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연금개혁안 못낸 연금특위…두루뭉술 보고서뿐

박형수, 이유정, 채혜선 입력 2023. 3. 30. 00:17 수정 2023. 3. 30. 06: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초라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자문위)가 29일 구체적인 방안 없이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가입 상한, 수급개시연령을 모두 올려야 한다는 원칙만 담은 경과보고서를 특위에 제출했다. 연금특위는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채 다음 달 말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어 개혁 논의는 사실상 국회에서 정부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말 나올 재정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10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계획이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문위는 보고서에서 현행 국민연금의 보험료율(9%) 및 의무가입상한(59세)·수급개시연령(올해 63세)을 모두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보험료율을 얼마나 올려야 할지, 의무가입상한과 수급개시연령은 몇 살까지 상향 조정할지 밝히지 않았다.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수급액·40%)은 현재 생애 평균 소득이 100만원인 사람이 40년 가입했을 때 노후에 월 40만원의 연금을 받도록 설계돼 있다. 자문위는 재정을 위해 소득대체율을 이대로 고정하자는 의견과 노후 보장을 위해 이를 더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모두 보고서에 담았다.


미래와 국민 반발 사이 ‘연금개혁 딜레마’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연금특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자문위는 국회 차원의 연금개혁 초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연금특위 산하 기구로 출범했다. 당초 지난 1월 말 구체적인 연금개혁 초안을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예정보다 두 달이나 늦어졌고 기대했던 연금개혁 초안이 아닌 두루뭉술한 경과보고서만 냈다. 보험료율 인상 등을 놓고 논란이 커지자 연금특위 측이 자문위에 모수개혁이 아닌 구조개혁으로 방향을 틀도록 주문했기 때문이다. 연금특위 여당 간사인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8일 “구조개혁에 대한 부분을 우리가 먼저 충분히 논의하고 나서 (모수개혁을)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모수개혁은 보험료율·소득대체율 등 국민연금 제도의 주요 변수를 조정하는 개혁이고, 구조개혁은 국민연금뿐 아니라 기초연금·공무원연금 등을 통틀어 전반적인 연금 구조를 바꾸는 개혁을 의미한다. 자문위는 보고서에서 “명시적으로 연금개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연금특위와 별도로 모수개혁 중심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마련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연금특위 회의에서 “사회적 논의를 최대한 담아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제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10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내놓고 이를 바탕으로 국회가 국민연금법을 개정하면 개혁이 완료된다. 다만 내년 4월 총선이 예정된 상황에서 정부가 ‘보험료율 인상, 소득대체율 인하’ 등 국민 반발이 큰 정책을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민연금 개혁을 미룰수록 미래 세대가 떠안을 폭탄 규모가 커진다. 현재 915조원인 국민연금 기금은 2040년 1755조원으로 정점을 찍고 이후 매년 수지 적자가 발생하면서 급감해 2055년 바닥 난다. 5년 전 예상보다 기금 소진 시점이 2년 앞당겨졌다. 기금이 고갈되면 매년 보험료를 거둬 수급자에게 연금을 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2055년 연금 보험료율은 26.1%까지 뛴다. 32년 뒤 국민연금 가입자는 월 소득의 4분의 1을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얘기다.

■ 연금특위 민간자문위 보고서 주요 내용

「 ● 국민연금 가입상한 연령 : 현 59세서 상향 필요
● 수급개시 연령 : 올해 63세서 상향 필요성 인정
● 소득대체율 : 보험료율 인상 전제로 병기
① 재정안정 위해 2028년까지 40%로 인하
② 노후생활 위해 40%보다 인상
● 직역연금 : 제도 개편 필요하나 신중한 접근 필요
● 기초연금 :‘40만원 인상’ 관련해 다양한 의견 있었음
● 퇴직연금 : 개선 방향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음

자문위 관계자는 “당장 국민연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게 폭탄을 안기는 것인데도 국회·정부 모두 무책임하다”며 “총선 이후엔 대통령선거, 지방선거가 줄줄이 있는데 여야 어느 쪽도 표 떨어지는 개혁을 미룰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금개혁이 중요하지만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 등은 이해 관계자가 많아 자칫 국론을 분열시킬 수 있다. 프랑스 연금개혁 갈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초부터 연금개혁을 밀어붙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최후의 수단’으로 불리는 프랑스 헌법 제49조3항(정부 단독 입법)까지 발동하며 연금개혁에 나섰다가 프랑스가 두 동강 날 지경이 됐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선 74만 명(내무부 집계, 노동총연맹은 200만 명 추산)이 거리에서 10차 시위를 이어갔다. 파리의 대표 관광지인 루브르박물관·에펠탑·개선문 등이 파업에 문을 닫았다. 다음 달 6일 전국적인 11차 시위도 예고된 상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여론조사기관 오독사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을 ‘좋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자는 30%로, 한 달 사이 6%포인트 하락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명분은 ‘국익’이다. 프랑스연금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연금을 이대로 두면 올해 적자로 전환한 뒤 2027년 연간 120억 유로(약 16조원)가량 적자가 생길 전망이다. 그러나 야당과 시위대는 마크롱 정부가 연금개혁안의 하원 표결을 건너뛴 절차적 정당성 흠결을 지적한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프랑스인의 약 70%가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안 처리 방식이 절차적으로 정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명분을 내세워 국민 설득을 생략하는 지름길을 택했다가 국민 공분의 대상이 됐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성과 효율성은 상충하는 개념인데, 아무리 국익을 위해서라도 효율성(의회 패싱)을 택하면 민주성 훼손을 공격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정치 지도자가 국익을 위해 인기 없는 정책도 결단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려면 삼권분립의 다른 축인 의회와 사법부가 탄탄해야 한다”며 “연금개혁을 시도하는 윤석열 정부 역시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의회 등 정치 제도를 통해 공감을 얻어나가는 절차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형수·이유정·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