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파라오’ 람세스 2세 시대로 되돌아간 듯 생생

손영옥 2023. 3. 2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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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이집트의 새 자부심… 부분 공개된 ‘그랜드이집트뮤지엄’
지난 3월 중순 고대 이집트의 고고학 유적을 총집결시킬 신축 그랜드이집트뮤지엄(GEM)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GEM은 정식 개관이 거듭 연기된 끝에 지난 2월부터 로비와 편의시설 등에 한해 부분 공개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전설적인 파라오 람세스 2세. 피라미드 건축이 사라진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인 그는 대규모 신전 건축으로 자신의 위용을 드러냈다. 대표적 유적이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부심벨에 지은 대신전이다. 거대한 람세스 2세 석상 4기가 정면을 장식한 아부심벨 신전 내부의 지성소에는 1년에 2번 춘분과 추분 무렵에 햇빛이 도달한다. 이 무렵엔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어 신전 입장료도 껑충 뛴다. 21세기 이집트인들이 '세계 최대의 고고학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이 될 거라고 자부하는 신축 그랜드이집트뮤지엄(GEM)이 '아부심벨 지성소에 도달하는 햇빛 스토리'를 건축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침내 베일을 벗은 GEM을 곽민수 이집트학연구소장이 이끄는 답사팀과 함께 이달 중순 찾았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2002년 기공식 초석을 놓은 지 21년 만이다. 하지만 아직도 정식 개관은 아니었다. GEM은 로비와 편의시설 등 건축물 일부에 한해 지난 2월 초부터 VIP에 이어 일반에도 제한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정식 개관 시 카이로의 노후한 국립이집트박물관을 120여년 만에 대체하며 이집트 관광의 새 성지로 부상할 전망이다.

삼각형… 구석구석 피라미드 이미지

람세스 2세가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부심벨에 세운 대신전.

GEM은 아일랜드 건축가그룹 헤네건 펑이 설계했다. 국제설계공모에서 1557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이 신박물관은 구석구석 4대 문명 발상지 이집트의 상징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장치들이 있다. 수도 카이로가 아니라 피라미드가 모인 카이로의 위성도시 기자에 세운 위치부터 그렇다. 그래서 ‘기자 박물관’으로도 불리는 건축물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모서리가 잘린, 이른바 모따기 삼각형 형태다. 건물 세 꼭지점이 기자지구의 세 피라미드와 일직선이 되게 설계됐다. 이들 피라미드군과는 불과 2㎞ 떨어져 있다. 외관은 얼핏 명품 가방 같이 모던한 건축물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피라미드의 삼각형이 구현됐음을 체감할 수 있다. 파사드부터 거대한 삼각형 세 개로 장식돼 있고, 내부의 벽면과 천장 장식, 계단의 형태, 바닥의 분수까지 곳곳에 삼각형이 반영돼 있다.

연면적 48만㎡의 건축물은 3개 층이 복층으로 된 6층 구조다. 복도형으로 긴 로비 좌우로 한쪽은 전시실, 한쪽은 스타벅스, 아트숍 등 편의시설이 배치돼 있다. 건물 입구뿐 아니라 맞은편도 뚫려 있어 건물 내부로 바람 길이 생길 수 있게 된 설계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박물관을 안내한 GEM 소속 학예사 누란 알파달리씨는 “건축물은 고대 신전 구조인 전면의 마당과 제단, 열주실, 지성소의 형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며 “전시실이 지성소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입구엔 오벨리스크, 내부엔 거대 인물상

GEM 로비에 세워진 람세스 2세 석상.

건물 앞마당에는 과거 타니스 지역에서 발굴된 람세스 2세의 오벨리스크가 이정표처럼 서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로비에 우뚝 세워져 가장 시선을 압도하며 관람객을 맞는 유물이 람세스 2세 석상이다. 석상은 이집트 통일을 상징하는 상 하이집트의 이중왕관을 쓰고 있고 람세스 2세의 즉위명, 출생명 등 이름이 적힌 인장이 신체 곳곳에 새겨져 있어 과시적 통치자 람세스 2세의 성격을 엿보게 한다. 3200년 전에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11m, 무게 83t의 이 석상은 고대 이집트 왕국의 수도 멤피스의 프타 대신전 유적지에서 1820년 6동강 난 채 발굴됐다. 보존 처리 후 1954년 카이로 도심의 바브 알-하디드 광장으로 이전됐다. 이 때문에 이 광장은 람세스 광장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지만, 석상이 2006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그 별칭을 잃게 됐다. 알파달리씨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곳에 도착한 첫 고고학 유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부심벨 지성소에 햇빛이 비치는 것처럼 춘분과 추분에 이 람세스 2세 석상에 햇빛이 도달하도록 건물이 설계됐다”고 덧붙였다.
GEM 로비의 또 다른 석조 유물인 클레오파트라 시절의 남녀 석상(왼쪽)과 승리의 기둥(오른쪽).


1층 로비에는 람세스 2세의 아들 메렌프타가 세운 승리의 기둥과 함께 클레오파트라가 통치하던 시절의 이집트의 항구도시 토니스 헤라클레이온에서 발굴된 남녀 석상이 세워져 있다. 남녀 석상은 고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얼굴은 그리스, 의복은 이집트 스타일이다.

아직 비공개… 투탕카멘 유물 온다

투탕카멘 황금가면. 위키피디아 캡처

앞으로 이곳에는 투탕카멘 유적에서 발굴된 모든 유물이 통째로 전시된다. 카이로의 구 이집트박물관에서는 장소가 협소해 일부만 전시됐다. 기자지구에 쿠푸왕이 세운 대피라미드 입구에서 발굴된 고대 목조 배 2척도 이곳의 대표 유물이 된다. 현재 한 척은 이전을 완료했고, 나머지 한 척은 보존 처리 중에 있다. 그밖에 룩소르, 민야, 소하그, 델타, 알렉산드리아 등 다른 도시에 있는 주요 유물도 옮겨 온다.

정식 개관 시 카이로에 있는 구 이집트박물관은 모든 박물관 기능을 이곳으로 이전하고 석재 유물 중심으로만 운영된다. 이 신박물관은 당초 2018년 개관을 목표로 했지만, 화재와 코로나 등 돌발 변수가 터지면서 번번이 연기됐다. 박물관 측은 정식 개관 시기를 밝히지 않고 있다. 곽민수 소장은 “GEM이 정식 개관하면 해외로 약탈된 이집트 고대 유물의 반환 요구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카이로·아부심벨=글·사진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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