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주차장 없으면 차 못 산다… 제주의 첫 실험, 실효성 논란

문정임 2023. 3. 2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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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지증명제 전면 시행 15개월
지난해 1월부터 제주도 전역에 시행된 차고지증명제의 실효성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주차장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세들어 사는데 주인한테 차고지를 만들라고 해야 할까요?” “구도심 주택 상당수는 자기차고지를 만들 공간이 없어요. 생활도 넉넉하지 않은데 주차장 임대료를 평생 내야 한다네요.”

제주도청 민원 게시판이 시끌시끌하다. 제주도가 지난해 1월부터 전역에 시행한 차고지증명제를 두고서다. 게시글에는 지역별 주택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적 정책이라는 지적이 많다. 도민이 감수하는 불편과 지불 비용에 비해 실효성이 낮은 정책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차고지증명제 논란은 일부지역에 제도를 처음 도입한 이후 16년째 계속되고 있다.

제주도는 차량 증가로 주차난이 심각해지자 2007년 차고지증명제를 도입했다. 차고지증명제는 차주에 차고지 확보를 의무화하도록 한 제도다. 전국에서 제주가 처음이다. 도는 첫해 제주시 도심지역 대형승용차를 시작으로 2017년에는 제주시 도심지역 중형승용차 이상 차량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지난해 1월부턴 도내 전지역 전차종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제주에서 새 차를 사거나 주소를 변경할 때, 자동차 소유권을 이전등록할 때(시행일 이전 등록차량은 제외)에는 미리 차고지를 확보한 뒤 증명서를 제출해야 남은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제주도는 차고지증명제 시행에 앞서 제도 안착을 위한 지원을 두루 추진했다. 2001년부터 자기차고지갖기사업을 시행했다. 도민들이 주택에 차고지를 조성할 경우 담을 허물거나 주차면을 조성하는 비용의 90%를 지원했다. 주로 자기 주택에 차고지를 만들 공간이 있는 도민들이 참여했다. 지난해까지 도 전역에 총 2910곳 5439개 주차면이 만들어졌다. 공영주차장도 매년 확대했다. 공영주차장은 점차 유료로 전환해 이중 일부비율을 차고지증명용으로 임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민간 건축물 부설주차장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사업도 시작했다.

이처럼 도가 도심 전체에 주차면을 늘리면서 동시에 자기차고지를 확보한 경우에만 차를 소유할 수 있게 한 차고지증명제를 전면 시행하면서 선진 주차환경의 토대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반면 지역별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통행식 행정이라는 우려도 컸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무주택자나 차고지를 만들 공간이 없는 주택 소유자들은 차를 소유하는 내내 임차료를 내고 차고지를 대여해야 한다. 공영주차장의 경우 1년 임차료가 90만원(도심지역 기준)이다. 생계 유지를 위해 차량을 이용해야 하거나 아이가 어린 가정, 노인이나 환자가 있는 집은 비용이 부담된다고 차를 없앨 수도 없다. 서민들에게 ‘또 하나의 족쇄’라는 말이 나온다.

제주시 일도초등학교 주변 주택가(위 사진), 제주시 일도1동 골목길(아래). 구도심 지역인 일도1동은 좁은 골목길을 따라 주택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 차고지 공간을 마련하기 어렵다. 문정임 기자


이런 문제는 구도심 지역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대표적 구도심 지역인 제주시 일도1동의 경우 1386세대가 890대의 차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차고지갖기사업이 시작된 이후 22년간 이 곳에 설치된 자기차고지는 5곳 8개면뿐이다. 제주시 읍면동 중 섬인 우도와 추자도를 제외하고 가장 적다. 이는 일도1동에 상가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들이 작고 빽빽이 붙어 있어 차고지 조성이 어려운 구조 탓이 더 크다. 다른 구도심 지역인 이도1동과 삼도2동, 용담1동 등도 자기차고지 조성 주택이 평균 30곳 안팎으로 비슷한 상황이다.

자기차고지가 없을 경우 공·민영 주차장이나 나대지 등 공지에 돈을 내고 빌리면 된다. 하지만 임차 방식이 논란이다. 시민들이 가장 손쉽게 찾는 공영유료주차장의 경우 1년치 임차료를 선불로 지불했어도 지정 공간이 배정되지 않아 만차 시에는 주차 할 수 없다.

읍면 지역은 차고지를 임대할 주차장이 적어 애를 먹고 있다. 차고지로 인정되는 임차지는 거주지 1㎞ 이내여야 한다. 운좋게 집 가까이 공영유료주차장을 찾더라도 2년만 임대가 가능하다. 이후에는 다시 다른 임차지를 찾아야 한다. 집 주변에 차 세울 공간이 넉넉한데도 차고지 확보에 돈과 시간을 써야 하는 읍면 주민들의 불만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대조적으로 대단지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차고지증명이 까다롭게 적용되지 않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제주도 차고지증명 및 관리 조례는 공동주택의 경우 ‘총 주차면수의 범위’에서 운영하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관리사무소 자체 판단에 따라 승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외부에 차고지를 임대하는 경우 실제 퇴근 후 차고지에 주차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16년째 논란이 이어지지만 제도 실효성에 대한 검증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차고지증명 미이행에 대한 과태료 부과 조항이 신설된 2020년 6월부터 지난해까지 차고지를 확보하지 않아 과태료가 부과된 건수는 800여건에 달했다.

관련부서 공무원들도 차고지증명제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개선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러 차례 유예를 거쳐 전면 시행에 들어간 만큼 행정적 혼란을 더 초래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취재 중 만난 일도1동의 한 주민은 “시장 인근 공영주차장을 빌려 차고지증명을 하긴 했지만 수백미터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취지가 좋아도 효과가 낮으면 정책을 손질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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