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급락했는데 규제지역?…'이빨 빠진 호랑이' 집착하는 까닭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안장원 입력 2023. 3. 28. 00:48 수정 2023. 3. 28.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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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 당시 전국의 절반 가량
기금은 강남3구·용산 빼고 해제
‘핀셋 규제'에 대한 미련은 여전
정부, 시장개입 악순환 끊어야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유명무실해진 규제지역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문재인 정부가 넘겨준 역대 최강의 규제 족쇄가 사라지고 있다. 규제지역을 말한다. 전국의 절반 가까이 뒤덮었다가 현 윤석열 정부 들어 대부분 풀렸고, 남아있는 극소수의 규제도 느슨해졌다. 주택시장 약세가 이어진다면 모두 해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해제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 전국 110여곳으로 확대됐던 규제지역이 현재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 등 4곳만 남겨 놓고 해제됐다. 규제 내용도 대폭 완화돼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뉴시스

규제지역은 지정권자·지정 요건·지정 효과 등에 따라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조정대상지역으로 나뉜다. 세제·대출·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청약 등에서 고강도 규제를 하는데 한마디로 집 사기 어려운 곳이다.

문 정부에서 가장 맹위를 떨쳤던 조정대상지역의 경우 취임 직후인 2017년 8·2대책 때 40곳으로 시작해 2021년 8월 112곳으로 4년 새 3배로 급증했다. 전국 226개 시·군·구·의 절반가량이다. 전남 여수·광양 등 남쪽 끝에 자리 잡은 지방 중소도시까지 확대됐다.


"대기수요 고려" 전면 해제 미뤄

윤석열 정부는 4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해제에 나서 지난 1월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 4곳만 남겨뒀다. 정부는 “대기수요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4곳 주택 수가 60만 가구로 전국(1881만 가구)의 3% 정도다.

분양가와 토지 거래를 규제하는 지역도 있다. 분양가상한제 지정 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이다. 상한제 지역은 땅값과 정부가 정한 건축비 이내에서 분양가를 제한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토지를 정해진 용도에 맞게 이용하는 조건으로 거래를 허용한다. 대지의 경우 집을 지어 살아야 한다. 이미 지어진 집에 딸린 대지라면 임대하지 않고 직접 거주해야 한다. 도심에선 주택거래허가제인 셈이다.

2019년 말 서울 18개구 309개동과 경기도 3개시 13개동을 지정한 상한제 지역이 규제지역과 함께 풀려 마찬가지로 강남구 등 4곳만 남았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서울에서 강남·송파·양천·영등포구 등의 압구정·잠실·목동·여의도 같은 아파트 밀집촌에 지정돼 있고 윤 정부 들어 아직 해제된 곳이 없다. 지정 기간이 다음 달부터 만료돼 재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규제 강도도 약해졌다. 정부가 규제지역 여부에 따른 규제 차등을 없애고 있기 때문이다. 대출 규제가 일부 다주택자 등을 제외하고 규제지역에 상관없이 동일해졌다. 양도세 다주택자 중과가 한시적으로 폐지됐고, 종부세 2주택자 중과도 올해부터 없어진다. 정부는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도 완화하기로 하고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다음 달부터 규제지역 내 전용 85㎡ 이하 100% 무주택자 우선 분양이 완화돼 1주택자도 신청할 수 있다.

이제 규제지역에 남은 규제는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통장 가입 기간 2년 등 일부 1순위 청약자격, 분양권 전매제한 3년 정도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핵심 규제인 대출·세제가 대폭 완화됐기 때문에 규제지역이 유명무실해져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집값이 당분간 상승세로 돌아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남은 규제지역 4곳 해제도 시간문제다. 지난 1월 대대적인 해제 이후에 거래가 다소 늘었어도 가격 하락세는 계속되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전국 월간 아파트값 하락세가 지난 1월 마이너스 1.91% 변동률을 기록한 뒤 다소 둔화하긴 했지만 2, 3월에도 여전히 마이너스 1%대다. 서울도 지난 1월 -1.19%에 이어 2월 -0.67%, 3월 -0.65%를 나타냈다. 시장에서는 나머지 4곳도 마저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명박 정부도 2008년 금융위기 직후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을 대거 해제하고 강남·서초·송파구(강남 3구)만 남겨뒀다가 집값 침체 지속 뒤 2012년 5월 이마저도 풀었다. 다음 달부터 재지정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는 토지거래허가구역도 해당 자치단체들이 해제를 요구하고 있어 지정권자인 서울시가 외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집값이 계속 하락하는 마당에 유지 명분도 약해졌다.


풍선효과·패닉바잉 부작용 많아

그런데 규제지역은 해제가 능사가 아니다.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 규제지역 제도가 규제 범위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잘못된 발상이다. 일부 지역만 ‘핀셋’으로 규제한다고 해서 시장이 안정되지 않는다. 주택시장 금융화가 빠르게 진행돼 지역 간 차이가 없어지고 서로 긴밀하게 얽힌 상황에서 일부 지역을 누른다고 해결될 수 없다. 되레 인근에 풍선효과를 낳아 시장을 더욱 교란할 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를 충분히 봤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규제 강화 충격으로 집값이 즉각 하락했다가 짧은 시간 안에 규제 영향 소멸과 함께 더 상승해 버리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규제지역 확대는 주택 수요를 코너로 몰아 패닉바잉(공포구매)을 자극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이래 시장에 규제지역 강화-완화의 반복에 따른 학습효과가 누적돼 오히려 역작용만 키울 뿐이다. 문 정부에서 규제지역 강화는 집값 상승 신호탄이었고 윤 정부의 규제지역 완화는 본격적인 하락세 진입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여기다 규제지역 제도에는 정부의 시장 불신이 녹아있다. 정부가 시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감시하고 규제의 끈을 쥐고 당겼다 놓았다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윤 정부도 문 정부와 다르지 않다.

규제의 끈을 쥐고 있다 보면 집값이 다시 뛸 때 자연히 손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노 정부의 규제를 대거 해제한 박근혜 정부도 후반부 집값이 상승하자 이후 문 정부에서 위력을 과시한 조정대상지역 규제를 도입하며 과도한 시장 개입의 씨를 뿌렸다.

정부도 규제지역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20일 "규제지역 제도 개선에 대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며 "용역 결과가 나오면 검토와 관계 부처 협의 등을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정부가 주택시장을 정상화하려면 핀셋에 대한 미련부터 버려야 한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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