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환의 지방시대] 한·일 출산율 최상위 영광군·나기초, 지역 책임형 보육이 한몫

오영환 2023. 3. 3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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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한·일 양국 모두에 인구동태는 아킬레스건이다. 나라의 틀을 헝클고 미래를 짓누른다. 일본은 전형적 소산다사(少産多死) 국가다. 인구가 2008년 정점(1억2808만명)을 기록한 이래 계속 줄고 있다. 한국도 2020년(5182만명) 소산다사의 인구감소 사회로 진입했다. 감소 폭은 가파르다. 다사 사회는 고령화의 산물이다. 2021년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화율은 29.1%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한국은 지난해 17.5%이지만, 고령화 속도가 최고다. 여기에 초저출산율이 겹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8명으로 사상 최저를 갈아치웠다. 일본은 2021년 1.3명이고, 지난해는 출생아가 처음으로 80만명을 밑돌 것으로 예측됐다. 양국 모두에 저출산은 최대의 국가 과제다.

그 와중에 양국의 두 기초단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전남 영광군(인구 5만2192명)과 오카야마(岡山)현 나기초(奈義町·5751명)다. 영광군은 2019년 이래 4년 연속 합계출산율이 전국 1위다(2.54→2.46→1.87→1.81명). 4년 평균 출산율(2.17명)은 딱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전국 평균의 2.6배나 됐다. 나기초는 2019년 2.95명을 기록해 ‘기적의 마을’로 불린다. 2021년은 2.68명이다.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을 내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달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 영광군, 주기별 두툼한 지원에
신생아 탄생 기념 식수 등 번뜩
나기초, 주민끼리 육아 품앗이
‘일 편의점’ 사업도 선순환 기여

인구정책 일원화로 시너지 효과

영광군과 나기초는 인구 규모나 구체적 정책은 다르지만, 공통분모가 적잖다. 영광군부터 보자. 올해 저출산 대책을 담은 ‘생애주기별 정책’ 책자는 44페이지나 된다. 국가·도·군 사업 80여건이 촘촘히 짜여 있다. 이 중 영광군 자체 사업은 30여건이다. 결혼·임신·출산 자체 사업으론 결혼장려금(500만원), 난임 부부 시술비, 임신부 교통카드(30만원), 양육비 지원이 눈에 띈다. 양육비는 첫째 아이 500만원, 둘째 아이 1200만원, 셋째~다섯째 아이 3000만원이다. 영광군 결혼출산팀 이선영 주무관은 “다른 지자체에 비해 결혼장려금과 양육비 규모가 크고, 난임 대책과 임신부 교통카드 등을 일찍 시작한 점이 차별화 포인트”라고 말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아동·청소년기 자체 사업으론 아빠 육아 휴직 장려금(최대 6개월 월 50만원)과 초중고·대학생 장학금이, 청년기는 취업활동수당(6개월 한도 월 50만원)과 청년 근로자 장려금(3년간 최대 1800만원)이 관심을 끈다. 청년기 제도는 인근 광주광역시로의 젊은이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아이디어와 정성이 돋보이는 사업도 적잖다. 우리 아기 주민등록증 발급과 신생아 탄생을 기념하는 식수 사업, 임산부를 위한 도서배달 대출 서비스 등등.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라는 슬로건은 우연이 아니다.

인구 정책 일원화도 빼놓을 수 없다. 2019년 군청에 인구일자리정책실을 만들어 각 부서로 흩어져있던 출산·보육·일자리·청년지원을 함께 다루면서 정책 간 시너지가 컸다고 양효정 인구정책팀 주무관은 전한다. 여기에 원전이 입지해 협력업체까지 합치면 다른 지역보다 일자리가 안정적이고, 소득이 탄탄한 점도 출산율 증가에 기여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강종만 군수는 “임신·출산·육아 과정은 단순히 한 가정의 책임이 아닌 이웃·사회의 관심과 안전한 사회망 구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출산 대책은 최대의 고령자 복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나기초는 종합병원도, 고교도, 일본서 그 흔한 철도 노선도 없다. 그런데도 출산율이 높은 데는 주기별 두터운 지원과 자급자족형 육아 사이클이 한몫한다. 나기초의 자체 사업은 20개를 넘는다. 출산축하금(10만엔), 재택 육아지원금(월 1만5000엔), 고교까지의 의료비 무료화, 고교 취학지원금(13만5000엔)…. 젊은이 거주와 일자리 대책으로 월세 2만2000~5만엔의 임대주택 81호를 마련했고, 16개 업체를 유치했다.

‘나기차일드홈’은 주민 참여형 보육을 상징한다. 보육사를 두고 부모가 당번제로 아이를 돌보면서 교류하고, 시니어 세대도 동참한다. 주민끼리의 보육 품앗이로 안심감이 크다고 한다. ‘일 편의점 사업’도 눈길이 간다. 보육맘과 학부모 등이 짬을 내 일하고 용돈을 버는 제도다. 사단법인(시고토엔)이 나기초사무소, 상점, 사업소, 농가로부터 일감을 받아 희망자에 맡긴다. 일은 포장, 청소, 잡초 제거에서 PC 문자입력, 스마트폰 교실 지원까지 다양하다. 모리야스 에이지 나기초 정보기획과 참사는 통화에서 “어린이가 줄면 버스 등 인프라가 없어지는 만큼 인구 감소는 이 마을을 지켜온 고령자의 안전·안심과 직결한다”며 “저출산 대책은 최대의 고령자 복지”라고 했다.

나기초가 저출산 대책을 본격화한 것은 2002년이다. 인근 기초단체와의 합병 대신 행·재정 개혁을 통해 연간 1억엔 이상의 보육 예산을 마련해왔다. 그 10년 후 나기초는 ‘육아응원선언’을 했다. “어린이들은 고령자와 더불어 나기초의 소중한 보물이다. 나기초에 살면 육아가 안심이라는 목소리가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을 꾀하고자 한다. 가정·지역·학교·행정 모두가 손을 맞잡고 지역 전체가 육아를 뒷받침하는 마을을 지향한다.” 나기초의 저출산 관련 정책은 지금 일본에서 하나의 모델로 퍼지고 있다.

거품 빼고 천편일률서 벗어나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영광군과 나기초 사례는 국경을 넘어 닮은 점이 있다. 지역 전체가 출산·보육을 책임진다는 생각이 근저에 깔려 있다. 지역 맞춤형 설계도와 정책 의지, 진정성의 중요성도 일깨워준다. 정부 정책을 바탕으로 독자적 색을 입히는 것은 결국 행정의 일선인 지자체의 몫이다. 긴축 시대를 맞아 국가, 광역·기초단체의 중복 지원 거품을 빼고, 천편일률 정책도 탈피해야 한다. 고령자 다수의 지방은 전 세대 참여형 육아 사이클을 고민해봐야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인구 문제는 현대사 최대의 정책 실패다. 장기전의 각오가 불가결하다. 7년 만의 대통령 주재 저출산고령사회위 회의가 새로운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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