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중국 사이, 이 나라 골목에서 본 것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2023. 3. 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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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카트만두의 화려한 풍경

[김찬호 기자]

고락푸르(Gorakhpur)에서 로컬 버스를 타고 세 시간을 달리면 인도와 네팔의 국경인 소나울리(Sonauli)에 도착합니다. 소나울리 국경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육로 국경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죠. 출입국 도장을 찍어주는 이미그레이션 창구는 애써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위치에 있었습니다.

저는 인도에서 국경을 넘어 네팔로, 그리고 다시 버스로 한참을 달려 카트만두로 향합니다. 버스에 탔을 때부터 생각보다 일정이 늦어져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쪽에서 무슨 사고가 났는지, 버스는 거의 두 시간을 교통 체증에 묶여 있더군요. 네팔에서는 그리 드물게 있는 일도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달린 버스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카트만두에 도착했습니다. 분명 타멜 거리라고 해서 내렸는데, 타멜 거리까지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좀 있는 정류장이더군요. 오래 걸어 들어가기에는 밤중이라, 주변에 숙소를 잡아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사실 거기까지도 좀 걸어야 하기는 했지만요.
 
 타멜 거리
ⓒ Widerstand
피곤한 몸으로 금세 잠에 들었고, 다음날 느즈막히 타멜 거리로 나섰습니다. 카트만두를 보신 적 있으신 분들은 동의하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카트만두가 아주 멀끔하고 발전한 도시로 여겨졌습니다. 곳곳에 보이는 여행자들의 얼굴에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요. 그간 오간 인도의 도시에서는 관광객을 찾아보기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감상을 떠나서도, 인도와는 도시경관의 차이가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목조로 만들어진 사원과 그 주변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네팔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아주 적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인도와 중국이라는 대국 사이에 낀 작은 내륙국. 히말라야 산맥을 끼고 있는 산악 국가. 사각형이 아닌 국기 모양이나, 특이한 15분 단위의 시차 정도만이 기억에 남았을 정도려나요.
 
 네팔 국기
ⓒ Widerstand
하지만 그런 땅이라도, 지금까지 양국 어디에도 합병되지 않고 독립국을 이룬 것은 그 안의 격동하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현재의 네팔 지역에는 산악 지형의 특성상 오랜 기간 각 지역에 도시국가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10세기 이후에는 알려진 것만 22개 이상의 도시국가가 있었다고 하죠.
때로 어느 국가가 패권을 쥐고, 때로 분열하는 이합집산의 역사가 오랜 기간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권을 쥔 것이 구르카 왕조였죠. 구르카 왕조의 프리트비 나라얀은 영토를 확장하고 1768년 네팔 왕국을 세웠습니다. 네팔 통합의 출발이었고, 현대 네팔의 직접적인 탄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네팔도 식민주의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인도를 노리고 있던 영국은 산악 지대에까지 손을 뻗쳤습니다. 영토 확장과 함께 양모 산지에 접근하고자 하는 경제적 동기도 있었습니다.

결국 1814년, 영국과 네팔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죠. 영국군은 강력했지만, 네팔 역시 분전했습니다. 특히 산악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영국의 생각보다 피해가 큰 것이었습니다.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말이지요. '구르카 용병'으로 알려진 이들이 활약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결국 영국과 네팔은 1816년 협상을 맺고 전쟁을 종료합니다. 네팔은 영토를 상당 부분 상실했지만 독립을 보장받았죠.
 
 더르바르 광장의 사원
ⓒ Widerstand
물론 네팔의 독립이 완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은 섭정직을 설치해 네팔 지역을 장악하려 했죠. 섭정은 영국 동인도회사와 밀접하게 협력했죠. 하지만 이 역시 2차대전이 끝나고, 아시아 식민지들의 독립이 이어지며 흔들리게 됩니다. 
네팔에서도 섭정의 지배에 불만을 품은 민주세력이 성장했습니다. 섭정 아래에서 권력을 잃어버린 국왕 트리부반(Thribuvan)이 인도로 망명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죠. 결국 1950년대 내각이 만들어지고, 곧 선거를 통한 의회까지 구성됩니다.

트리부반의 뒤를 이은 국왕 마헨드라(Mahendra)는 전제정으로의 복귀를 선언하고, 정당활동의 불법화를 선언하기도 합니다. 의회도 내각도 국왕의 손으로 임명되었죠. 하지만 1972년 비렌드라(Birendra)가 즉위하며 다시 민주화가 추진됩니다.

1979년 벌어진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의원 대부분은 다시 선거를 통해 선출됩니다. 정당의 정치참여도 곧 허용되고, 국왕이 임명하는 의원직도 사라지죠. 결국 1990년 전제군주정이 폐지되고, 입헌군주제가 도입됩니다.
 
 더르바르 광장 뒤편의 풍경
ⓒ Widerstand
물론 혼란은 남아 있었습니다. 90년대 네팔의 마오이스트 공산당이 무장투쟁을 개시하며 일종의 내전이 벌어지기도 하죠. 2001년에는 국왕 비렌드라가 아들 디펜드라 왕세자에 의해 살해됩니다. 단순히 국왕이 살해된 것이 아니라, 왕세자가 연회장에서 총기를 난사해 국왕과 왕비를 포함한 9명이 사망하고 스스로도 자살한 엄청난 사건이었죠. 
이 연회장에서 살아남아 왕위를 계승한 것은 보수파였던 갸넨드라(Gyanendra)였습니다. 갸넨드라는 전제적인 왕정을 시도했고, 그럴수록 마오이스트와의 내전은 더욱 격해졌습니다. 네팔의 민주계열 정당이나 NGO 세력에 대한 탄압도 이어졌죠.

결국 2005년, 뉴델리에서 7개 정당과 마오이스트 세력이 왕정에 반대하는 연합전선 구성에 합의합니다. 무장투쟁 세력을 포함해, 네팔의 진보적 세력이 모두 연대해 왕정 폐지를 외친 것이죠. 반군의 세력이 강해지고, 내전으로 사망자와 난민이 대거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2006년 4월, 갸넨드라 국왕은 퇴위를 선언합니다. 2007년 12월 국민투표에 의해 네팔은 군주제의 완전한 폐지를 결의하죠. 왕족은 2008년 궁전을 떠났고, 궁전은 이제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임시 헌법을 사용하던 네팔은 2015년 진통 끝에 정식 헌법을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탈레주 바와니 사원
ⓒ Widerstand
작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네팔의 영토 자체는 남한의 1.5배 정도입니다. 인구도 3천만 수준으로, 결코 적다고 말할 수는 없죠. 하지만 지형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불리한 위치에 있음은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과 인도라는 대국 사이에 끼어 있고, 내륙국인데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니까요.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네팔은 네팔의 정체성을 가지고 국가를 유지했습니다. 유지만 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더 나은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현대사의 격동도 그 노력이 있었기에 남은 흔적이었습니다.

카트만두에 머무는 동안, 저는 굳이 관광지를 찾아다니지 않고 천천히 골목과 골목 사이를 걸었습니다. 박물관이 된 왕궁과, 관광지가 모여 있는 더르바르 광장 정도만 들러 보았습니다. 더르바르 광장에서는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일본인 관광객들을 우연히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고, 골목에서는 마음에 드는 카페에 앉아 한참이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곳의 골목에는 어디든 안심이 되는 풍경들 뿐입니다. 언급했듯 제게 카트만두의 첫인상은 화려하고 잘 정비된 도시였습니다. 떠나는 날까지 그 인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골목 곳곳의 간판들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떠나는 날,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학생들을 지나쳤습니다. 그들이 만들게 될 이 도시의 새로운 풍경을 생각했습니다.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꿈 위에, 여전히 남아 있을 격동의 흔적을 여전히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된다면, 정말로 화려해진 이 도시에 언젠가 돌아와 눈에 익은 간판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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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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