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공기업에 자유를 허할 때다

2023. 3. 2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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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굵직굵직한 공기업이 꽤 많다.

사회기반시설(SOC) 건설과 운영 그리고 금융 부문에 특히 대형 공기업이 많다.

민간의 자본과 역량이 제한적이었을 때 정부가 거대 공기업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공기업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이제는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이를 자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배짱과 담력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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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나라에는 굵직굵직한 공기업이 꽤 많다. 사회기반시설(SOC) 건설과 운영 그리고 금융 부문에 특히 대형 공기업이 많다. 민간의 자본과 역량이 제한적이었을 때 정부가 거대 공기업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해방된 지 75년이 넘어 민간 부문이 크게 성장하고 그 경쟁력이 공공 부문보다 훨씬 뛰어난 오늘날에도 공기업 비중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이 많은 공기업을 단기간에 민영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민영화는 차근차근 장기적으로 추진할 과제다. 당장은 공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 공기업의 경쟁력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가장 기본적으로 공기업은 스스로 가격을 정할 자유가 없다. 공기업이 정하는 가격 대부분은 공공요금이다. 전기요금, 가스요금, 열요금, 고속도로 통행료, 철도요금, 상하수도요금…. 그 밖에 공기업이 부과하는 각종 수수료는 모두 공공요금으로 분류돼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가격규제 대상이다. 동법 시행령은 공공요금의 첫 번째 산정원칙을 총괄원가 보상으로 정하고 그다음으로 공공요금의 안정성, 물가 변동, 경제상황 변화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공공요금 결정에 총괄원가 보상원칙이 제대로 지켜진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한국전력 적자가 30조원을 넘고, 가스공사 미수금이 10조원을 초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임직원이 열심히 일해도 원가에 미치지도 못하는 요금으로는 공기업 경쟁력을 제고할 수 없는 일이다.

다음으로 공기업을 옥죄는 것은 지나치게 엄중한 감시와 경영에 대한 규제다. 공기업은 일년 내내 감사와 평가를 받고 있다. 주무부처 감사, 국회 국정감사, 경영평가, 청렴도 평가, 고객만족도 평가는 물론 여러 이유와 절차에 따라 수시로 진행되는 감사원 감사가 공기업을 괴롭힌다. 또한 공기업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라 경영에 대해 규제받는다. 제1조에서 공운법의 목적은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했고, 제3조에서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조항에서 경영 공시, 고객만족도 조사, 기능 조정, 공공기관 혁신, 정관, 이사회, 임원의 선정·임면·임기·직무·보수기준·결격사유·책임·평가·겸직제한, 예산 및 회계에 대한 각종 규정, 경영목표 수립과 보고, 경영실적 평가, 경영지침 등을 통해 공기업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규제하고 평가함으로써 자율적 경영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있다. 이밖에 주무부처 담당 공무원의 비공식적 구두 지시, 공문이나 공식적 절차 없이 진행되는 각종 정보 및 업무 지원 요구는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요금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도, 자율적으로 회사를 경영할 자유도 상실한 채 공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의 창의성과 자율성은 퇴화돼 가고 있다.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에서 흑인 주인공 레드는 40년을 형무소에서 복역한 후 가석방돼 한 마을의 슈퍼마켓에서 일한다. 그는 업무 중 슈퍼마켓 매니저에게 손을 들어 가까이 간 후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매니저는 짜증을 내며 제발 화장실은 자기에게 묻지 말고 그냥 다녀오라고 한다. 레드는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자신은 허락받지 않으면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고 중얼거린다. 우리 공기업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이제는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이를 자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배짱과 담력을 잃어가고 있다. 야성을 잃어버린 기업처럼 보기 안쓰러운 조직은 없다. 국민과 소비자를 위해서라도 공기업에 자유를 허(許)할 때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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