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69시간제 반대 MZ노조위원장 "정부에 목소리 뺏길 수 없었다"

김성욱 2023. 3. 29.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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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준환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 의장 "양대노총과 공통점 더 많다"

[김성욱, 유성호 기자]

 유준환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 의장이 27일 오후 서울 강서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근로시간 개편에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최근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이 청년 세대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정부는 주당 노동시간이 69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는 이번 개편안을 두고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쉴 수 있다'며 MZ세대가 선호한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정작 청년층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책을 밀어붙일 명분을 잃었다.

특히 신생 'MZ노조'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새로고침협의회)의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새로고침협의회는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부산관광공사 노조·서울교통공사 올바른 노조·코레일네트웍스 노조·한국가스공사 노조·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노조·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LS일렉트릭 사무노조 등 대기업·공기업 사무직 중심 8곳 노조에 속해 있는 6000여 명의 조합원이 모여 지난 2월 21일 설립한 기구다. 출범 한 달 사이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광주 광산구시설관리공단 통합노조 등 2곳이 추가로 합류해 조합원이 7000여 명대로 늘었다.

그간 윤석열 정부와 보수 진영은 기존 양대노총에 속하지 않은 채 '탈정치'를 선언한 새로고침협의회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치켜세웠다. 하지만 새로고침협의회마저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 공식 반대 입장을 내면서(9일) 정부와 보수 진영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수세에 몰린 노동부가 부랴부랴 청년 단체들을 만나고 있지만, 근로시간 개편 반대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27일 낮 12시 정각, 점심시간에 맞춰 유준환(32) 새로고침협의회 의장을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전자 주변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18년부터 LG전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 2021년 3월 설립된 LG전자 사무직노조의 위원장이기도 하다. 그는 노동조합 전임자가 아니어서 2년째 현업과 노동조합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보통 퇴근시간 이후나 주말에 노조 일을 했는데, 최근 새로고침협의회 의장까지 맡으면서 더 바빠졌다. 지난주엔 이틀간 개인 연차까지 써가며 근로시간 개편안 관련 정부·국회 간담회 일정에 참석했다.

유 의장은 이날도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1시까지 사무실로 돌아가야 한다며 샌드위치로 끼니를 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유 의장은 "정부와 (특정)진영이 원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들의 진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새로고침협의회를 시작한 것"이라며 "탈정치 선언은 노동과 관련 없이 특정 당이나 특정 인물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의미이지, 노동 안건에 대해서까지 정치적 입장을 갖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새로고침 내 노조위원장 전원 69시간제 '반대'... 노동부 사전 의견수렴 안 해"
 
▲ 유준환 새로고침 의장 "양대노총과 공통점 더 많다" ⓒ 유성호

 - 지난 6일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고, 사흘만인 9일 새로고침협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문을 냈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 반대한 이유는.

"가장 큰 건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 취지가 개편안 내용과 안 맞는다는 점이었다. 정부는 개편 취지를 설명하면서 주52시간제로 인해 '공짜 야근'이 생기고, 노동자들이 장시간 근로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못 받는다고 설명했는데, 해법은 엉뚱하게도 근로시간 산정기간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현행 주52시간제를 '주 평균 52시간제'로 바꾼다고 해서 공짜 야근이 없어지나. 주52시간제도 제대로 안 지키던 기업들이 보다 완화된 주 평균 52시간제는 잘 지키겠냐는 거다.

또 정부가 내세운 취지는 '일할 때 일하고 쉴 땐 쉰다'는 것이었는데, 정작 개편안을 보면 노동시간 선택에 대한 내용만 있지 쉬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는 찾기 힘들다. 있는 연차도 다 못 쓰는 직장인들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주52시간제라고 해도 기본은 주40시간 근로이고 주 최대 근로시간이 52시간인 건데, 이걸 마치 주52시간 근로를 디폴트(기본값)인 것처럼 전제하는 정부 측 설명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봤다."

- 공식 입장문이 나오기까지 내부 논의는 어떻게 이뤄졌나.

"새로고침협의회에 속한 8명 노조위원장(현재는 10개 노조가 참여)이 만장일치로 입장 표명에 동의했다. 새로고침협의회는 대의원 등 별도의 대의기구가 있는 게 아니고 소속 노조위원장들이 모여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데, 이번과 같이 입장문을 낼 때는 특별히 다른 안건들과는 달리 100% 동의를 전제로 하기로 했다. 단 한 명이라도 의견이 다를 경우 그 사람에게 입장을 강요하는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이번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선 모두 반대 입장이었고 이견이 없었다."
 
▲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의견 청취한 이정식 노동부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와의 간담회에 참석해 노동시장과 노사관계가 나아갈 방향과 과제에 대해 의견을 청취했다.
ⓒ 유성호
 
- 지난 15일과 22일, 근로시간 개편안과 관련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과 간담회를 했다. 어떤 얘기를 했나.

"반대 입장을 똑같이 전달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연간 근로시간이 세계 5위이고, 중남미 국가들을 빼면 1위다. 전체 노동시간을 줄여가는 방향이 맞지, 오히려 더 늘어나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 장관 측에선 뭐라고 답변했나.

"특별한 답은 없었다. 의견을 잘 듣고 고려하겠다고만 했다."

- 근로시간 개편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최근 노동부가 뒤늦게 청년 단체들을 만나는 모양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의견수렴 절차는 발표 이전에 이뤄졌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에서 개편안 발표 전에 새로고침협의회에 비슷한 간담회 자리를 제안한 적이 있었나.

"없었다. 그때는 새로고침협의회가 출범한 지 2주도 안 된 시점이긴 했다. 하지만 청년유니온 등 기존에 있던 청년 단체들과도 소통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정부의 형체 없는 'MZ노조'에 우리 목소리 뺏길 수 없었다"
 
 유준환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의장이 22일 오후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와의 간담회 참석해 이 장관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 지난달 21일 새로고침협의회가 출범하면서 "기존 노조와 같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노조 본질에 맞는 목소리를 내겠다"는 '탈정치' 선언을 해 주목 받았다. 하지만 지금 새로고침협의회가 책임 있는 정부·여당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근로시간 개편안 반대 입장을 피력하는 것 역시 정치적 활동이다. 근본적으로 노동 문제를 정치와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거 아닌가. 

"맞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새로고침협의회에서 말하는 '탈정치'가 꼭 모든 정치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노동조합은 엄연히 노조법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설립 시작부터 여러 가지 의미로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또 노동 안건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도 정치적이다. 거기에 대해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말하는 탈정치는, 노동 안건과 관련 없는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거나, 특정 인물·단체·정당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고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 많은 언론과 정부 기관이 새로고침협의회를 'MZ노조'라고 호명하고 있다. 새로고침협의회가 MZ세대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데 부담은 없나. 

"우리가 전체 MZ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없을 뿐더러, 애초에 우리가 'MZ노조'라는 단어를 표방한 적도 없다. 연령대에 따라 가입을 받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제가 언론 인터뷰 할 때마다 'MZ노조'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달라고 한 적도 있는데, 결국은 다 그렇게 나가더라.

물론 기존 노조들보다 젊은 층이 많긴 하지만, 새로고침협의회 소속 노조위원장님들 중에서도 MZ세대가 아닌 분들이 계시다.

정확히 통계를 내진 않았지만 전체 조합원 중에도 MZ가 아닌 분들이 상당수다. 저희 LG전자 사무직 노조만 하더라도 조합원 2200명 중 2030세대가 절반이고 나머지는 4050세대다. 저희 노조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분들 중에도 MZ세대가 아니라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걱정 마시라고 안내하고 있다."
 
 유준환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의장.
ⓒ 유성호
- 개별 노조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고침협의회라는 노조 연합체를 만든 이유는 뭔가.

"지난해 9월이었다. 이정식 장관과 5개 정도 되는 젊은 노조가 간담회를 한 적이 있었다. 자유 주제로 여러 얘기를 했다. 포괄임금제에 대한 문제라든지,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에 대한 문제 등 여러 가지 의견을 각 노조에서 나름대로 정리해 전달했다.

하지만 정작 이후 노동부에서 나간 보도자료나 기사들을 찾아보니, 그런 내용들은 싹 다 빠졌더라. 그냥 '만나서 얘기했다'가 전부였고, 심지어 보도자료 끝에는 전혀 다른 통계를 끌고 와서 'MZ 직장인들은 자유로운 근무와 성과급을 좋아한다'는 식의 주장을 폈다. 마치 간담회 자리에서 그런 얘기들이 오간 것처럼 말이다.

그때 저를 포함한 많은 위원장들이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렇게 잘못하다가는 'MZ노조'라는 이름으로 나가는 내용들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마치 형체도 없는 'MZ노조'에 우리의 목소리를 빼앗기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우리가 직접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들이 커졌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 지난 24일, 22억 원에 상당하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새로고침협의회가 조금 더 자주적인 목소리를 내려면 처음부터 정부 보조금을 받기보다는 조금 더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조직이 되고 난 뒤에 받는 게 낫지 않겠냐고 판단했다. 설립한 지 이제 한 달밖에 안 됐고, 어떤 사업에 구체적으로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잘 모르는 상태이기도 하다."

"양대노총, 밖이 아니라 안에 들어가 목소리 냈으면... 공통점 더 많아"

- 양대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새로고침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조합들마다 다 상황이 다르다. LG전자의 경우 2021년 설립 당시 3만 7000명 정도 되는 직원 중에 사무직이 2만 7000명, 기능직(생산직)이 1만 명이었는데 사무직 중에는 노조 조합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양대노총(민주노총·한국노총) 노조에서 사무직 노동자는 조합원으로 받지 않았다.사무직 노동자들도 직장 내 괴롭힘 등 각종 부당한 일을 겪고 있기 때문에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절차를 알아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노조를 새로 만들게 됐다. 단기간에 조합원이 늘어난 건 그만큼 목말라 있었다는 얘기다.

사실 양대노총에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이번 근로시간 개편안 논란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정부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3월 6일)하기 전 2월 24일 유튜브 생중계로 대국민 토론회를 열었다.

그때 패널이 10명은 됐을 텐데, 그중 노동자 측이 저 한 명밖에 없었다. 제 차례가 오기 전에 앞선 7~8명 패널들이 하나같이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을 옹호하고 찬성하는 발언들을 하시는데, 그때 정말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날 만약 저라도 그 자리에 참석해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전원 찬성 분위기로 토론회가 끝났을 것이다. '어떤 자리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면 빠지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만약 그 자리에 저희보다 훨씬 더 조직이 크고, 전문성과 경험도 많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 있었으면 어땠을까. 의지만 있었다면 분명 참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양대노총에서도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많은 반대 의견을 내주셨지만, 논의 자리 바깥에서만이 아니라 안에서도 참석해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실질적으로 정부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로 참석을 거부할 수도 있고, 토론회나 간담회에 들어가봤자 정부에 힘만 실어주는 꼴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아무 목소리도 없이 '찬성 100%'가 되고, 근로시간 개편안이 확정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다만 새로고침협의회를 양대노총에 대한 '반발'로 생긴 조직이라고 받아들이진 말아주셨으면 한다. 사실이 아니다. 방향성에서 조금 다를 수야 있겠지만, 그건 작은 차이일 뿐이다. 노동자를 위한 단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훨씬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같이 추진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 새로고침협의회가 대기업·공기업 사무직 중심의 상층 노동자들로만 구성돼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잘 알고 있다.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더 다양하고 많은 분들과 만나 목소리를 듣고,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조직 확장이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새로고침협의회의 목표는 아니지만, 영세사업장이라든지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도 문은 열려있다.

뿐만 아니라 예비노동자, 취업준비생, 대학생을 대상으로 노동조합이란 무엇인지 설명하는 기회도 만들려 한다. 기본적인 노동권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들을 줄여가야 한다. 취업이나 이직 때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은 연봉이나 근로계약 조건도 제대로 모르는 채 일단 회사에 들어가고 난 뒤에야 모든 걸 알게 된다. 기업 인사과들끼리는 서로 잘 알고 긴밀하게 정보도 공유하는데, 노동조합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취업과 이직 정보를 좀 더 투명하게 만들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새로고침협의회가 나서려고 계획하고 있다.

노동에 대해 '1'도 모르던 공대생이 어쩌다 보니 노동조합 일을 하고 있는데, 2년 동안 느낀 건 결국 노동조합은 노동자에게 이득이라는 것이다. 개인 시간 없이 노조 일을 보면서 힘들 때도 많았지만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노조가 생긴 뒤 회사가 달라졌다, 투명해졌다,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개선됐다, 소통이 더 잦아졌다'는 반응들을 들으면 확실히 보람을 느낀다. 노동조합이 더 쉬워지고,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새로고침협의회도 힘을 보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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