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도 알고 있었다"는 일본 국가기본문제연구소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입력 2023. 3. 2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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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지 않는 윤 대통령"이라는 일본 우익의 적반하장

[김종성 기자]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과 독도 문제 등 왜곡된 내용을 담은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 28일 오후 역사왜곡 교과서에 항의하기 위해 초치된 주한일본대사관 구마가이 나오키 대사 대리가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28일 일본 문부성이 강제징용(강제동원)과 독도에 대한 역사 왜곡을 강화한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 외교부는 주한일본대사관 대사대리인 구마가이 나오키 총괄공사를 초치해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구마가이 공사는 고분고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구마가이 공사를 부른 사람은 굴욕적인 제3자 변제안을 사실상 공표한 1월 12일 강제징용 토론회 때 발언했던 조현동 제1차관이다. 이날 조현동 차관은 "피해자들이 원하는 바를 일본 측에 가감 없이 전달해왔으며, 일본 측도 이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뒤 손해배상판결을 거부하는 일본 기업들의 국내 재산을 법원 강제집행으로 현금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공개 석상에서 이렇게 발언한 일이 있는 외교부 차관의 항의를 구마가이 공사가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였을지 의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조 차관을 만나고 나온 구마가이 공사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아무 대답 없이 외교부 청사를 빠져나갔다.

그렇지만 그 직전까지 조현동 차관 앞에서 당당하게 발언했던 것으로 보인다. 28일 인터넷판 NHK 기사 '교과서 검정에 한국 반발, 다케시마나 징용 서술에 항의···공사 호출'은 조 차관 앞에서 구마가이 공사가 보인 태도를 이렇게 보도했다.

"이에 대해 구마가이 총괄공사는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또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히 일본 고유의 영토다"라며 항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하는 외에, 징용을 둘러싼 문제 등에 관한 한국 측의 주장에 관해서도 '지적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한국 외교부의 항의에 대해 '항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 '지적하지 말라'고 응수했다. '지적하지 말라'는 뜻을 담은 구절을 '지적은 맞지 않다(指摘は)'로 번역했지만, 이는 수위를 낮춘 번역이다. '항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강경한 발언이 나오는 논쟁과 관련된 경우에는 '지적은 가당치 않다'라고 번역해도 무방하다. 일본어 아타라나이(あたらない)는 '맞지 않다, 들어맞지 않다' 외에 '가당치 않다'의 뜻도 있다.

일본 공사의 뻣뻣한 태도는 윤석열 정권의 굴욕외교로 인해 한껏 고양된 일본 국내 분위기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과거도 문제 삼지 않고 사과나 배상도 받지 않겠다는 윤 정부의 선언을 고마워하기보다는 도리어 기세등등해하는 태도가 일본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 분위기가 구마가이 공사의 발언에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본문제연구소의 지적
 
 28일 일본 우파 싱크탱크인 국가기본문제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니시오카 쓰토무의 글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지 않는 윤 대통령'
ⓒ 국가기본문제연구소
일본 최대 우익단체인 일본회의(닛폰카이기)와 긴밀한 관련을 갖는 우파 싱크탱크인 재단법인 국가기본문제연구소가 28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도 그런 분위기가 묻어 있다. 일본인 납북자들을 위한 '구출회' 회장과 도쿄기독교대학 교수 등으로 일하면서 이 연구소에서 기획위원 겸 평의원으로 있는 니시오카 쓰토무가 쓴 글이다.

글의 제목은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지 않는 윤 대통령"이다. 이 글에서 니시오카 기획위원은 윤 대통령을 더욱 주시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한국 내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강제징용 문제를 처리했지만 그의 역사 인식에 문제점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1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중국은 30여 만 명이 희생된 1937년 난징대학살을 겪었지만 정부 차원의 배상 요구를 하지 않았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니시오카 기획위원은 합법적인 전시동원을 난징대학살에 빗댔다는 이유로 윤 대통령을 불만스러워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모른 척해준 게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6일 한국 정부가 박진 외교부 장관을 통해 강제징용 처리 방안을 발표하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기자 인터뷰 형식을 빌려 화답의 뜻을 전달했다. 기시다 총리가 직접적인 사과는 하지 않겠지만 과거의 사과 표명을 계승하는 발언을 할 것이라는 한국 측의 예고에 부응하는 '액션'이었다.

6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시다 수상 '역사인식의 입장 계승'···98년 일한공동선언 포함" 같은 기사들에 보도됐듯이, 이날 기시다 총리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일한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라고 표명했다.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비롯한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발언은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를 덮어주는 것에 대한 답례 표시의 성격을 갖는다. 이 발언 속에 담긴 '지뢰'를 윤 대통령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 윗글의 언급이다.

기시다 총리는 당초 예고된 대로 '과거의 사과담화를 계승한다'고 하지 않고,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발언했다. 윗글은 기시다 총리가 언급한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 속에 스가 요시히데 내각의 역사인식 표명도 포함된다고 지적한다. "계승하는 역사인식에는 전시동원은 강제연행·강제노동은 아니라는 스가 요시히데 정권의 각의 결정도 포함한다"고 말한다.

기시다 내각 직전의 스가 내각은 2021년 4월 27일에 강제징용이나 종군위안부 같은 용어에는 '강제성'이 함축돼 있다면서 이런 용어를 쓰는 게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내각 차원의 결정으로 정리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뿐 아니라 스가 내각의 결정까지 포함해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겠다는 것이 기시다 내각의 입장이라고 윗글은 말한다.

구마가이 공사가 뻣뻣했던 이유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 연합뉴스
기시다의 6일 발언은 한국인들에게는 '과거의 사과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의미로 들리지만 일본 우파들에게는 '스가 내각의 결정도 포함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윗글은 일본 정부가 윤 대통령 방일 직전에 이런 메시지를 명확히 시사했다고 말한다.

"윤 대통령 방일 직전인 3월 9일 중의원 안전보장위원회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외상이 '(전시동원은)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상의 강제노동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을 강제노동으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명언했다."

강제징용이 아니라 그냥 징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윤 대통령 방문 직전에 명확히 표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그런 것을 윤 대통령도 알고 있었으면서, 굳이 '일본이 과거의 사죄를 재확인했다'고 한국 국내를 향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싱크탱크의 글에도 나타나듯이, 기시다 총리가 '스가 내각의 결정을 포함한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명시했는데도 윤 대통령이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고 보는 시각이 일본 내에 존재한다.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일본이 아닌 한국을 겨냥한 국내용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일본에 존재한다는 점은 조현동 차관의 항의를 받은 구마가이 공사의 뻣뻣했던 태도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강제징용이 아니라 징용으로 보겠다는 메시지를 한국에 이미 전달했고 28일 발표된 교과서 검정 결과도 그런 메시지에 부합하는 상태에서 한국 정부가 자신을 불러 항의를 했으니 그런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의 편이 아니라는 인식이 일본 내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국 외교부의 항의가 일본 당국자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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