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밖 성매매 여성들, 그들도 돌봐야 할 사람… 사랑의 눈으로 봤으면”
27년간 집창촌 한곳에 약국 운영
성매매 여성 돌봐온 이미선 약사
‘똑똑…’
홍: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약사님이 오셔서 특별히 약밥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이: 약사에게 약밥이라니 재밌네요. 약밥 만들기 어려운 음식인데 걱정이 많이 됩니다.(웃음)
홍: 가장 먼저 약사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집안이 워낙 가난했어요. 어머니가 ‘너는 큰딸이니까 약대를 가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해서 1980년 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에 입학했습니다.
홍: 약사가 되신 뒤 성매매 집창촌에서 약국을 경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이: 남편과 이혼 후 어린 아들과 빚더미를 떠안고 부모님이 계신 하월곡동에서 1996년 약국을 시작했어요. 오롯이 생계를 위한 삶이었죠. 그러다 2005년 약국 바로 앞 건물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그날 제가 기억하는 4명의 아이가 다 죽었어요. 그때 ‘이 일은 내가 아니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며 외연을 넓혀갔습니다.
홍: 성매매 여성들을 어떻게 돌보고 계시는지요.
이: 빚 갚느라 돈이 없어서 영양제를 사지 못하는 아이들에겐 선물을 주기도 하고 너무 지쳐있는 친구들한테는 책을 건네요. 2011년부터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국가의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워낙 험한 인생을 살아온 친구들이라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밑바닥 인생’이라 여기는 마음의 경계를 통과하는 것이 가장 힘듭니다.
홍: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만남이 있었나요.
이: 외출 갔다 오면 늘 약국에 들러 단팥 빵을 건네던 아이가 있었어요. 어느 날은 빵을 왕창 주며 ‘시집간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아직 안 돌아왔어요. 시집갔다가 알코올, 약물에 빠져 폐인 돼 돌아오는 애들이 있어요. 그럴 때면 ‘하나님은 대체 저 아이들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생각하며 기도하곤 합니다.
홍: 영화 속 성매매 지역에는 무서운 조직폭력배나 포주가 등장하는데 현실은 어떤가요.
이: 당연히 있죠. 근데 내 덩치를 봐요. 감히 누가 나를 건들겠어요.(웃음) 가끔 술 먹은 취객이 ‘비아그라 달라’며 시비를 걸어올 때 경찰에 ‘건강한 약국입니다’라고 말하면 더 묻지도 않고 바로 출동해요. 아마 국내에서 경찰 신고 가장 많이 한 약국으로 기록돼 있을 겁니다.
홍: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 성매매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을 잘 사용하면 축복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벌이죠. 쾌락을 조율할 수 있는 권한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을 사고파는 것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풀지 못한 과제라 제가 논의할 만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함이나 불편함 등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홍: 우리 사회가 성매매 여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 성매매를 하고 싶어서 하는 친구들은 없을 겁니다. 배운 게 없고 고아 출신에 소녀 가장들이 대부분이죠. 그렇다고 이런 일을 선택한 것을 잘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법의 테두리에 들지 못하는 이 아이들도 교회가, 지도자들이 돌봐야 할 백성입니다.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홍: 미아리 텍사스촌이 재개발돼 곧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성북구를 떠나지는 않을 계획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곳에서도 약국의 기능과 더불어 지금보다 더 지역 사회를 섬길 수 있는 마을 약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홍: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약밥이 완성됐습니다. 한번 드셔보시지요.
이: 비주얼은 합격. 약밥의 점도도 이 정도면 양호하고요. 근데 참기름이 약밥의 핵심인데 조금 부족한 거 같아요.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맛있네요.(웃음)
홍: 참 좋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세대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 부잣집에서 태어난 금수저도 있고 흙수저 아니면 이마저도 물고 태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수저조차 없이 태어났어도 자신을 먼저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함부로 시간과 몸을 버리는 일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최고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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