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층’ 짓는 압구정 구현대…‘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오세훈표 재건축 [재건축 임장노트] (11)
서울 강남구 압구정지구에서 재건축 밑그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구역별로 신통기획에 참여해 속도를 높이고 있던 중, 최근 서울시가 ‘층수 완화’ 방침까지 밝히면서 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는 모습이다. 서울 강남권 대표 부촌인 압구정 아파트가 재건축이 본궤도에 오르기만 하면 3.3㎡당 매매가가 2억원을 훌쩍 넘을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현대(1~14차)와 한양(1~8차), 미성(1·2차) 등 여러 단지로 이뤄진 압구정지구는 1970년대 말 영동지구 개발의 일환으로 아파트지구로 지정됐다. 이후 대형 면적 고급 아파트로 기획된 압구정 현대가 성공하면서 비슷한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섰고, 재계, 정·관계, 연예계 유력 인사들이 모여 살면서 국내 대표 부촌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부촌이어도 아파트는 점차 노후됐고 준공 30년을 넘긴 후부터 50년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재건축 논의가 꾸준하게 제기돼왔다.
서울시는 이 많은 단지가 각자 재건축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보기 좋게 묶어 진행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고, 이들 단지를 크게 6개로 묶어 특별계획구역으로 나눴다. 지금은 압구정1~6구역으로 불리고 있고, 현재 6구역을 제외한 5개 구역이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을 신청한 상태다.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되지 않아 오랫동안 사업이 지지부진했었는데, 서울시 신통기획을 계기로 처진 속도를 단숨에 끌어올리겠다는 주민 의지가 강하다.
2구역 한강변 맨 앞동 20층 허용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와 압구정3구역 재건축조합은 지난 2월 말 주민대표 간담회를 진행했다. 현대1~7차, 10·13·14차, 대림빌라트 등 총 4065가구로 구성된 압구정3구역은 압구정 내 6개 정비구역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동호대교와 성수대교 남단 사이에 위치해 압구정에서도 입지가 좋은 곳으로 통한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신속통합기획 재건축 대상지 중 한 곳이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최고 층수를 기존 35층에서 49층으로 확대해 스카이라인을 다양화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3구역은 추진위원회 시절이던 2019년 재건축 사업 주민설명회를 통해 최고 층수를 49층으로 하는 안을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 35층 층수 제한 문턱을 넘지 못해 사업이 답보 상태에 빠졌다. 그러다 서울시 기조가 확 바뀌면서 지지부진하던 사업에 물꼬가 텄고, 3구역은 6개 구역 중 신속통합기획에 가장 먼저 신청했다.
프롭테크 스타트업 다윈중개가 재건축 사업성을 시뮬레이션해 점수화한 결과 3구역은 ▲현대4차(134점) ▲현대13차(125점) ▲현대5차(124점) ▲현대14차(98점) ▲현대6·7차(92점) ▲현대1·2차(86점) ▲현대10차(81점) ▲현대3차(68점) ▲대림빌라트(점수 없음) 순으로 사업성이 높았다.
3구역이 ‘구현대’로 불린다면 2구역(현대9·11·12차 총 1924가구)은 ‘신현대’로 통한다. 3구역과 마찬가지로 압구정역 역세권에 잠원한강공원, 현대백화점을 끼고 있는 단지다.
2구역의 경우 지난해 초부터 일찌감치 ‘최고 49층’으로 재건축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1월 공고한 현상 설계 공모에서 건축 규모를 지하 3층~지상 49층으로 명시했다. 최근에야 층수 규제가 풀렸다지만 당시에는 서울시 ‘35층 룰’이 아직 살아 있던 터라 시장 주목을 받았다.
2구역은 최근 서울시와의 주민 간담회에서 한강변 맨 앞동을 20층까지 지을 수 있다는 데 합의했다. 한강과 접해 있는 동은 무조건 15층 이하로 짓도록 한 현행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서울시가 제안한 ‘외부인도 이용할 수 있는 저층부 커뮤니티 시설, 수변 특화 디자인 기준’ 등을 충족해야 한다. 한강변 층수 제한이 15층에서 20층으로 높아지면, 2구역 조합은 아파트를 낮고 빼곡하게 지을 필요가 없다. 높게 짓는 대신 동간 간격이 넓어지고 쾌적해지는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압구정지구에서 세 번째로 큰 4구역(한양3·4·6차, 현대8차 총 1340가구)과 5구역(한양1·2차 총 1232가구)도 신속통합기획 대열에 합류한 상태다. 4구역은 압구정 6개 지구 중에는 가장 먼저 재건축 조합설립인가를 받았고, 5구역은 2021년에야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서울시가 2·3·4·5구역에 대한 신속통합기획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한 만큼 올해 중으로는 결과물이 나올 전망이다.
4구역 내 단지별 재건축 사업성을 비교해보면 ▲현대8차(116점) ▲한양5차(106점) ▲한양4차(104점) ▲한양3차(103점) 순으로 높다. 5구역의 경우 ▲한양2차(115점) ▲한양1차(90점) 순이다.
앞의 2·3·4·5구역이 조합을 갖춰놓고 신속통합기획에 참여했다면 1구역(미성1·2차 총 1233가구)은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신속통합기획에 참여한 경우다. 1구역은 용적률이 낮고 대지지분이 커 재건축 사업성이 높은 미성1차에서 분리 재건축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어 조합설립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1구역 재건축 사업성 점수는 ▲미성1차(122점)가 ▲미성2차(74점)보다 높다.
6구역(한양5·7·8차 총 672가구)은 6개 구역 중 가구가 가장 적고, 사업 속도도 느리다.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조합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인데 재건축초과이익환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역 내 유일하게 조합이 설립된 한양7차 조합을 해산하고 통합 재건축을 다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6구역 건축 사업성 점수는 ▲한양7차(121점) ▲한양5차(106점) ▲한양8차(점수 없음) 순으로 높다.
전문가들은 압구정지구가 재건축되면 이웃 서초구 반포지구에 내줬던 ‘최고 부촌’ 타이틀을 되찾을 것으로 내다본다. 한강을 넓게 접하고 있는 데다 교통망, 백화점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두루 갖춰서다. 개발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아파트값이 3.3㎡당 2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3월 17일 기준 압구정동 3.3㎡당 아파트값은 9639만원이다.
물론 다양한 주민 의견과 서울시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등 해결 과제는 남았다.
신속통합기획안으로 당장은 층수가 부각됐지만 앞으로 서울시와의 협의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12월부터 2월 말까지 신속통합기획에 참여한 압구정2~5구역을 대상으로 기부채납률(면적 기준)을 기존 15%에서 10%로 낮추기로 하는 등 호재가 많았지만, 그간 주민 간담회에서 시와 합의한 사항들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상반기 내 조합원을 대상으로 여는 주민설명회 등 추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신속통합기획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서 신속통합기획은 서울시가 빠른 사업을 돕는 대신 민간의 기부채납, 임대주택 등으로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조합 입장에서는 기부채납을 통해 땅을 양보해 길을 넓히거나 공원, 공공주택 등 공공에 이익이 되는 건물을 지으면 재건축 수익성이 떨어지고 이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반면 ‘부촌의 상징’인 압구정지구 위상에 걸맞게 1 대 1 재건축으로 중대형 평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민 의견도 만만찮아 합의점을 원만히 도출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2호 (2023.03.29~2023.04.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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