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 “한국은 일본과 다르다… 미중 사이서 줄타기 잘해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등을 쓴 장하준 영국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출간을 계기로 한국을 찾았다. 마늘로 시작해 초콜릿으로 끝나는 이 책은 18가지 음식재료를 통해 경제 이야기를 풀어내는 흥미로운 기획으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이후 10년 만의 신작이다.
장 교수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챕터가 음식 얘기로 시작해 경제 이야기로 나아간다”면서 “모든 게 경제 논리로 결정되는 시대에 시민들이 경제를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책은 호밀을 통해 복지국가를, 고추를 통해 돌봄노동을, 딸기를 통해 자동화를 얘기한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국내외 경제 현안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장 교수는 1990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케임브지대 교수로 임용된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그는 미중 갈등에 대해서 “미국이 중국을 대하는 게 말은 거칠지만 사실 굉장히 실용적이다”라며 “우리나라는 조심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군사력과 관계가 있는 반도체 같은 문제는 강력하게 나오면서 (중국을) 막고 있지만 그 외에는 사실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생산기반이란 게 많이 없어졌고 거의 다 중국에서 들어오고 있는데, 그걸 하루 아침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을 향해 으르렁 거리지만 뗄 수 없는 사이란 걸 알고 있다”면서 “미중은 과거의 미·소와 달리 거의 융합돼 있다. 우리나라가 어느 한 쪽에 확실히 붙어야 되겠다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하고만 놀거나 중국하고만 놀거나 이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요즘 한국 정부가 일본하고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 같다. 그것도 또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국제경제에서 일본과 우리나라는 처한 위치가 완전히 다르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경제 중 하나다. 일본의 무역의존도가 15%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처럼 50% 되는 나라가 아니다. 일본은 무역관계가 중요한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한 쪽을 버리고 한 쪽하고만 놀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낮은 나라와 가장 높은 나라의 세계 전략이 같을 수 없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 한다. 일본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체제나 한미일 공조에 말려들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주 69시간’ 노동시간 연장에 대해서는 “국민소득 3만5000불 시대에 이게 아젠다로 나온다는 게 경악스러웠다”면서 “1970년대라면 말이 되겠지만 지금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임금을 낮춰가지고 경쟁을 하려고 하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세상에 임금이 낮은 나라가 수없이 많은데, 임금으로 어떻게 경쟁하나. 노동시간도 마찬가지다. 주 100시간 일하는 나라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기술 개발하고 교육과 연구에 투자하고 젊은이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어가고. 그런 걸로 승부해야 할 단계다”라고 얘기했다.
그는 특히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할 자유를 말하는 건 18세기, 19세기식 사고방식”이라며 “어떤 사람들은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 선택을 자유라고 하는 건 전근대적인 자유다. 경제학 개론이나 사회학 개론을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다. 자유는 자유의지와 구조를 다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사회과학의 기본이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의 SVB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2008년 금융위기의 후속편이라고 본다”면서 “2008년 금융위기를 제대로 해결한 게 아니라 자본시장 자체를 무력화하면서 해결한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 폭탄이 숨어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금 상황이 2008년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가 제대로 종료된 게 아니고 엄청난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일단 막아 놓은 것이다. 1929년 대공황 당시에는 금융위기만 처리한 게 아니라 뉴딜을 하면서 사회보장제도 도입, 와그너법 등 엄청난 제도 개혁을 했다. 그런데 2008년 이후엔 그런 근본적 개혁도 없었다”면서 “뭐했나 하면 돈을 푼 거다. 5∼6% 하던 이자율을 0%로 떨어뜨렸다. 자본주의 역사상 제일 낮은 이자율인 0%대 이자율을 10년 이상 유지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양적 팽창을 통해 돈을 엄청 풀었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서 엄청난 자산 거품이 끼었다. 할 수 없이 이자율을 올리기 시작하니까 거품 낀 게 드러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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