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 영화에서 유일하게 키스신 볼 수 있는 이 장면
[양형석 기자]
1980~90년대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홍콩영화의 스타배우들은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80~90년대 홍콩의 스타배우들은 1년에 적게는 4~5편에서 많게는 10편 이상의 작품에 '겹치기 출연'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홍콩영화의 제작 노하우가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분별한 해외자본의 유입으로 본의 아니게 많은 영화를 제작해야 했던 영화사들의 말 못 할 사정도 숨어 있었다. 실제로 주윤발과 성룡, 주성치처럼 그 시절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배우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1년에 7~8편 영화에 겹치기 출연을 해야 했다(이는 가수 활동을 겸하던 고 장국영이나 장학우, 유덕화 같은 배우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 <정무문>은 개봉 40주년이 된 2013년 국내에서 재개봉했다. |
ⓒ (주)영화사 빅 |
제목만 같은 아류작부터 공식 리메이크까지
이소룡이 출연한 액션 영화들은 하나같이 명작으로 인정 받으면서도 좀처럼 리메이크가 되지 않았다. 트릭이나 특수효과를 사용하지 않는 이소룡 액션의 특성상 맨몸으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배우가 거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소룡이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출연했던 드라마 <그린 호넷> 리메이크 버전에 한국배우 권상우와 정지훈의 출연이 언급됐었지만 2011년 <그린 호넷> 극장판은 세스 로건과 주걸륜이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정무문> 만큼은 이미 여러 차례 속편과 리메이크 버전이 제작된 바 있다. 이소룡 사망 후인 1976년에 제작된 <신정무문>은 <정무문>의 나유 감독이 연출하고 '이소룡 키드'의 대표주자였던 성룡이 주연을 맡았다. 물론 당시만 해도 성룡의 인지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아 큰 흥행성적을 올리진 못했지만 <신정무문>은 <정무문>의 공식적인 스토리가 이어지는 유일한 속편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둘 수 있는 작품이다.
그 후 홍콩에서는 <속 정무문>과 <달마철지공>,<중건정무문>,<당산정무문>,<최후의 정무문>,<불타는 정무문> 등 <정무문>의 제목과 설정만 따온 아류작들이 판을 쳤다. 그러던 1994년 국내에서는 <이연걸의 정무문>이라는 공식 리메이크 영화가 개봉했다. <이연결의 정무문>은 일본 등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액션과 로맨스를 적절히 섞은 작품으로 당시 여성 관객들에게도 제법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1년에 개봉한 주성치 주연의 <신정무문>은 <정무문>의 이야기 틀만 가져온, 현대를 배경으로 한 전혀 다른 이야기의 코미디 영화다. 1995년에는 견자단이 주연을 맡은 <정무문>의 드라마 버전이 제작됐고 <정무문> 드라마 버전은 1996년 국내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2011년에 개봉한 견자단, 서기 주연의 영화 <정무문: 100대1의 전설>이 바로 1995년에 방영된 <정무문> 드라마 버전의 후속작이다. 2006년에는 실존인물이자 <정무문>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는 곽원갑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연걸 주연의 <무인 곽원갑>이 개봉했다.
▲ <정무문>에서는 이소룡이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무기 쌍절곤이 첫 등장한다. |
ⓒ (주)영화사 빅 |
<정무문>은 홍콩으로 돌아온 이소룡이 1971년 <당산대형>에 이어 두 번째로 출연한 영화다. <정무문>까지 골든 하베스트사와 계약했던 이소룡은 <정무문> 이후 영화사를 설립해 1972년 본인이 직접 감독과 주연, 각본, 제작, 무술지도까지 '1인5역'을 맡은 영화 <맹룡과강>을 선보였다. 다시 말해 <정무문>은 이소룡이 홍콩 복귀 후 오직 연기에만 전념했던 첫 번째 영화였다는 뜻이다(홍콩 복귀작 <당산대형>에는 각본작업에 참여했다).
<정무문>은 정무도장의 창시자이자 비종권 명인 곽원갑이 주방장에 의해 독살당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곽원갑의 애제자 진진(이소룡 분)이 일본인들이 만든 홍구도장에게 복수를 한다는 단순한 내용이다. <정무문>의 진진은 사부님을 잃은 분노와 복수심으로 홍구도장의 우두머리부터 젊은 단원들까지 모두 혼을 내준다.
<정무문>의 최대볼거리는 역시 이소룡이 선보이는 화려한 액션이다. 이소룡이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즐겨 사용하는 무기인 쌍절곤이 처음 등장한 영화가 <정무문>이었다. 적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며 슬로 화면과 함께 10여 초간 특유의 포효를 하는 장면도 실컷 감상할 수 있다. 모든 적을 물리친 진진이 자신을 겨눈 수 많은 총구를 향해 마지막 포효를 하고 뛰어 오르는 마지막 장면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소룡이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큰 서양인들을 상대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도 <정무문>이 시작이었다. <정무문>에서는 홍구도장을 돕는 러시아인이 등장하는데 이는 이소룡의 친구이자 제자인 로버트 베이커가 연기했다(실제 베이커는 러시아인이 아닌 미국인이다). 이소룡은 <정무문> 이후 <맹룡과강>에서 배우 겸 무도인 척 노리스와 싸우고 유작 <사망유희>에서는 218cm의 거인이자 NBA 스타 카림 압둘-자바와 대결한다.
<정무문>은 공교롭게도 국내에서 이소룡이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난 1973년 7월 27일에 개봉했다. 본의 아니게 <정무문>은 국내에서 이소룡의 추모 개봉작이 된 셈인데 서울에서만 무려 31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처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 <정무문>은 지난 2013년 개봉 40주년 기념으로 국내에서 재개봉했고 그 해 추석에는 특선영화로 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 <정무문>에서는 이소룡 영화 중 유일하게 이소룡(왼쪽)의 키스신을 볼 수 있다. |
ⓒ (주) 영화사 빅 |
1950년대부터 홍콩에서 배우 겸 감독으로 활동한 고 나유 감독은 1971년 이소룡의 홍콩 복귀작 <당산대형>의 감독과 각본을 맡았고 1년 후에는 <정무문>을 연출하며 명성을 얻었다. <정무문> 이후 이소룡과 결별하고 197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나유 프로덕션을 설립한 나유 감독은 1976년 성룡이 주연을 맡은 <신정무문>을 연출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던 나유 감독은 1996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무문>의 히로인 묘가수는 <당산대형>에 출연할 때만 해도 분량이 거의 없었던 특별 출연이었지만 <정무문>에서는 곽원갑의 딸 려아 역을 맡아 멜로는 물론 액션 연기까지 선보인다. 시작부터 끝까지 액션장면으로 채워져 있는 <정무문>에서 유일하게 진진과 려아가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짧게나마 달달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실제로 <정무문>은 이소룡이 홍콩 복귀 후 출연한 5편의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키스신이 들어있는 작품이다.
이소룡에 대한 존경심이 남달랐던 묘가수는 이소룡과 나유 감독이 결별했을 때도 이소룡을 따라갔고 <맹룡과강>에서도 주연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이소룡 사망 후 묘가수의 전성기도 빠르게 저물었고 현재는 배우 은퇴 후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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