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가 소리내다] “골조공사 현장소장, 조폭까지 낀 20개 노조와 협상해야 한다”

입력 2023. 3. 29. 00:51 수정 2023. 3. 29. 10: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두수 작가 겸 건설노동자

나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절차탁마’라는 말이 노동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지식인이 동료에게 열심히 학문 연구를 독려하고 인격 수양에 힘쓰라고 현학적으로 쓰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할석팀에서 일하다 보니 절차탁마라는 말이 자르고(切), 깎고(磋), 쪼고(琢), 가는(磨) 공정의 용어라는 것을 알았다. 이 노동 용어를 공자가 아주 격식 있는 말로 사용하면서 고상한 정신적 가치 추구의 용어가 됐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예전이 지금보다 노동을 보는 시각이 더 높았던 거 같다. 할석은 콘크리트 타설 이후 거푸집을 떼어 냈을 때 벽면이 똑바로 나오질 않고 굽거나 튀어나오면 바르게 모양을 잡아주는 공정이다.

그런데 학문적으로 절차탁마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분들이 노동 현장을 평하는 것은 마치 공과 함께 뛰지는 않고 가슴으로만 뛰며 축구 감독을 하려는 관중들의 입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 건설 현장에서 어떤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면서 진영의 논리에 따라 이념이라는 안경을 끼고 이 나라가 노동을 경시하고, 노동자를 무시하고, 노조를 불온시하는 후진적인 나라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선동일 뿐이며, 자신을 뽐내기 위한 말 잔치에 불과하다.

「 난립 노조와 거대 이권 카르텔
건설 현장에선 젊은 층 사라져

노동의 가치를 체험한 이가 아이의 갈 길을 인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이두수]

전문건설업종인 골조공사의 현장 소장은 공사가 시작되면 먼저 20여개의 노조와 협상을 해야 한다. 원도급에서 하도급을 받은 전문건설회사는 공정별 전문인력회사들과 다시 노무 계약을 맺어 공사를 진행해 나가는데, 이때 노조가 끼어들면서 자신들의 조합원들을 고용하라고 요구한다. 노조 설립 요건이 간단하여 노조가 우후죽순 많이 생겨난 것도 현장에선 골칫거리다. 현행 노조 설립은 노동자가 최소 3명만 모여서 결성하고 지역 노동 관련 부서에 신고만 하면 된다. 이러한 노조의 난립으로 현장은 노동자의 권리 투쟁보다는 노조끼리 서로 경쟁하거나 연대하는 이권 경합장이 돼버렸다.

이들은 자기들의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현장 출입구를 가로막고 노동자의 출입을 방해하거나 확성기를 틀어 놓고 업무를 방해한다. 혹은 직접 현장에 들어와 외국인 노동자를 축출하거나 원거리에서 안전 관련 위법적인 작업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신고한다. 신고를 받은 관청에서는 위법 사항에 대한 벌금을 부과하게 되다 보니, 회사에서는 매월 어느 정도 거마비를 주고 노조를 달래려고 한다. 때로는 지역 폭력 조직과 연계하여 협박과 압박을 받다 보니 이젠 누구도 이에 대해 쓴소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노동 현장을 보면서도 노조의 횡포에 손을 대려 하면 노동 탄압이라며 노조의 불법적 행위에 훈수를 두는 학자들이 있다. 지금은 진영과 이념의 논리에 학자적 양심을 팔며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잇속이나 챙기려는 교수뿐만 아니라 정당도 여기에 편승하고 시민 단체까지 합세했다. 거대 이권 카르텔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요즘 건설 현장에는 젊은 층이 보이지 않는다. 청년의 유입이 적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수입보다도 일 자체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는 내용보다는 겉 포장을 중요시한다. 현장에서 철근 작업 같은 힘든 일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다 보니 일당에 역차별이 일어나기도 한다. 현장에서는 하루 일당 30만~40만원을 준다고 해도 사람을 구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청년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는 건설 노동이 제대로 된 직업으로 소개된 적이 없다.

가끔 노동자의 망치가 판사의 망치와 그 가치가 같다는 헛소리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노동자의 표를 의식한 선동에 불과한 발언이고, 학교에서조차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몸을 쓰거나 힘든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머리만 쓰도록 훈련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학문적인 탁월함이나 높은 차원의 시민 의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의니 공정이니 하는 감성적인 언어나 노동이 신성하다는 호사스런 말 잔치가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고 경험을 중시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는 사회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더는 무슨 대책 마련 혹은 어떤 프로젝트 추진 같은 허황된 주장에 재원을 낭비해선 안 된다. 그저 모양만 노동하는 것을 속된 말로 ‘삽질한다’고 한다.

건설 현장에서 직업적 자존감이 없는 사람에겐 법이나 규칙을 따른다는 것이 불편하다. 그러나 도면대로 건축하지 않으면 튼튼한 건축물을 만들 수 없다. 매일 노동 현장에서 몸으로 일하는 인부들은 누구보다 이런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한다. 절차탁마라는 말은 절대 많이 배운 사람들의 용어가 아니다. 내가 일의 주인이 되어 일하는 노동자들의 몸의 언어다. 내 보기에 제대로 삽질하는 사람이 군자다.

◆이두수=일용직 건설 노동자이면서 국제개발협력 단체에서 활동. 6년 전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노동을 통해 몸과 마음의 절차탁마(切磋琢磨)를 즐거움으로 누리고 있다.


이두수 작가 겸 건설노동자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