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100만원인데..." 금리 15.9% 생계비 대출 '씁쓸한 흥행'

하남현 2023. 3. 27. 17:5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급전이 필요한 취약층에 최대 100만원까지 당일에 빌려주는 소액생계비 대출이 27일 시작됐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상담 예약 첫날인 지난 22일 예상외에 많은 이들이 몰린 통에 서민금융진흥원 홈페이지와 콜 센터는 한때 마비됐다. 대출 상담은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이뤄지는데, 서울 소재 센터는 예약이 일찍 마감돼 서울 거주자가 대전에 있는 센터 상담을 예약한 경우도 있다. 대출 시작 첫날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추가 재원’을 언급할 정도다.

‘씁쓸한 흥행’이라는 시각이 많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당장 수십만원도 구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이 생각보다 많다는 얘기”라며 “고금리와 경기 부진의 여파 속에 제도권 금융에서 벗어난 저신용자가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액생계비대출 상담 및 신청이 시작된 27일 오전 서울 중구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대출 상담 안내문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27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2~24일 소액생계비 대출 상담신청 사전 예약 결과 예약 가능 인원의 약 98% 수준인 2만5144건이 접수됐다. 예약 접수자들은 이날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대면으로 대출 상담을 하고 돈을 빌릴 수 있다.

당초 상품 출시 전에 금리와 한도를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었다. 이 상품의 대출금리는 최초 연 15.9%다. 금융 교육을 이수하고 성실히 상환하면 연 9.4%까지 낮출 수 있다. 이를 두고 국회에서 문제 제기가 나왔다. "긴급생계비 명목인데, 15.9%라 금리는 너무 높다", "정부가 서민을 상대로 고리대금업 장사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뚜껑을 열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상담 인력 등을 늘리기로 했다. 그만큼 저신용자의 돈줄이 꽉 막혀 있다는 의미다. 저신용자는 저축은행·카드사는 물론 제도권 금융의 ‘마지노선’인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2021년 7월 이후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낮아진 데다,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으로 조달비용이 늘어난 대부업체들이 대출을 중단해서다.

급전이 필요한 저소득층에게 남은 선택지는 불법 사금융이다. 소액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실제 ‘휴대폰깡’은 통상 50만원 내외에서 이뤄진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휴대폰깡은 신용등급이 낮지만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나 유심을 넘기고 대가로 돈을 빌리는 불법 사금융을 말한다. ‘내구제 대출(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 이라고도 불린다.

금융위 관계자는 “수십만원이 적어 보이지만 이 정도도 구하기 어려워 결국 불법 사금융을 찾는 이들이 많다”라며 “수십만원을 빌려줘 연 수백% 금리의 불법사금융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하는 게 이 상품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흥행 성공에 금융위는 또 다른 고민을 안게 됐다. 현재 1000억원인 재원이 일찍 소진될 수 있어서다. 올해 재원은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은행권의 기부금으로 마련됐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서울시 양천구 소재 양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아 “상담 예약에 많은 어려운 분들의 신청이 있었다”라며 “추가 재원에 대해 관계 기관과 협의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내년도 예산안 반영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해에도 관련 예산 반영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향후에도 신청이 이어질 전망이다. 생계비 대출을 받으려면 온라인(sloan.kinfa.or.kr)이나 전화(국번 없이 1397)로 방문 및 대출 상담 예약을 하면 된다. 오는 29~31일 예약하면 다음달 3~28일에, 다음달 5~7일에 예약시 다음달 10일부터 5월4일 사이에 대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상담은 전국 46곳의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이뤄진다.

무한정 재원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법 사금융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법정 최고금리 개선 논의를 해야 할 때라는 견해도 나온다. 법정 최고 금리 인하가 오히려 서민을 불법 사금융으로 내모는 ‘금리의 역설’이 빚어지고 있어서다.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지난 2020년 11월 금융위는 법정 최고 금리를 연 20%로 낮출 경우 3만9000명이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7일 서울 양천구 양천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방문해 상담 직원과 얘기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법정 최고 금리 인하는 선한 동기가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지금처럼 법정 최고 금리가 시장 금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경직된 상황이 이어지면 불법 사금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