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고통 속으로 들어오신 하나님

2023. 3. 2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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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욥기는 신비로운 책이다.

무엇보다 욥이라는 인물이 신비하다.

그는 욥의 절규 속에 담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심히 거슬렸다.

그것은 욥이 믿었고 또한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인간들의 절규와 고통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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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욥기는 신비로운 책이다. 무엇보다 욥이라는 인물이 신비하다. 그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 살았던 인물로 소개된다. 그래서 그를 이방인으로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런데도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하나님도 이 세상에 그와 같은 인물이 없다고 인정하신다.

역설적이게도 욥은 그렇게 위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인생의 풍파 속에 던져져야 했다. 그의 많던 소유가 하루아침에 날아갔고, 생때같은 자식들과 생이별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몸마저 악성 종기로 뒤덮여 괴로움을 더했다. 그런데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 가운데에서도 그는 잠잠했다. 과연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는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그랬던 그가 오랜 침묵 끝에 드디어 말문을 연다. 욥이 처음 내뱉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쏟아내는 깊은 절규와 탄식에 다시 한번 독자들은 놀란다. 그의 말은 정제되지 않았고 감정은 그대로 쏟아져 나온다.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과 자신이 잉태됐던 밤을 저주한다. 그게 아니라면 태어날 때 죽었어야 했다고 울부짖는다. 욥은 살아갈 이유도 힘도 없다.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고 견디기 어려울 뿐이다.

욥을 위로하러 찾아온 친구들도 처음에는 욥이 당한 처참한 일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친구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같이 슬퍼했었다. 그러다 욥의 탄식이 거칠게 쏟아져 나오자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 엘리바스도 입을 연다. 그는 욥의 절규 속에 담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심히 거슬렸다.

엘리바스는 어려움에 빠지니 할 말 못 할 말을 분간하지 못한다고 욥을 비난한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길을 찾아야지 자꾸 죽고 싶다고 말하는 걸 못 봐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비수 같은 말을 내뱉는다. “생각해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욥기 대부분은 친구들과 욥 사이의 날 선 논쟁으로 채워져 있다. 친구들은 욥에게 잘못이 조금도 없었다면 이런 비극이 닥쳤을 리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인과응보라는 틀 안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욥의 회개를 촉구했다.

반면 욥은 자신의 답답함과 무고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왜 그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왔는지 그도 알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자신의 질문에 응답해 주시길 기다린다.

그러나 욥 자신도, 그리고 그의 친구들도 알 수 없었던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욥이 믿었고 또한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인간들의 절규와 고통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연약한 인간이 돼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고통과 마주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과 고통이 무엇인지 직접 경험하셔서 아신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십자가상의 절규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감당해야 했던 모든 절규를 대변했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또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타인이 겪는 고통의 무게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슬픔과 고통을 죽기까지 겪어내셨다는 것은 놀랍고도 놀라운 소식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절규를 외면하는 분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오신 분이다.

그 절규의 자리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슬픔 가득한 세상, 그러나 그만큼이나 독선과 편견이 가득한 세상에서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위로자가 되신다. 그리고 그 유일한 위로자께서 또한 우리를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는 공동체로 세상에 보내신다.

송태근 삼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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