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 스님의 글빛 다실] 매화의 향기소리
매화가 피었다. ‘매화는 일생토록 춥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조선 중기 문인 신흠(1566∼1628)의 시구처럼 조선의 선비들은 특히 매화를 사랑했다. 퇴계는 세상과 작별하는 마지막 말로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를 선택했다. 남기고 싶었을 모든 말을 매화에 대한 사랑으로 일축했다.
중국 북송의 시인이자 역학자인 소강절(邵康節·1011~1077) 이래로 매화는 단순한 감상 차원을 넘어 역학(易學)의 꽃으로 격상되었다. 소강절이 매화나무에서 싸우는 참새 두 마리를 보고 앞일을 예언한 일화가 그 유래다. 참새들의 싸움으로 나뭇가지가 떨어지자 그는 한 여인이 정원지기 몰래 꽃을 꺾다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물을 관찰해(觀物) 세상의 숨은 이치와 기미를 파악했던 것이다. 이는 매화역수(梅花易數)라는 수리역학(생년월일 등 숫자를 통해 운세를 파악하는 역학의 한 갈래)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매화는 역(易)의 관점에서 보자면 음기 가득한 한겨울에 첫 번째 봄기운(一陽)이 피어나는 복괘(復卦)를 상징한다.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기에 제격이다.
이러한 관념적인 상식에서 탈피하여 온몸으로 매화를 만난 것은 10년 전 성남시 분당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였다. 캠퍼스를 바삐 걷던 쌀쌀한 어느 날, 어디선가 향긋한 꽃내음이 나를 불러세웠다. 둘러보았더니 자그마한 백매화가 담박하게 몇 송이 꽃을 피워놓고 있었다. 선승들이 ‘향성(香聲)’이란 말을 썼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향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으니 ‘향기소리’라고 할 법도 하다.
이후 매년 봄이면 오로지 그 매화 한 그루를 보기 위해 연구원을 찾곤 했다. 올해도 찾아갔으나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다. 그 자리에 새로 기숙사 건물을 짓는단다. 언젠가 송곳 꽂을 땅 한 뙈기 생긴다면 소담한 백매화 한 그루 심고 싶다. 나를 불러세웠던 바로 그 꽃. 인연이었던가 보다.
문광 스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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