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두어 번만 돌면 태극기가 보이는 도시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카트만두에서 며칠을 쉰 뒤 도착한 곳은 포카라였습니다. 늘 그렇듯 역시나 예상보다 두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자,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부슬비를 맞기도 하고, 조금 거세지면 어느 지붕 아래에서 피하기도 하며 근처의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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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카라의 비 오는 풍경 |
| ⓒ Widerstand |
다양한 식당이 있다는 것은, 이곳이 그만큼 여행자가 많이 모이는 도시라는 의미이겠죠. 저처럼 그저 휴식을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트레킹이나 등정을 위해 오는 사람들도 아주 많을 것입니다. 안나푸르나나 다울라기리, 마나슬루와 같은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들이 포카라를 둘러싸고 있으니까요.
포카라는 1958년에 처음 공항이 만들어졌고, 60년대 말에야 처음 고속도로가 연결된 고립된 도시였습니다. 산간 지대이니 접근이 어려운 땅이었지요. 과거에는 중국과 인도 사이 무역 거점으로 활용된 적도 있다고 하지만, 양국 관계가 악화되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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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멜 거리의 태극기 |
| ⓒ Widerstand |
물론 네팔과 티베트는 히말라야와 고원 지대를 공유하는 문화권의 연장선에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특히 현대에 이르러 네팔로 이주한 티베트인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중국은 티베트를 점령한 뒤 한동안 자치를 보장하며 티베트와의 협력을 추진했지만, 곧 티베트 불교에 대한 탄압 등을 계기로 갈등이 점화됐습니다. 결국 1959년 광범위한 시위가 발생했고, 중국은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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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와 호수 |
| ⓒ Widerstand |
이들은 기본적으로 밀입국을 통해 들어온 난민이기 때문에, 명확한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팔은 티베트 난민촌을 세우고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인정했지만, 법적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적인 자립은 요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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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카라 도심을 벗어난 마을의 풍경 |
| ⓒ Widerstand |
전망대에 오르긴 했지만, 사실 안개인지 먼지인지가 하늘에 뿌옇게 끼어 높은 설산의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포카라를 떠나는 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문득 뒤를 돌아보니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보이더군요. 덕분에 이 도시에 즐거운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건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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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카라 시내에서 본 마차푸차레 |
| ⓒ Widerstand |
하지만 왠지 포카라의 골목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 것도 없이 비워져 있었던 시간들이, 꽉 채워져 있었던 시간들보다 오히려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포카라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간 도시였습니다. 저 같은 한적한 여행객도 있었고, 높은 산을 바라보는 등반객들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밀려난 난민까지도 이 도시에 모였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도시를 스쳐 떠나갔고, 다른 일부는 그럴 수 없어 도시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골목과 마을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쉽게 많은 것을 비워낼 수 있는 도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설산을 찾아, 휴식을 찾아, 호수를 찾아, 때로 자유를 찾아 온 사람들의 도시였으니까요. 그렇게 스쳐가는 이들의 흔적만이 켜켜이 쌓여 굳어진 도시였으니까요.
삶이 너무도 꽉 채워져 아무것도 들어갈 틈이 없을 때, 저는 언젠가 포카라에 돌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을 비우고, 내 안에 있는 것을 비우고, 새로운 것을 채워낼 준비를 할 수 있는 도시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이 도시를 스쳐 지나가고 나면, 이 곳에서 비워낸 저의 흔적도 언젠가 여기 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때는 저도 이 도시의 일원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비워낼 시간들을, 다시 포카라를 스쳐갈 날을, 저는 벌써부터 그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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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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