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뜨락에서] 무명천 흰 수건

2023. 3. 2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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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 묻은 옷을 입고 마당을 뛰어놀던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았다.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아이. 봄볕 옷을 차려입고 홍조 띤 얼굴로 쉴 새 없이 재잘거린다. 아이의 왼쪽 가슴엔 하얀 손수건이 봄바람을 타고 살랑인다.

무명천 흰 수건도 빨랫줄에서 한들거린다. 가난한 농부의 땀을 먹고 살아가는 무명천 흰 수건은 빨고 빨아서 하늘빛 색깔마저 감돈다. 발걸음이 마당을 지나 대문을 향한다. 양손 가득 부모의 손에 쥐어진 아이는 마냥 행복하다. 그 바람에 3월의 하늘이 바빠졌다. 아버지의 손 인사를 남겨두고 마당을 가든그리하게 싸더니 엄마와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가 학교 운동장에서 엄마를 본다. 큰 키에 뽀글뽀글한 머리카락과 가매진 얼굴로 웃고 있다. 흙먼지와 가시랭이를 툴툴 털어내며 기진한 삶을 보였는데 오늘만큼은 봄꽃이다.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다. 곡물을 저장해 둔 작은방 벽에 누렇게 변색한 일기를 본 적 있다. 개발새발 모양의 큼직한 글씨체로 재봉틀 옆 엄마의 자리에 붙어 있었다.

‘엄마가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면 힘들고 가난해 보여요.’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사진처럼 남아 있다. 일기장에서 뜯어져 나왔는지 아니면 엄마가 뜯어서 붙여놨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어느 날부턴가 엄마는 끊임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낡은 수건은 가난도 있지만 축복이고 행복이다. 농사지을 땅과 세상의 주인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이 지켜주시니 가난은 작고 행복은 크단다.’

시골 작은 교회 예배당에서 일주일의 삶을 녹아내리며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모습도 함께했다. 말씀을 듣고 있는 부모는 멋지고 행복해 보였기에 하나님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들판에 서서 땀에 젖은 수건을 꼭 짠 뒤 어깨에 걸치시던 아버지. 부엌으로 향하며 머릿수건으로 옷가지를 털던 엄마. 언제부터인지 부모의 시간이 고단하고 힘들게만 보여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낡은 옷과 흰 수건에 깃든 사랑을 보게 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우게 했다.

어느 날인가 불현듯 딸들에게 물었다. 엄마를 보며 무명천 흰 수건이라 생각되는 것이 있느냐고. 뜻밖이었다.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답이 들렸다. “엄마 장롱 속 빈 옷걸이가 무명천 흰 수건 같아.” 그러면서 덧붙였다. “명품 옷은 아니어도 좋은 옷으로 채워 줄 테니 기다리세요.” 나와 딸들 사이로 엄마에게 고운 스카프를 선물하던 어릴 적 내가 지나갔다. 부족한 삶이지만 우리 가족은 웃고 있었다.

톨스토이의 작품인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가정이 행복해지려면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하는 것이 모두가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이유가 다 달라서 조건 중에 하나만 어긋나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작은 교회 사역을 하면서 세상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과 동떨어진 삶을 산 것은 분명하다. 한 발 한 발 똑바로 걸어가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넘어져 나뒹굴었고 물질 앞에 작아져서 불행을 안고 살아가기도 했다.

사람의 소리가 사라지면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작은 생물들의 움직임과 노랫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느낀다. 그 앞에 가만히만 서 있어도 하나님의 신비한 세상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를 창조하고 너를 빚으신 분이 누구니?”

어린 시절 부모의 무명천 흰 수건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싸여 있었다. 밤하늘에 빛나던 수많은 별은 하루의 감사를 받았고 고요 속에 새벽은 하나님을 불렀다. 하루의 시작도 끝도 하나님이었던 부모의 삶에는 예배가 늘 동행했다. 시끄러운 불행의 소리는 믿음으로 잠재우고 행복한 작은 몸짓은 찬양과 기도가 되어 사풋사풋 하나님께 나아가게 했다.

하늘빛 무명천 흰 수건이 빨랫줄에서 바람을 탄다. 장롱속 빈 옷걸이 밑에는 고양이가 숨어들었다. 지금도 부모의 시간과 나의 시간에 여전히 흘러가고 있는 행복의 조건.

‘예배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행복의 조건을 바꾸며 가족은 웃는 얼굴로 걸어간다.

장진희 사모(그이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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