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도 괜찮아
[이향림 기자]
▲ 연극 델타보이즈 네 명의 남자들이 도전하는 '사중창 도전기' |
ⓒ 조정박최장김박변김송현서황 프로젝트 |
지난 22일, 해가 진 대학로를 찾았다. 평일 저녁이었음에도 소극장의 좌석은 맨 앞자리까지 빼곡하게 찼다.
매형의 일터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는 일록은 작업복 차림에 항상 바닥을 보며 숙이고 다닌다. 눈을 떠서 출근 준비를 하고, 출근해서 업무를 마치고 퇴근해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반복되는 일상. 주말이 되어서야 내가 원하는 자유시간이 주어진 것 같지만 쉬었다는 것 외에는 남는 게 없는 것 같은, 숨은 붙어있지만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의구심조차 들지 않는 하루하루의 연속. 그런 일록이 유일하게 선택한 건 레게머리다.
껍데기만 남은 일상에 찾아온 변화
일록은 새로 찾아온 변화가 귀찮기만 하다. 중학교 동창인 예건이 일록이 즐거워하고 좋아했던 노래를 상기시키고, 바로 '사중창 대회' 참가를 신청해 버린 것이다. 일록은 거부하지만 공고를 보고 나타난 두 남자까지 합세하여 얼떨결에 네 명이 다 함께 대회를 준비하게 되고, 무표정이었던 일록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생선 장사를 하는 대용은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실력과 외모 때문에 사람들에게 꿈을 말하면 비웃음만 사게 될까 봐 숨기고 살았다가 뒤늦게 용기를 내었다. 그에게 연습 시간은 단순한 대회 준비를 위한 시간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 연극 델타보이즈 (왼쪽부터) 배우 정주호, 변진수, 현종우, 김단율, 서신우, 송용식. 연극은 바로 앞에서 배우들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
ⓒ 이향림 |
30대 후반~40대 나이의 남자 네 명의 캐릭터는 마치 한 명에서 분리된 것처럼 어우러졌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더욱 잘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애정을 가지고 충고를 하는 것과 무시하는 것은 다르다. 가족으로부터 애정을 가장한 무시를 당했던 일록은 함께 연습하는 동료를 보며 힘을 얻는다.
한 번쯤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대용처럼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은퇴할 나이를 넘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축구선수 김병지를 보며 대용은 그동안 자신의 꿈을 미뤄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행동에 나선다. 남이 하는 소리에 신경 쓰여 정작 내면의 소리에 귀를 닫고 살았던 대용이었다.
남이 시키는 일을 하다가 잘못되면 남 탓을 하기 쉽지만 오로지 내 결정에 따른 일은 내 책임이다. 또한 결정을 하기에 앞서 '해봐 할 수 있어!'라는 용기를 주는 의식의 응원단 옆에는 '네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라는 프로 비판러가 함께 한다. 그런데 한 번쯤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만 하고 실행을 하지 않는다면 일상의 큰 타격은 없겠지만 더 나이가 들어 뒤를 돌아봤을 때 '그때 내가 원했던 걸 한번 해볼 걸'하는 후회를 하지 않을까. 하고 후회한 적 보다 하지 않았을 때 더 많이 후회했던 것 같다.
사람과 연결된 각자의 꿈
사람은 아무리 먹고 자는 게 해결이 된다고 해도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거나 자아성취를 느끼지 못한다면 삶에 대한 애정도가 크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첫 장면에 등장한 생기 없는 일록의 모습처럼 말이다.
대회를 나간다고 해서 일록이 가수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드라마틱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록은 동료를 얻었고, 삶의 생기를 찾았다. 이번 연극은 잊고 살았던 꿈, 그리고 일상의 변화에 대한 수용,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따뜻한 연대의식을 일깨워주었다. 더 늦기 전에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나조차 내 안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땐 예건이 일록의 내면의 소리를 찾아준 것처럼 내가 나의 삶을 돌아보고 뭘 할 때 행복했고, 즐거웠는지를 찾아보자. 만약 찾았다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실행해 보자. 나의 용기는 대용처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힘을 나누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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