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폭발' 아내, '본가 밀착' 남편... 오은영이 짚은 포인트
[이준목 기자]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경제적-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젊은 부부에게는 섣부른 결혼이 오히려 불행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3월 27일 방송된 MBC 부부상담 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서는 '시댁의 고마운 지원 vs. 숨막히는 고립, 사면시가 부부'편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는 부부간의 폭언과 폭력, 부모의 불화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신혼집과 거주지역을 둘러싼 갈등, 시댁의 경제적 원조와 간섭 사이 등 요즘 시대의 젊은 부부들이 공감할 만한 현실적인 고민들이 다루어지며 눈길을 끌었다.
결혼 2년 차 박보환-이채윤 부부는 포천에서 거주중인 24개월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갑내기 커플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소개로 처음 만나 연애를 시작하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던 두 사람은 30대에 다시 재회하여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남편의 요청으로 출연하게 된 부부는 나란히 "처음 연애했을 때의 좋았던 감정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학창 시절 역도 선수로 활동했던 아내는 성인이 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미용실을 개업할 만큼 당차고 똑부러진 성격이었다. 남편은 "나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고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프로포즈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결혼 이후 남편이 분양받은 아파트가 있는 포천에 신혼집을 차렸다.
하지만 포천에서의 생활은 생각만큼 행복하지 못했다. 포천은 신혼집과 가까운 곳에 남편의 본가와 직장까지 모여있는 곳이었다. 남편은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자동차 필터 제작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결혼하여 자신의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일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본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당시 광명에서 미용실을 갓 개업했던 아내는, 결혼하면 포천으로 이사해야 한다는 남편과 시댁의 일방적인 요구에 난색을 표했지만, 결혼 전에 아이가 생기면서 결국 상황에 쫓기듯이 포천으로 와야 했다.
아내는 하루아침에 운영하던 미용실을 포기해야 했고 자신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포천에서 시댁과 가까이 붙어지내야 하는 낯설고 불편한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여기에 부부의 포천 신혼집은 한번 외출이라도 하려면 자동차로도 왕복 5시간 가까운 이동시간이 소요되는 불편한 환경이었다.
포천에서 직업도 만날 친구도 없는 아내는 하루종일 집에서 육아를 하거나 홀로 쓸쓸하게 시간을 보내며 남편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아내는 남편이 결혼 전 자신을 포천으로 데려오기 위하여 "내가 잘할게, 외롭지 않게 해줄게"라며 온갖 달콤한 '약속'들을 남발했지만, 막상 결혼과 출산 이후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부부는 남편의 저녁 외출 문제를 계기로 갈등을 빚었다. 퇴근한 남편은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술 약속을 잡았다. 남편의 귀가만 기다리고 있었던 아내는, 사전에 말도 없이 약속을 잡은 데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다.
아내는 인터뷰에서 "넌 왜 자꾸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아내는 외로운 자신과 아이를 홀로 내버려두고 남편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것을 못마땅해하며 급기야 "이러니까 니가 싫어하는 소리, '나를 여기에 왜 데려왔냐'는 말을 자꾸 할 수밖에 없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부부의 대화는 쉽게 감정적으로 변했고 서로 고성을 질러대며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남편에게도 할말이 있었다. 남편은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아내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하여 육아와 가사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아내의 모습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는 모든 걸 내려놓고 포천에 왔으니 당연히 무조건 다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 정도면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아니라고 하니까"라며 극명한 입장차이를 드러냈다.
지켜보던 오은영은 아내가 이웃과의 대화에서 했던 "맨날 집에만 있으니까 힘들다"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편은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여러 차례 권유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오은영과 패널들은 아내의 입장에서 왕복에만 수시간이 소요되는 포천이라는 지리적 여건의 특성상, 반복적인 출퇴근이 요구되는 일을 소화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대인관계에서 고립된 외로움이 크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남편은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아내가 감정적으로 폭발할 때마다 쏟아내는 폭언과 폭력적인 행동을 털어놨다. 지인과 시댁 식구들마저 이미 모두 알고 있을 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더 큰 문제는 시댁과의 갈등이었다. 부부는 시부모님 앞에서도 부부싸움을 벌인 일화를 고백했다. 분노한 아내는 시어머니가 보고 있는 앞에서도 남편에게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진 일도 있었다고.
부부는 남편의 제안으로 아이를 시댁에 잠시 맡기고 모처럼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하지만 부부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이내 말다툼이 시작됐다. 이야기 주제가 시댁과 관련이 되면서 더욱 예민해진 부부는 한치의 양보없이 팽팽하게 맞서며 서로 감정을 소모하는 대화만 오고 갔다.
부부는 포천에서의 거취 유무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시부모님은 아내의 모습에 실망을 한 후 포천이 싫으면 나가서 살라고 한 상태였다. 대신 시댁으로부터 지원받던 자동차는 반납하고 아파트 이자 지원도 중단하겠다는 것. 남편은 여전히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아내도 미용실을 그만두고 포천에 내려온 이후로는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현실적으로 당장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밖에 나가서 설 수 있도록 (시부모님에게) 도와달라고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소리 너무 듣기 싫다. 우리 부모님을 (필요할 때 경제적 도움만 받는) 은행처럼 여기는 것 같이 느껴진다"며 시댁의 간섭을 불편해하면서 지원은 계속 받고 싶다는 아내의 이중적인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아내는 "그럼 나는 왜 당연히 여기 와 있어야 하는데? 네 아파트 때문에? 그게 왜 당연한 거냐"고 받아치며 또다시 감정싸움으로 치달았다.
남편은 부모의 지원없이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반면 아내는 자신도 맞벌이를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고생을 하더라도 포천을 떠나고 싶어한다. 아내는 포천에 있는 아파트를 처분하여 비용을 마련하자고 주장했지만, 남편은 안정된 환경을 굳이 포기하며 고생을 자처할 이유가 있는지 회의적이었다. 결국 부부의 대화는 이번에도 결론없이 평행선으로 끝났다. 남편은 인터뷰에서 "괜한 사람 끌고 와서 이렇게까지 살아아 햐나. 후회가 든다"고 고백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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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와 시댁간의 갈등은 알고보면 경제적-정서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었다. 남편은 부모님과 누나 등 가족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함께 근무하다보니 자신의 가정을 꾸렸어도 사실상 독립하지 못하고 여전히 본가와 밀착해있는 상황이었다. 부부간의 싸움이나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남편을 통하여 시댁 식구들의 귀에까지 들어가서 상황이 더 악화되기 일쑤라고. 오은영과 패널들은 남편이 중재 역할에 더 신경을 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은영은 먼저 아내의 고성과 폭력적인 행동에 선을 그었다. 아내는 자신의 감정을 "억울함"이라고 설명하며 ""내 편이 되어줘야 할 사람이 하나밖에 없는데 내 편이 되어주지 않으니 그게 힘들다"며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놨다. 하지만 오은영은 "무슨 이유가 됐든, 가정 내에서 더구나 아이가 보는 앞에서, 고성과 폭언과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지금 부부의 행동은 '가정폭력'이다"라며 부부 모두에게 따끔한 일침을 놨다.
이어 오은영은 "아이에게 잘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해가 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라고 강조하며 "무심결에 부모의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는 평생의 상처가 될 수도, 힘이 될 수도 있다"고 당부했다.
오은영은 부부에게 공통으로 포천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를 질문했다. 남편은 편한 곳, 나의 일터라고 답변한 반면, 아내는 외딴 곳,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는 대답이 나왔다. 오은영은 "바로 아내는 포천으로 오면서 일, 사람, 사랑 등 많은 것을 잃었다. 포천을 떠나자는 제안에 지금 남편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이, 바로 아내가 느끼는 그 두려움이다"라며 부부간의 역지사지를 일깨웠다.
아내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의 대화에 시댁과 남편의 관계에서 느낀 설움을 털어놨다. 포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시부모가 한 "너만 참으면 될 것 같은데, 여기 화목한 거 안 보이니?"라는 말을 듣고 더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남편에게 시댁으로 받은 상처나 불편함을 호소하면 "왜 내 가족을 나쁘게 봐? 시댁으로부터 고마운 것은 생각 안 하냐"는 반응이 돌아온다고.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위로와 공감을 원했지만, 남편과 시댁 기준으로는 자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며 "5대 1로 싸우고 있는 것 같다"고 눈물을 흘렸다.
반면 남편은 "내 가정도 있지만 본가도 챙겨야 한다. 내 부모님과 누나들이 나 때문에 피해보는 일은 없어야 된다"며 아내보다는 본가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한 모습을 드러냈다. 심리검사에서도 남편은 결혼을 통하여 독립하지 못 하고 본가와의 정서적 애착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내는 어느날 남편이 없는 집에서 홀로 육아를 했다. 아이가 엄마에게 물을 뱉고 뺨까지 때리는 충격적인 돌발행동을 저질렀다. 설움이 폭발한 아내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당황한 아이가 엄마 주변을 맴돌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내의 마음 속 또다른 두려움은 "만일 남편과 이혼하면 내 아이를 뺏기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오은영은 아내를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로 '외로움'을 지목했다. 아내는 아빠의 반대에도 운동을 포기하면서 미용의 길을 선택했고, 미용실은 그녀에게 열심히 살아온 인생의 결실이었다. 남편과의 결혼으로 미용실을 포기한 것은 그녀에게는 삶의 중요한 의미를 부정 당한 것과 같았다. "다른 미용실 어디든 일하면 되지 않냐"는 남편의 가벼운 말은 아내에게 또다른 상처가 됐다.
오은영은 부부를 위한 솔루션으로 "아내가 집에 홀로 있는 모습은 마치 잠겨있는 것 같다. 이 잠금 모드를 해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면서, 중고차라도 아내가 언제든 편하게 외출할 수 있도록 차량을 구입할 것, 아내의 전공인 미용 경력을 다시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오은영은 부부간의 대화 방식의 문제점으로 "서로의 일방적인 주장만 반복할뿐, 구체적인 의논이 없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앞으로를 위한 '계획'이 없다"고 분석했다. 덧붙여 "아내에게는 몸와 마음의 건강 균형이 깨져있다"고 지적하며 운동도 운동이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으로 마음 건강을 다스려야 한다. 아이 앞에서는 절대 분노를 표출해서는 안 된다"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오은영은 남편을 위하여 "본가와는 정서적인 분리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하며 "시댁 식구들이라도 '신경써주는 건 고마운데 내가 알아서 해볼게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부부간의 문제는 시댁에 알리지 않는 게 낫다"라고 조언했다.
솔루션을 마친 남편은 "중고차는 빠른 시일 내에 구입해보겠다. 여태까지 우리가 노력했으니 이제는 진짜 실천으로 가겠다. 우리 잘해보자"고 아내에게 약속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내도 한결 애교 가득해진 목소리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서로 잘하자"라고 화답하며 "여보가 말 한마디라도 이해해준다면 나도 자연스럽게 조금 더 노력하고 안 징징대려고 하겠다"고 약속했다. 부부는 서로간의 이해와 노력을 다짐하며 새로운 출발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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