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나 열정 같은 키워드는 한창 팔팔한 청년이 입에 담을 땐 마냥 순진하게 들리기 마련입니다. 삼라만상을 다 겪었을 것 같은 어른이 그 마음을 행동으로 증명할 때야 겸허한 자세로 귀를 기울이게 되죠. 그 희망과 에너지엔 왠지 기대고 기대하고 싶어지거든요.
에르메스가 크리스티앙 본느프와의 개인전 〈크리스티앙 본느프와 : 토끼의 질주〉 전시를 개최했습니다. 이 전시를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1948년생 프랑스의 원로 화가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거짓 없이 밝고 기운찬 희망과 열정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느프와는 작가이기 전에 미술사학자이자 미술이론가였습니다. 1974년, 마티스의 전시를 보고 난 후, 돌연 작가로서 인생의 2막을 열기로 결심하죠. 당시 미술계에서 회화는 회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요. 회화가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갔지만 정작 이에 대한 답을 찾는 이는 드물던 시기였습니다.
본느프와는 기발한 시도로 기존의 회화 전통을 무너뜨립니다. 그의 방식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단순했습니다. 캔버스 위에 탈라탄 거즈나 트레비라 직물을 덮어 새로운 레이어를 더하고, 종이를 오려 붙이고, 작은 핀을 꽂음으로써 2차원의 회화를 3차원의 조형으로 탈바꿈시킨 것이지요. 그의 작품은 평면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여러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공간 속의 작품으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미술사학자이자 미술이론가로 활동한 배경은 작품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여전히 글을 쓰곤 한다는 본느프와는 작업하는 과정에서 든 생각을 작품 속에 암호처럼 숨겨두거든요. 흘림체로 쓴 글씨는 상하좌우가 바뀌어 있는 등 한눈에 척 읽기엔 어렵지만요. 피카소나 마티스, 잭슨 폴락 같은 거장의 모티브를 찾아내는 일도 묘미입니다.
위에 언급한 특징을 하나도 모른 채 바라봐도 충분히 좋습니다. 크리스티앙 본느프와의 작품 속 색과 형태는 설명 한 줄을 보태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아름답고 조화롭게 다가올 거예요. 그러니 직접 방문해 덜 노력하고 더 느껴보길 권합니다. 전시는 5월 28일까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