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지냈던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영화 '소울메이트'와 '스즈메의 문단속'의 소녀들_요주의여성 #83
마음이 가는 소녀들이 등장하며 잊고 있었던 관계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하는 두 편의 영화 〈소울메이트〉와 〈스즈메의 문단속〉. 집에 와서도, 길가의 봄꽃을 보면서도 곱씹게 되는 장면과 의미들을 짚어보려 합니다.
청량한 얼굴을 지닌 두 배우의 연기를 감상하는 건 이 영화의 커다란 즐거움입니다. 먼저 자유로우면서도 결핍을 지닌 인물 ‘미소’ 역을 맡은 김다미. 원작에서 돋보였던 주동우의 그림자를 지우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특유의 매력과 에너지로 10대까지 30대까지 다변하는 캐릭터를 이끌어 갑니다. 개인적으로는 ‘하은’을 연기한 배우 전소니의 섬세한 연기에 놀랐어요.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아도 꾹꾹 무언가를 담고 있는 듯한 표정. 가장 연약하게 보이지만 끝내 가장 용감한 결정을 하는 하은의 이야기에 저절로 마음이 기울었지요.
남들은 잘 모르는 내 얼굴의 작은 점과 마음 깊은 곳 진짜 소망까지 알아주는 단 한 사람. 두 소녀는 그렇게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지만 청춘의 미숙함으로 인해 멀어지게 됩니다. 상처받기 두렵고 상처주기 싫어서 피어나는 오해와 미움. 그러나 미소와 하은은 압니다. 함께 하지 않은 순간에도 서로의 안에서 살아 숨 쉬며 너의 꿈이 나의 꿈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예전에 살던 집을 찾은 미소가 그곳에서 하은이 그리다 만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장면에서, 울컥하지 않을 관객은 없을 거예요. 하나된 마음, 합일된 인생. 이렇게 뭉클한 마음으로 열어볼 수 있는 여성 간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영화 속 하은과 미소가 느끼는 기쁨과 행복, 혼란, 미움, 질투, 그리움의 감정은 결코 낯선 것들이 아닙니다. 한때 나에게도 그렇게 친밀한 존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나는 ‘소울메이트’를 믿지 않는 어른이지만,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했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다시금 자각합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알면서도 스크린을 채운 햇살과 구름, 물빛을 넋 놓고 바라보았던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밝혔듯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프로 한 영화는 불가항력적인 일로 상처 입고 좌절한 이들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겁 없는 소녀 스즈메는 사실 생의 의지를 잃어버린 인물이지요. 4살 때 재난으로 고향과 엄마를 잃고 이모와 함께 살고 있는 스즈메는 겉으로는 태연하지만 마음 깊은 곳 닫힌 문 너머에는 여전히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다리가 하나 빠진 의자를 들고 도쿄를 지나 잃어버린 고향 이와테현으로 향하는 여정을 통해 스즈메는 상처를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되찾습니다.
폐허의 흔적을 더듬으며 도쿄로 향하는 길에 스즈메가 만난 다정한 이들(동갑 소녀 치카, 싱글맘 루미 아줌마)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정을 캐묻지 않은 채 기꺼이 차를 태워주고 잠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들. 스즈메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들의 호의에 보답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 언니의 어린 딸을 키우게 된 스즈메의 이모 타마키의 삶에 대해서도 곱씹게 됩니다. 스즈메는 자신을 돌보느라 개인적인 삶을 희생한 이모에 대해 미안함을 갖고 있지요. 조카를 찾으러 도쿄까지 달려온 타마키는 ‘신다이진’의 영향을 받아 날카로운 원망을 쏟아내고 맙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스즈메의 여정에 함께 하는 그는 자전거 뒷좌석에 스즈메를 태우고 가면서 이렇게 말하죠.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긴 하지만, 분명 그게 다가 아니야.” 사랑하는 이와 싸웠을 때 나도 이렇게 말해야지, 하고 다짐했던 대목입니다.
인생이란 어쩌면 수없이 많은 문을 여닫는 과정이며,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폐허 같은 마음이 누군가의 위로와 사랑으로 생기를 얻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비극은 일어나고 있겠지요. 스즈메가 과거의 자신을 보듬고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따뜻한 마음들을 기억하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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