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할머니가 뿌려놓은 동화 같은 노란 물결

남호철 2023. 3. 2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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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의 섬’ 전남 신안 선도
전남 신안군 지도읍 선도에 조성된 수선화 군락지가 노란 꽃으로 화려하게 물들어 있다. 매미를 닮은 섬 선도는 마을 지붕과 벽도 모두 노랗게 칠해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옐로 섬’이다.


수선화.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희곡 ‘겨울이야기’에서 ‘제비보다 먼저 와서 그 아름다움으로 3월의 바람을 사로잡는구나’라고 묘사한 봄꽃이다. 그 꽃이 요즘 전남 신안군 지도읍 선도(蟬島)에서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선도는 매미를 닮았다 해 매미섬이라 불린다. 옛날 지도군 선도면이었지만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무안군에 속했다가 1969년 신안군에 편입됐다. 목포에서 북서쪽으로 51㎞ 떨어져 있는 남북 4㎞, 폭 2㎞쯤 되는 작은 섬이다. 여유 있게 걸어도 1시간 반 정도면 섬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선도 주동마을 교회 앞에는 ‘수선화의 집’이 있다. 집주인은 현복순 할머니. 할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꽃을 좋아했다. 친정인 목포 집은 정원이 넓었고 덩굴장미, 천리향, 치자꽃들이 사시사철 번갈아 피고 졌다.

목포에서 태어나고 자란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따라 30년 전쯤 섬으로 들어왔다. 평생 뭍에서 생활한 할머니는 내키지 않았지만 고향인 선도에 돌아가고자 하는 할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선도 들판 한가운데 작은 집을 지었다. 남은 공간인 집 텃밭을 정원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먼저 집 주위에 개나리와 덩굴장미를 심어 울타리로 삼았다. 할머니는 육지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꽃을 사 와서 심고 가꾸었다. 해마다 수선화 구근을 심다 보니 어느덧 집 주변을 온통 수선화가 둘러싸게 됐다. 할머니는 ‘수선화 할머니’로 불렸다.

할머니의 노력에 선도의 온 들판이 수선화로 물들자 신안군이 나섰다. 2018년부터 군비를 들여 선도리 일원 약 8㏊ 땅에 수선화 꽃밭을 만들었다. 마을 언덕에는 노란 수선화가 바람에 춤을 추고, 마을 지붕과 벽도 꽃 색깔에 맞춰 노란색으로 단장했다. 물감을 뿌려 놓은 듯, 동화 나라에 온 듯 해 ‘옐로 섬’의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2019년에 첫 번째 수선화 축제가 열렸다. 신안군이 선도를 홍보하면서 축제는 대성공을 거뒀다. 수선화로 뒤덮인 선도의 아름다운 풍경이 입소문을 탔다. 2020년 ‘가고 싶은 섬’에 선정됐다.

2020년부터 코로나19 여파로 축제가 취소됐지만 섬은 더 많이 알려졌다.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한적한 섬으로 주목받던 선도를 찾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섬이 1㎝ 가라앉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코로나의 터널을 벗어난 올해 ‘수선화 축제’를 만날 수 있다. 축제는 30일부터 4월 9일까지 ‘우리의 봄’이란 주제로 열린다. 2.7㎞의 수선화 재배단지 관람로를 따라 13㏊의 면적에 178만 포기 수선화가 반긴다. 관람로 이외에도 ‘수선화 정원’과 ‘잔디광장’이 새로 조성되고 곳곳에 포토존과 쉼터도 마련됐다. 축제 기간 자전거 일주, 1년 뒤 받아보는 느림보 우체통, 세상에 하나뿐인 꽃팔찌 만들기, 꽃차 시음, 수선화꽃 회화전, 선도 사진전이 쉼터와 전시 부스에서 선보인다. 수선화축제추진위원회는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수선화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상품과 화분도 판매할 계획이다. 선도로 가는 길은 배편을 이용해야 한다. 압해읍 가룡선착장에서 차도선으로 50여 분 소요된다.

수선화가 머물던 자리는 금영화가 바통을 받아 노란 물결을 이어간다. ‘감미로움’ ‘나의 희망을 받아주세요’란 꽃말을 지닌 금영화는 캘리포니아양귀비라고도 하며 높이 30~50㎝로 5월부터 8월까지 꽃을 피운다.

선도 선착장에 우뚝한 표지석.


작은 섬이지만 선도에서 산행도 즐길 수 있다. 선도 최고봉은 범덕산(145.2m)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한다. 옹골찬 암릉으로 이뤄져 능선에 올라서면 수많은 섬과 갯벌을 조망할 수 있다. 가깝게는 사옥도, 증도, 병풍도, 매화도가 보이고 멀리 천사대교와 자은도, 암태도, 유달산까지 보인다.

노란색을 시작으로 신안군의 ‘컬러 마케팅’은 4월 7일부터 16일까지 열흘 동안 형형색색 튤립이 만발한 ‘임자도 튤립 축제’로 연결된다. 안좌도에 딸린 반월·박지도는 2017년부터 ‘퍼플섬’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세계가 주목하는 명소가 됐다. 보랏빛 해상산책로로 섬을 연결하고, 라벤더를 비롯해 라일락, 박태기, 자목련, 수레국화 등 파랑에서 자주색 계열의 꽃과 나무를 심어 일 년 내내 보랏빛 향기가 감돈다.

선도 인근 병풍도는 맨드라미 섬으로 변신했다. 34개 품종 다양한 색상의 맨드라미를 심고 대표 색상인 진홍빛으로 마을을 단장했다.

선도(신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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