력·공감능력 때문
'옳은 주장 왜 이해 못하나' 대신에
행동으로 국민에 절실함·감동 줘야
」
#1 요즘 일본의 최대 영웅은 WBC MVP 오타니 쇼헤이다. 어디를 가나 오타니, 오타니다.
17년 전 "앞으로 30년 동안 일본에 승리하지 못하게…" 발언으로 한국을 자극했던 이치로와 달리 오타니는 실력에다 인성까지 갖췄다.
그런 오타니의 결승전 시합 직전의 연설에 "마음으로 울었다"는 일본 친구들이 많다.
라커룸에서 동료 선수를 모아놓고 건넨 이야기는 이랬다.
"하나만 이야기하겠다. 오늘 (상대 선수를) 동경하는 건 그만두자. 1루에 골드슈밋이 있고 센터를 바라보면 트라우트, 그 옆에는 무키 베츠가 있다. 누구나가 들었을 어마어마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동경해선 넘어설 수 없다. 우리는 오늘 그들을 넘어서기 위해, 정상에 오르기 위해 온 것이니 오늘 하루만은 그들에의 동경을 버리고 이기는 것만을 생각하자. 자 이제 나가자!"
이 말 하나로 팀을 단합시킨 건 아니다.
피곤한 몸임에도 팬들을 위해 1시간가량 사인 서비스하고, 구장의 쓰레기를 줍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신뢰를 얻었다.
경제력은 떨어지고 디지털에 뒤처지는 자신감 상실의 시대에 오타니는 일본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정신적 구세주다.
#2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30%대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은 최근 50% 선에 근접했다. 원동력은 외교.
특히 눈에 띄는 건 기시다 외교의 담담함이다.
성과를 홍보하거나 부풀리기 위한 회견도 따로 없다. 우크라이나 방문은 WBC 준결승(21일), 결승(22일)에 가려 일본 국내에선 빛도 안 났다.
그래도 기시다는 시진핑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날에 딱 맞춰 우크라이나를 갔다. 철저히 계산된 일정이었다.
푸틴-시진핑, 기시다-젤렌스키의 대비되는 사진은 전 세계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했다. 기시다는 시진핑에게 맞서는 자유 진영 대표 리더가 됐다.
한·일 외교도 마찬가지.
한국에선 "일본의 완승"이라 난리지만, 정작 일본에선 그런 자화자찬은 없다.
오히려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민과 신중함이 묻어 나온다.
두 정상이 폭탄주를 마시고 러브샷을 했다는 이야기를 한국 측이 자랑삼아 의도적으로 흘릴 때 일본은 "즐거운 술자리였다"고 세련되게 절제했다.
정상 순방에 BTS나 블랙핑크, 대기업 총수 같은 응원단도 없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걸 필요한 사람이 묵묵히 한다. 그리고 행동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니 야당도 우크라이나 방문 시 사전 필수 사항인 국회 승인을 흔쾌히 면제해 줬다.
#3 지난 27일 재외공관장 만찬 사진 중 눈에 확 들어 온 건 좌석 배치였다.
대통령 내외 양옆으로 주미대사, 주일대사가 앉았다. 문재인 정부 때는 주중, 주러 대사가 앉았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생각보다 실제 보이는 것에서 의미를 찾고 반응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통령 옆자리의 주미대사, 주일대사 모습은 어찌 보면 우리 외교의 정상화를 상징한다.
다만 문제는 의지와 현실 간 괴리다.
일 정부는 28일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에서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징병을 '참가'로 둔갑시켰다. 당장 "간과 쓸개 다 내주고 뒤통수 맞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 일본의 교과서 검정 개악은 2001년부터 시작한 '역사 지우기 20년 플랜'의 마무리다. 매년 3월의 고정 메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거란 점이다.
외교청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위안부 합의 복원,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등 악재는 시리즈로 대기 중이다.
하지만 이 정도도 예상 못 하고 내린 결단은 아니라 믿는다. 윤 대통령은 이미 시험대에 섰다.
오타니 말대로 그저 막연한 동경만 해선 살아남을 수 없는 살벌한 외교 전쟁터다.
'나를 따르라'는 거친 구호만으로는 현해탄의 거친 파도를 넘기 힘들다.
23분 나 혼자 국무회의 연설이 아니라 징용 피해자를 용산으로 초대해 "내 결단을 꾸짖어 달라"고 고개 숙이는 진솔한 행동에서 국민은 절실함과 감동을 공유한다.
다시 말하지만, 국민은 보이는 것에 반응한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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