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뽑자 기적이 시작됐다…외신도 놀란 韓 '생명의 땅'
전봇대 뽑아 만든 첫 국가정원, 두 번째 박람회 연다
1. 정원박람회가 뭐야?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전남 순천만에서는 오는 4월 1일 국제정원박람회가 개막됩니다. 꽃과 나무, 개울이 어우러진 세계의 정원(庭園)을 한곳에 모은 이벤트입니다. 폐막일인 10월 31일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정원 속에서 자연과 생태의 매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순천만정원박람회는 올해 정부가 공인한 유일한 국제 행사이기도 합니다.
정원박람회는 1862년 영국 켄싱턴에서 열린 ‘그레이트 스프링 쇼(Great Spring Show)’가 효시입니다.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던 정원문화는 프랑스와 독일 등을 거쳐 미국과 아시아로 퍼졌습니다.
2. 산에 가는 것과 뭐가 달라?
정원(Garden)은 자연·생태 공간에 인공을 접목해놓은 예술작품입니다. 식물을 테마로 이상적인 자연물과 인공물·예술품이 배치된다는 점에서 산이나 숲과는 다릅니다. 단순한 휴식을 넘어 전시와 창작·재배가 이뤄진다는 점에선 도시공원(Park)과도 구별됩니다.
3. 왜 순천에 있는 정원인데?
순천에 가면 도시 전체가 커다란 정원으로 변한 모습을 국내 최초로 볼 수 있습니다. 생태의 보고(寶庫)인 순천만습지를 모태로 정원박람회장을 시내까지 확장한 컨셉입니다. 10년 전 박람회 때 “꽃과 나무뿐이어서 단조롭다”고 느꼈던 탐방객까지 놀랍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순천만을 보호하려 만든 거대 인공정원(박람회장) 안에 전 세계 44개의 정원을 모아놓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입니다.
4. 여수엑스포처럼 재미는 없지 않나?
제1회 국제정원박람회 때 순천을 다녀간 관광객은 440만명이 넘습니다. 흔히들 마당이나 뒤뜰처럼 여겼던 정원의 인식을 바꾼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은 배경입니다. 탐방객들은 순천만습지와 박람회장을 걸으며 정원의 가치와 흥미를 체험하고 갔습니다. 폐막 후 박람회장이 제1호 국가정원이 된 것도 정원의 달라진 위상을 반영한 사건이라고 할 것입니다
세계인의 눈 쏠린 순천만
1. 순천정원박람회의 특징은?
원래 순천만정원박람회는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을 보존하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순천만 보호를 위해 도심 외곽 111만2000㎡를 꽃과 나무로 차단한 게 박람회장입니다.
순천만은 축구장 100개 크기인 인공정원(박람회장)에서 5㎞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22.4㎢의 갯벌과 5.6㎢의 갈대 군락지에선 조류 252종과 동식물 1600여종이 살아갑니다. 두루미 1만여 마리의 군무와 짱뚱어·게 등이 공존해 생명의 땅이라고 불립니다.
2. 정원박람회가 탄생한 배경은?
순천만에서 국내 첫 정원박람회와 국가정원이 탄생한 배경은 2009년으로 올라갑니다. 당시 노관규(62) 순천시장이 주변 농경지에 있던 전봇대 282개를 뽑아낸 게 시작입니다. 순천만 보존과 흑두루미 보호를 위해 300억원을 들여 생태형 탐방로를 설치하고 주차장을 생태공원으로 바꾼 것도 이때입니다. 이후 순천만의 변신은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외신들까지 주요 뉴스로 다루는 테마가 됐습니다.
3. 전봇대를 뽑은 후 변화는?
매년 1만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찾는 최대 서식지가 된 게 가장 큰 변화입니다. 순천만 흑두루미는 1999년 80마리의 월동이 확인됐으며, 전봇대 제거 후인 2014년에는 1005마리까지 늘어났습니다.
2020년 3132마리로 불어난 흑두루미는 지난해 9851마리에 달할 정도로 개체 수가 급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흑두루미 1만8000여 마리 중 60%이상이 해마다 순천만을 찾는 것으로 봅니다.
4. 첫 국가정원도 정원박람회 효과?
10년 전 박람회가 치러진 국내 최대 인공정원은 2015년 9월 국내 제1호 국가정원이 됐습니다. 국가가 관리하는 자연유산에 정원이 최초로 포함된 겁니다. 정부는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와 정원을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 성과를 인정해 첫 국가정원을 지정했습니다.
국가정원은 국립공원처럼 국가가 공식적으로 관리하는 정원을 말합니다. 꽃과 나무가 가득한 생태공간을 가꾸고 보존하는 비용을 국가가 대는 형식입니다. 국가가 공인한 첫 정원이라는 점에서 자연·생태체험 학습장으로의 가치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5. 산업박람회와 차이점은?
정원박람회는 산업박람회와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커지는 친환경 이벤트입니다. 박람회 개최 후 시설물을 철거하거나 사후 활용방안에 놓고 고심할 필요성도 없습니다. 순천의 경우 첫 정원박람회 후 10년이 흐르는 동안 박람회장 내 수목이 울창해지며 한층 성숙한 모습을 갖췄습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409만명이 순천만국가정원을 찾은 것도 자연과 힐링에 대한 관심을 보여줍니다.
“무료”-순천 ‘도시 전체가 정원’
1. 정원박람회장은 어떤 모습이야?
올해 정원박람회는 크게 3개 권역에서 치러집니다. ①자연·생태 탐방지인 순천만습지 ②2013년 정원박람회가 열린 순천만국가정원(박람회장) ③순천 도심권(도심정원) 등 입니다.
조직위 측은 “1회 박람회를 단순히 업그레이드한 게 아닌, 전혀 다른 박람회”라고 설명합니다. 10년 전보다 정원의 완성도나 콘텐트가 풍성해진 데다 도심까지 정원을 확장한 게 특징입니다. 박람회장은 2013년 111㏊ 크기에서 193㏊로 73%(82㏊)가량 몸집이 커졌습니다.
2. 도심에서 개막식을 연다고?
물 위의 정원-올해 순천만정원박람회는 ‘정원에 삽니다’라는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 개막식을 도심정원에서 개최합니다. 도심 속 박람회장인 ‘오천 그린광장’에 개막식 주무대인 ‘물 위의 정원’을 띄운 컨셉입니다. 순천시내를 가로지르는 동천(東川)에 조성한 수상정원은 도시경관·야간경관과 어우러진 볼거리로 채워집니다.
박람회 기간 관람객들은 물 위의 정원을 중심으로 한 도심 속 녹지공간에서 야간경관과 바닥분수 등을 무료로 만끽할 수 있습니다. 플로팅 공법을 이용한 2000㎡ 규모의 수상정원은 2030부산세계박람회 등에서도 도입을 검토 중인 콘텐트입니다.
3. 차가 달리던 도로에 왠 잔디밭?
그린 아일랜드-박람회 주무대인 ‘물 위의 정원’을 잇는 길을 걷다보면 가슴이 시원하게 뚫립니다. 차가 달리던 아스팔트 도로 1㎞ 구간에 잔디 길을 조성해놓았습니다. 도심 쪽으로 확장된 외부 박람회장에서 국가정원으로 향하는 길에 폭 30~60m의 거대 녹지공간을 만든 겁니다. 차량보다는 자연과 사람을 먼저 생각한 정원박람회의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4. 홍수를 막기 위한 잔디광장?
오천 그린광장-‘그린 아일랜드’와 인접한 공간은 도심 속 거대정원의 미래상을 보여줍니다. 대규모 홍수 때 물을 가둬두기 위한 저류지(貯留池)를 도시정원으로 바꿨답니다. 아파트 바로 앞까지 조성된 정원에는 국내 도시의 저류지 모델을 보여주기 위한 속내도 담겨 있습니다. 시민 휴식공간인 녹지광장은 조성 당시 “전국 사철잔디를 다 가져온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의 규모입니다.
“유료”-세계 정원의 진수 박람회장
1. 꼭 봐야할 핵심 콘텐트는?
10년 만에 열리는 정원박람회는 콘텐트 면에서도 한층 풍성해졌습니다. 드넓은 정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가든 스테이’와 미래정원의 모습을 담은 ‘시크릿가든’ 등이 대표적입니다. KTX 순천역에서 박람회장까지 2.5㎞를 배로 이동하게 된 것도 업그레이드된 콘텐트입니다.
2. 박람회장에서 잠을 잔다고?
가든 스테이-정원박람회장 안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세계 최초의 프로그램입니다. 삼나무로 만든 캐빈하우스 35개 동에서 낭만과 힐링을 만끽하는 프로그램에는 일찌감치 예약이 꽉 찬 상태입니다. 순천의 로컬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 서비스는 또 하나의 킬러 콘텐트 입니다. 순천은 맛으로 유명한 호남에서도 ‘동순천 서강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이 빼어납니다.
3. 배를 타고 박람회장에 갈 수 있어?
정원 드림호-정원박람회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콘텐트가 뱃길입니다. 순천시내를 가로지르는 동천을 따라 박람회장 상징인 순천만 호수정원으로 입장하는 항로입니다. KTX 순천역에서 도보로 5분거리인동천테라스에서 배를 타면 번거롭지 않게 박람회장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동천은 고려시대12조창(漕倉) 중 하나였던 해룡창(海龍倉)으로 향하던 뱃길이기도 합니다. 전남 동남부 세곡을 모아 개경으로 보내던 순천의 역사성을 담은 콘텐트입니다. 동천변의 경관·야경을 볼 수 있는 뱃길에는 12인승 4대와 20인승 1대가 하루 100회 운항됩니다.
4. 숨겨진 미래 정원의 매력은?
시크릿 가든-태양광 채광 기술을 적용해 미래 정원을 구현한 전시관입니다. 연면적 2100㎥의 건축물 안에 빙하정원과햇빛정원, 식물극장 등을 배치했답니다. 시크릿 가든과 연결된 국가정원 식물원에선 원시정원과 열대과수원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순천의 산수(山水)를 입체적인 식물전시 기법을 통해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어싱길로 진화한 생태박람회
1. 어싱길이 뭐야?
올해 순천만이 준비한 대표적인 생태 프로젝트는 어싱(earthing)길이 꼽힙니다. 순천만 연안과 내륙의 람사르습지, 도심정원 15㎞ 구간을 잇는 웰니스 프로그램입니다. 어싱은 맨발 걷기로 땅과의 접지를 꾀하는 자연치유법입니다.
2. 어싱길의 효과는?
어싱은 신체 면역력 향상과 혈액순환 개선 등의 효과로 세계적인 붐을 일으킨 치유법입니다. 땅과 신체의 접촉을 통해 체내에 쌓인 정전기를 배출하고, 음이온성 자유전자를 흡수해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원리입니다.
탐방객들은 맨발로 걷기만 해도 갯벌과 갈대숲, 바람이 주는 힐링 효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지구와 인간의 몸을 연결함으로써 지구의 치유에너지를 받아들이는 효과를 꾀합니다.
3. 어디를 걸으면 돼?
어싱길의 백미는 순천만습지 내 3개 코스(4.5㎞)입니다. 갯벌과 농경지의 경계인 뚝방길 위에 잔디나 고운 마사토 등이 번갈아 있는 갯벌 로드를 걸을 수 있습니다. 1코스는 2008년 국내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가입한 것을 기념해 만든 ‘벚꽃이 아름다운 람사르길’입니다. 2코스는 대대포구에서 생태체험장으로 이어지는 ‘세계유산길’ 3코스는 별량 장산마을까지 이어지는 ‘갯골길’입니다.
4. 어싱길에 숨은 뜻은?
어싱길은 단순한 치유의 공간을 넘어 항구적인 생태보존을 꾀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현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인 ‘국가해양정원’의 중심지 역할입니다. 국내 첫 국가정원에 이은 ‘제1호 국가해양정원’을 위한 킬러 콘텐트가 어싱길인 셈입니다. 순천시는 2018년 수립된 ‘여자만 국립갯벌습지정원 조성 마스터플랜’에 따라 여수-순천-고흥-보성 앞바다의 생태를 잇는 사업도 추진 중입니다.
국내·외에 확산된 정원문화
1. ‘생태수도 평가’ 정원의 위력
정원박람회가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사업 초반엔 “정원박람회를 하면 순천이 망한다”는 반대를 딛고 성공리에 박람회를 치러냈습니다. 10년 전 박람회 당시 전국에서 생태체험학습차 다녀간 학생만 100만명에 달합니다.
정원박람회의 가장 큰 효과는 첫 국가정원 지정을 통해 순천만습지를 항구히 보존할 방법을 마련한 점입니다. 사적인 공간이라 여겨졌던 정원을 시민 모두의 힐링공간이라는 인식전환을 끌어낸 점도 성과로 꼽힙니다.
2. 두 번째 국가정원, 울산 태화강
제1회 국제정원박람회 후 정원의 가치와 중요성은 전국으로 확대됩니다. 산림청이 2019년 7월 울산 태화강 지방정원을 제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한 게 대표적입니다. 이후 전국 30곳이 넘는 지자체에서 지역경제 유발 효과와 생태환경 개선 효과를 겨냥해 국가정원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호 국가정원을 보유한 울산시가 추진 중인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 유치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울산시는 올해 순천만정원박람회를 계기로 국제정원박람회 유치 인증협회인 ‘국제원예생산자협회(AIPH)와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려면 국제박람회기구(BIE)와 AIPH로부터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서울을 정원도시로” 정원의 확산
“용산공원 반환부지를 각국의 정원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녹지공간으로 조성하고 싶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10월 22일 프랑스 방문 당시 밝힌 포부입니다. 그는 세계 3대 정원축제인 ‘쇼몽 국제 가든 페스티벌’을 찾아 “서울을 정원과 같은 도시로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오 시장은 지난해 9월 13일 노관규 순천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원문화 확산이라는 두 도시의 공통 목표를 위해 상호 협력키로 했습니다. 오 시장이 프랑스에서 “서울정원박람회를 세계적인 박람회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정원의 도시’ 조성과 궤를 같이합니다.
4. 화훼·뷰티·건강…6차산업의 미래
정원박람회는 조경과 화훼, 미용, 한방, 웰빙, 휴식 등 탈산업시대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자연과 생태, 기후변화 외에도 선진국형 6차산업과의 연계성도 큰 친환경 미래 산업입니다.
현재 순천박람회장 맞은편에는 정원의 산업화 가능성을 담은 대규모 경관정원(景觀庭園)이 있습니다. 355㏊ 면적에 논아트와 화려한 초화류 등을 심어 경관농업의 진수를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국내 최대 경관농업 현장이기도 한 순천만의 100년 전 모습을 형상화한 콘텐트입니다.
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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