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곤 칼럼] 보면 볼수록 어색한 김병준의 전경련

고현곤 입력 2023. 3. 28. 01:02 수정 2023. 3. 28.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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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곤 편집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일 관계 개선의 전면에 등장한 건 반가운 일이다. 누가 뭐래도 전경련은 재계의 맏형이다. 2016년 K스포츠·미르재단 후원금 모금이 드러나고, 4대 그룹(삼성·SK·현대차·LG)이 탈퇴하면서 암흑기를 가졌다. 일본 경제단체 게이단렌(經團連)과 함께 ‘미래 파트너십 기금’ 조성을 계기로 양지로 나온 셈이다. 그런데 컴백 무대가 어색했다. 게이단렌 회장은 도쿠라 마사카즈 스미토모화학 회장. 1974년 사원으로 출발해 회장에 오른 전문경영인이다. 일본 재계의 어른으로 손색이 없다. 나란히 한 한국 재계 대표는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 일본 기업인과 한국 정부 인사가 손잡은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 정경유착으로 풍비박산 난 조직에
대통령 측근이 개혁 맡은 건 코미디
정부, 기업 동원한다는 오해 불러
정치 거리 둬야 하는 재계도 난감

회장 맡을 사람이 없어 궁여지책이라지만, 김병준의 전경련은 이상하다. 그는 기업인이 아니라 정치인이다.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대통령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그 뒤 보수로 돌아서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윤석열 후보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20년 총선 때 세종시에서 낙선했다. 그는 “전형적인 정치인이 아니라 34년을 대학에서 일한 학자”라고 했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기업인은 아니다. 전공 분야도 기업과 상관없는 지방자치·지방분권이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공약에 ‘충청권 수도 이전’을 넣은 장본인이다. 2002년 대선의 1등 공신이다. 덕분에(?) 수많은 공무원·민원인이 정부 세종청사를 오가며 길에서 시간을 축내고 있다. 세종시에 틀어박혀 세상 물정 모른 채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도 부지기수다.

김 회장은 자유시장경제 신봉자를 자처한다. 지난달 전경련에 들어가면서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경제·산업정책을 다뤘다.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이 왔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정책실장 때 시장 흐름을 무시한 부동산 정책을 진두지휘했다. 시장이 왜곡되고, 집값은 치솟았다. 당시 “종합부동산세가 8배 오르자 세금 폭탄이라 하는데, 아직 멀었다”며 특정 지역·계층을 적대하는 정책으로 갈등을 키웠다. 지난 대선 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그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경제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시장경제를 내세워 자유주의자처럼 행세한다.”

전경련은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조직이다. 김 회장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왔다”고 했다. 정치 때문에 망한 곳에 정권과 가까운 정치인이 들어앉아 개혁한다는 게 코미디다. 당장은 정부와 소통이 되고, 대통령 측근이 들어오니 힘도 붙는 것 같다. 한일 경제 사절단에 4대 그룹 총수가 참석하자 전경련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4대 그룹은 전경련이 아니라 대통령실이 요청해 참석한 것이다. 견강부회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다. 어렵다고 남의 힘, 그것도 정치인의 힘을 빌리면 근본 해결이 안 된다. 훗날 독이 돼 돌아온다.

김 회장 개인으로도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자칫 ‘자리 사냥꾼’으로 비칠 수 있다. 2006년 교육정책 문외한이라는 비난에도 교육부총리를 맡았다가 중도 하차했다. 이번엔 고사했다고 한다. 3개월만 한다고 했다가 6개월로 늘렸다. 벌써 한 달 넘게 흘렀지만, 정상회담 같은 정부 일정 쫓아다니기 바쁘다.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이 있다. 윤석열 정부에도 좋을 게 없다. 정부 이벤트에 전경련을 들러리 세운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김 회장 앞세워 기업을 압박하는 모양새로 비칠 우려도 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전경련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용산은 개입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정말 뜻이 그렇다면 그를 말렸어야 했다.

가장 난감한 건 재계다. 정치와 거리를 두며 조심해 왔는데, 일이 꼬였다. 김 회장과 엮이는 순간 보수 정부에 줄 섰다는 구설에 휘말린다. 그렇다고 협조를 안 하자니 찜찜하다. 서슬 퍼런 정권 초인데… 후임 회장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4대 그룹 전경련 복귀에 대해 김 회장은 “그렇게 먼 얘기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4대 그룹은 내키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정치색 짙은 김 회장이 들어가는 바람에 부담이 커졌다. 사업하기도 힘든데, 우리를 그냥 내버려 뒀으면 한다.”

게이단렌도 대기업 로비 창구라는 아픈 역사가 있다. 위기 속에서도 정치인·관료·학자 등 외부 인사를 회장으로 영입한 적이 없다. 기업 일은 기업 스스로 결정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지금은 정치 헌금을 끊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경제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상장사 1500여 곳이 회원으로 참여한다.

전경련은 기득권 유지와 재벌 옹호에 급급하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돼 있다. 회장을 못 찾아 이 사람 저 사람 등 떠민 게 20년이 넘었다.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 국민 신뢰를 받는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게이단렌이나 미국 상공회의소처럼 정부에 할 말은 할 수 있다. 그래야 회장을 하겠다는 인물이 나오고, 4대 그룹도 복귀할 것이다. 정파 냄새 물씬 풍기는 6개월 시한부 회장이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아닌 것 같다.

고현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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