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의 과학 산책] 꽃 잔치와 지구 운명
이런 꽃 잔치가 없다. 춘분이 지나고 기온이 오락가락하더니 서울 홍릉 고등과학원 캠퍼스가 온통 수채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매화와 산수유꽃이 조금 앞서는 듯하다가 개나리에 진달래, 목련은 물론 라일락까지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기실, 봄꽃은 순서가 있다. 아니 있었다. 60여 평생의 8할은 그랬던 것 같다. 매화와 산수유가 봄을 앞서 알리고, 3월엔 개나리와 진달래, 4월엔 목련과 벚꽃, 5월엔 라일락….
연구실 창밖 봄꽃들이 한꺼번에 터지니 우선 보기는 좋지만, 되새겨보니 맘이 편치 않다. 해가 갈수록 더 진하게 실감하는 지구온난화가 봄꽃 잔치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서유럽과 미국의 한파·혹서 뉴스가 이젠 흘려 들리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경험했던 100년 만의 폭우와 홍수는 우리 땅도 더이상 지구온난화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실감하게 했다. 일부 지구물리학자들은 임계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해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머잖아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이르게 된다는 얘기다.
따져보면 지구온난화는 과학기술 발전이 자초한 일이다. 기후재난 SF영화 ‘투모로우’처럼 인류는 지금 디스토피아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온난화의 재앙이 과학 문명 탓이지만 이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것 또한 과학이다.
프랑스 남부 소도시 카다라슈에선 지금 인류 문명 최대의 실험이 진행 중이다. 인공태양이라 불리는 핵융합발전을 위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가 건설 중이다. 핵융합발전이 상용화되는 시점은 2050년쯤이라고 한다. 그날이 오면 인류는 탄소배출이 없고 청정한 무한에너지를 얻게 된다. 지금으로선 온난화의 임계점이 먼저 올지, 인공태양이 먼저 등장할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아들·딸 세대는 아마도 디스토피아가 아니면 유토피아 둘 중 한 곳에 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올봄, 유달리 찬란한 꽃 잔치가 애잔해 보이는 이유다.
이기명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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